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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ug 05. 2020

자기 목소리

자기다움

새벽 5시, 내 기억으로 그 시간이 맞다.


몸은 단 한 가지 고통만을 인식했다. 하반신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 여느 때처럼 모국을 즐기고 있었다. 달라진 도시풍경과 왁자지껄한 사람들 모습 만으로도 한국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잃어버린 세월을 복기해 그 시절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귀향은 나에게 흥미롭고 신명 나는 일이었다.


당분간 머물 오피스텔은 일 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지만 그곳에서 내 몸이 우르르 무너져 내릴 삼풍 참사는 꿈도 꾸지 않았다. "이제부터 혈압약은 꾸준히 먹어야 해" 내과의사인 형은 피검사 성적표를 가지고 나를 간접적으로 꾸짖었다. "구안와사는 미국에서 걸린 거야?" 한쪽 얼굴이 일그러진, 아직도 남아있는 후유증을 보고 형이 물었다. " 응, 미국 한의사들은 못 고치더라"(한국은 양방과 한방을 혼용해서 고친다며?) 구안와사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안면이 마비되는 병이다. 나는 후유증으로 불편한 장애 몇 가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그것도 가벼운 중풍이라 볼 수 있어, 그러니 항상 조심하고 혈압관리가 우선이야"




그날은, 화장실에 가려고 몸을 일으킨 새벽이었다. 하필이면 침대에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우당탕 넘어진 나는, 의식은 선명했지만 얼굴은 방바닥에 찰싹 붙어 있었고, 그렇게 쓰러져 한참 뒤 심각함을 깨닫기 시작하자 눈물이 바닥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떤 단어도 판단도 떠오르지 않았다.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심각한 응급상황이 틀림없었다. 일어설 수 없으니 휴대폰을 집을 수도 없어서 의식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형이 경고했던, 그 뇌출혈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꼼짝 하지 못했다.


얼마나 한참 지났을까? 문득 가족 생각이 났다.

이모부는 젊을 때 중풍을 맞아 칠십에 돌아가시는 날까지 이모 수발받으며 성질만 내다 가족에게 자유를 유산으로 주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가 내 앞을 지나간다. 요즘은 꽃중년이라는 육십후반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도 오셨다. 아버지는 가벼운 기침을 하시다 큰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고 대학병원에서 급성 폐렴 진단으로 입원하고 갑자기 패혈증으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망자들과의 교감이 점점 희미해져 갈 무렵 나를 이대로 놔두면 정말 죽을지 모른다는 판단에 사력을 다해 엉금엉금 겨우 휴대폰을 잡았다. 새벽을 지나 햇살은,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위기와 상관없이 찾아와 은밀한 자태를 빠끔히 드러내고 있었다. 형수 번호 단축다이얼을 눌렀다.


"아, 네 혀, 형수 저예요, 저 지~금 하방 신이 모비 되고 말이 잘....." 나는 혀가 이미 돌아가 있었다.
발음은 저렇고 몸은 흐느적거렸다.  "도, 드와 주세요"  


급하게 달려온 형수는 한국 의료보험이 아직 가동되기 전이라, 직접 자기차를 가지고 형의 병원으로 나를 싣고 달렸다. 과속으로 운전하며 형수는 나지막이 울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기대가 많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의사로 직업을 마감한 형보다 더 재능이 많아 보이는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기대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이 들어도 가족 공동체의 영광스러운 성공을 품고 사는 여자였다.  도착하자, 형은 약물로 일단 혈관을 뚫고 상황을 지켜보다 큰 병원으로 옮길 준비를 하자며 수액과 약물을 동시에 투약하고 나는 죽는 건지 자는 건지  하얗게 점점 의식을 잃었다.  


다행이었다.

종합병원에서 나온 MRI 결과는 응급조치가 잘 이루어졌고, 경미한 뇌출혈이라고 진단했다.


