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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ug 17. 2020

달콤한 위로중독

나는 요리 좀 하는 남자다.


솔직히 삼시세끼 차 선수만큼 한다. 물론 객관적으로 그와 비교할 수 없지만 내 요리를 먹어본 사람들은 희번덕 거리며 흰자위를 치켜뜨고 나를 다시 쳐다본다.


" 이 사람이 이젠 요리까지?"  


나는 그들이 진짜 맛있을 때와 별로지만 예의상 하는 말을 구분할 줄 안다. 그렇지만 종합하면 진짜 맛있어한다. 최근에 가장 훌륭한 감탄사는 "식당 하나 내세요"였다. 뇌로 먹고살려는데 식당으로 먹고 살라 한다. 손사래 친다 " 하하, 식당은 무슨" (속으로는 요리 잘한다 소리가 좋으면서)


아내는 나보다 요리를 못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주방을 점령해 버렸다.  손에 피 한번 안 묻히고.

여자 사람들은 남자 사람이 돈도 벌고 집안 일도 하면 신이라고 부른다. 제정신 가진 여자 사람은 남자 사람에게 신이라 부르며 무조건 가사를 다 넘기지 않는다.  "앗싸, 가오리" 하며 그 결정을 쉽게 해 버리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죄인이 틀림없다.


여기 미국은 쌀보다 고기위주로 먹다 보니 밥은 적게 먹는다. 식재료가 싸고 다양한 이곳에서 나는 또 요리를 한다. 오늘은 유린기. 된장찌개. 김치. 참치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그런데 좀 문제가 있다. 집안에서 돈제일 많이 버는 우리 돌쇠 아들이 단것만 좋아한다. 콜라는 식사 때도 국처럼 마시고 쌈장도 달콤한 것만 찾는다. 갑자기 내 요리에 설탕 양이 두배로 늘었다. 건강을 생각해서 식습관을 고치라 못하고, 맛있다고 인정받고 싶어서 나는 내 요리 철학을 배신하고 말았다. 간사한 놈.

스스로 타협해서 아들 식성에 맞추다 보니 된장찌개에 설탕도 많이 넣는다. (원래 코딱지만큼 넣었다)


요즘 나는 내 음식에 낙심한다.  


하루는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단것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웬 콜라를 그렇게 많이 마시니?"
" 에너지 올려주잖아요. 솔직히 힘들 때 달달한 걸 먹어줘야 살지요"


대답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아들은 자기 몸이 썩고 있는 줄 모르는 듯했다.


"니몸이 아직 할부 안 끝난 차 같아서 튼튼한 줄 아는데 할부 끝나 봐라, 여기저기 고장이다."
"???  뭐래"


브런치에서 위로에 관한 어떤 글을 읽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입맛처럼 달달했다.  내 브런치 글은 평균 50분 정도 읽고 12개 정도( 아껴주시는 분들이) 라이킷이 달리는 편인데(한 번은 내 글이 그만 실수로 브런치 가두리를 빠져나가 수천 명 읽은 적도 있긴 하다) 그 작가의 위로를 다룬글은 라이킷이 주렁주렁, 댓글은 우글우글했다. 대체적인 반응은 글에 위로가 된다는 것이었다.  딱 그 지점에 멈추어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들 힘든가?"  "맞아, 요즘 살아남기가 무척 힘들 거야."
" 우리가 너무 나약해진 것은 아닐까?" "그런 면도 있지"
"위로가 그렇게 좋나?" "받아봐 달달해"


문득, 위로가 중독성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라에 중독되면 아니 무엇이든 중독되면 그것 없이 살 수 없듯, 요즘 우리 시대는 약함을 드러내고 약자의 목소리가 더 주목받는 세상이 된 듯하다. 하지만 위로하는 자들은 나름 자기 분야에 승자들이다.


고국이 그리워 밤낮을 거꾸로 애청하던 클래식 방송을 듣는다. 진행자는 작가가 써준 위로의 여러 이야기를 낭독한다. 진행자의 인생 무게와 작가의 준비된 내용 그리고 음악이 조화롭게 퍼져나가면  애청자는 위로를 느낀다. 젊은 작가, 늙은 MC, 낡은 음악.   


단맛 나는 위로는 중독성이 있어 보인다.

위로를 전문으로 하는 작가는 달콤한 단어를 찾아 밤을 새운다. 책과 인터넷을 뒤지고 자기 기억 안에 단것들을 검색한다. 나는 야채를 구울 때 설탕을 넣지 않고 아주 조금 소금만 넣고 조리한다. 야채가 가진 고유한 단 맛과 약간의 소금 간이면 고기보다 맛있다.


고통과 고난은 비록 쓰고 짜지만 달콤한 위로 없이 먹어 보는 것은 어떨까?


덜 익은 생각들, 잠시 적어 보았다.  



하이든 현악 4중주 황제 2악장

 https://youtu.be/mBmCcSz6H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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