"자, 여기 출혈 흔적 보이시죠?  불행 중 다행으로 작은 출혈이 부분적 마비만 가져와
생활에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의사는 다행이란 단어를 수없이 반복하며 뇌 사진을 놓고 긴 설명을 해 주었다. 설명을 마치고 형수 부탁으로 형과 연결되자 전문가의 특권을 과시하듯 거의 절반 이상 의학 영어를 섞어 쓰며 의사끼리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왼쪽 손발이 적당히 마비되어 전기감전 같은 지릿한 통증을 종일 달고 살았고, 얼굴은 이전처럼 예쁘게 웃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가족들과 "건강을 위하여!" 회식을 마치고 노래방 갔을 때, 내 애창곡 "김동률의 동반자"를 멋지게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노래하다 말고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해 내가 울상을 짓자 "괜찮아, 조금 더 힘내서 불러봐" 라며 형은 크게 고음으로 소리 질렀다. 하지만 내 노래 고음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그날 내 목소리의 절반이 도망가 버린 것을 알아 버렸다.


나는 고음이 가능한 리릭 바리톤 lyric baritone이다. 

어려서부터 성가대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대학시절 중창단에서 폼나게 노래하며 활동했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서부터 울기 시작해 몇 달을 계속 울어 그렇다며 내 좋은 목소리에 대한 빛바랜 증언을 어른될 때까지 수백 번 반복했었다. 어른이 되어 내가 전문 강연을 시작하자 마이크의 중저음은 더욱 빛을 발했다. 좋은 목소리는 청중에게 호감을 더해 주었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아름다운 목소리는 지금 추억 속으로 숨어 버렸다.


요즘은 노래하지 않고 노래를 주로 듣는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찾고 음악을 관찰하며 내가 부르고 싶은 만큼 그들을 듣는다. 어느 날 우연히 "안나 네트렙코 Anna Netrebko"라는 러시아 성악가를 들었다. 오페라 극장 청소부로 들어가 오디션을 통해 세계적 프리마돈나가 된 그녀, "여자 성악가는 조수미야" 하던 나에게 그녀의 등장은 파격이었다. 한동안 그녀 목소리에 빠져 지냈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지금 방송에서 그녀 목소리가 나오면 바로 알아본다. 최근에도 우연히 "비긴 어게인" 이란 프로그램에 가수 박정현, 헨리, 수현, 크러쉬 이런 친구들을 듣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성악이든 대중음악이든 장르 Genre를 초월해 그들 모두가 아름답고 특별한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자기 목소리는 가수들의 개성 있는 목소리 이기도 하지만, 한편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나는 "자기 목소리는 자기다움"이라고 이해한다.

예를 들어 자기 목소리로 글을 쓸 때 글은 자기 노래가 된다.
내가 쓰는 이야기는 작곡에 해당되고 이야기에 담은 내 생각은 작사라고 본다.
그리고 내 문장은 가수의 음색처럼 노래하는 기술로 본다.
그 삼박자가 골고루 갖추어지면  글은 노래가 되고
아름다운 노래를 진정성 있게 부르면
청중은 듣기 시작하며 때가 되면 환호하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날은, 빨리 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 가서 타주 면허증을 바꿔야 했다.

코로나 여파로 문을 닫고 있다가 새로 문을 연지 며칠 안되어서 인파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둘러 8시 30분에 도착했지만 결국 500미터 정도 되는 긴 줄의 맨 끝에서 기다림을 시작해야 했다. 당황스러웠다. "아, 이어폰 잊고 왔네, 물은 어쩌지?" 정말 태양과 정답게 사랑을 나누며 3시간가량 지겹게 참아야 했다. 오랜 기다림보다 더 최악인 것은 내 앞의 흑인 일행이 거의 10분 단위로 담배와 마리화나를 연신 피워대는 것이다. (내가 사는 주는 올해부터 마리화나 흡연이 합법이다) 그 뒤에 서 있는 나는 마스크 쓰고 그들의 담배 냄새를 전부 맡아야 했다. 한국 같으면 "저기 담배 좀 그만 핍시다" 할 텐데 이건 뭐, 몸과 고개 돌리는 것 만이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디선가 백인 한 명이 불쑥 나타났다. 내 앞의 흑인에게 "담뱃불 좀 빌려줘" 흑인이 라이터를 꺼내 주자 " 코로나 때문에 내가 네 라이터를 잡을 수는 없고 불 좀 붙여줄래?" 하하, 난감해하던 흑인은 담뱃불 먹여주고 백인은 입을 내밀어 담뱃불을 빨아먹는다. "웃기는 녀석들, 마스크는 안 쓰고......(그것을 보던 황인은 허탈하게 웃는다. 내 앞이 흡연실 되었다.) " 내 앞 줄에 또 다른 여자는 사무실 에서나 쓸법한 접는 의자와 우산을 차에서 가져온다.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쏟아지는 태양 빛에 젖지 않으려고 양산 아닌 검정 우산 쓰고 담배연기도 무시한 채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다.  내 뒤의 히스패닉 Hispanic 남자는 파자마 Pajamas 잠옷 바지를 입고 줄을 서 있다. 지들 멋대로다.


개성 넘치는 그들 모습이 개성 감추는 우리 모습과 많이 달랐다. 우리는 집단이 요구하는 기준이 있어 웬만한 용기 없이 일탈이 어려운데 저들은 어찌 보면 경박스럽고, 달리 보면 자연스럽다. (물론 삶의 수준은 국가보다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나는 길고 오랜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서 있어야 했고, 자기 멋대로 사는 그들 때문에 "자기 목소리"라는 주제를 내 멋대로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자기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자기 목소리로 삶을 노래하는 것"  





나는 최근에 와서야 타인이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할 때, "나와 비교해 우월감을 느껴서 네가 감히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한다"에서 "그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물 이어서 그런 행동을 한다"로 정리했다. 초보적인 수준의 생각 변화지만 이런 생각을 갖자 나에게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우선 마음의 불편이 사라지고 그런 타인이 불쌍해 보이거나 역으로 무심한 반응을 내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그런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자신과 타인에게 화를 내곤 했다.   


작은 생각의 변화는 순차적으로 자기답게 삶을 노래하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갔다. 조금 전 언급했듯 글쓰기가 이야기(작곡), 생각(작사), 나만의 문장 (음색)을 가지고 노래하는 것이라면 삶의 노래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만든 자기 인생관, 혹은 세계관"(작곡), 독서나 공부를 통해 얻은 "타인의 생각과 내 생각의 충돌로 융합하여 얻어진 자기 철학"(작사), "내 장점과 단점을 스스로 잘 이해하고 통제하는 자기 능력" (음색)이 준비되어야 삶은 비로소 자기 노래 독창과 부부의 노래 듀엣 Duet, 가족의 노래 중창, 직장과 학교의 노래 합창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민항기 조종사로 살고 있는 절친 선배는 음악에 소질이 많다.  몇 가지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한다. 그는 조종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가 절대음감으로 화음에 참여하는 균형 감각이라고 말한다. 그 능력은 고스란히 하늘에 있을 때 비행 감각이 되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야 내 삶의 감각을 이해하고 노래 하기 시작했다. 삶을 노래하자 내가 자유로와 졌다. 내가 쓰던 물건들도 정리해서 불필요한 삶의 무게를 줄이고, 심지어 한국을 떠날 때 오래된 내 컴퓨터 하드에 쓰지 않는 파일까지도 가볍게 정리했다. 그리고 마음의 낡은 기억 안에서 찾아낸 열등감, 자존감의 상처, 정체성의 혼란, 무겁게 안고 살던 과거의 잘못 까지 다 지웠다. 이런 내면 정리는 앞으로도 일정 시간 지나면 휴대폰 램 Ram 정리하듯 지워, 삶을 가볍게 하고 단순화시킬 작정이다.


정리를 마치자 내 삶은 더욱 견고하고 선명해져 영혼의 자기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은 언제나 나보다 빠르다.



안나 네트렙코

https://youtu.be/hjB3fOjidT4?list=PL_xEJLvhrdA1YrFNscXJEwhxFEldSntQ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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