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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Sep 08. 2020

창 window

잠시 살아 본 한국을 떠나 시카고에 들어온 지 벌써 한 달 반이 넘었다.


전에 살던 미국 작은 마을에 비하면 이곳은 또다시 나에게 타향이다. 미국은 주 state 마다 다른 나라 같아서 적응하려면 항상 약간의 시간이 또 걸린다. 낯선 것에 움츠러드는 나의 예민함 때문에 일을 계획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습관이 여기 도시에서 또 도졌다. 그 준비는 대부분 인터넷 창 window을 통해 정보를 인지하고 판단하는 일로 시작된다. 그래야 도시의 일상에서 실수를 줄이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에 다시 들어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주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점점 나의 창 window은 랜선 창만 남게 되었다.  인터넷 세상의 아침은 시카고 지역뉴스로 시작해 한국 뉴스로 넘어간다. 태풍 소식을 내 일처럼 걱정하는 건 또 뭔지, 한국의 민감한 코로나 까지(고국 코로나 뉴스는 이제 좀 지친다). 여기 미국이란 나라는 한국에서 볼 땐 되게 허접하게 대처하는 것 같은데 지킬 건 다 지키고 적당히 나사가 풀려 사회가 돌아간다.  물론 자긍심 많아진 한국은 더 좋은 의료 시스템과 군대 같은 사회 조직도 있다.

밖에 나와 보니 우리나라는 집단 예민증이랄까? 지나치게 국민들을 정어리떼처럼 몰고 다닌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리 쫘악, 저리 쫘악, 국민은 여론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 이리저리 피곤하게 요동친다. 그래서 나는 한국 뉴스를 새겨듣는다. 기자가 자기 창으로 내다본 사실을 각색하기 전 처음 본 원본 그림을 찾아내느라 집중해서 본다. 기자는 자기 창으로 바라본 사실을 자기 직업 수준의 에세이로 쓴다.





자기 수준의 시선

오래전에 어떤 기관을 운영하면서 한 여인과 약속을 잡았다. 중년의 여인이었는데 그분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는 소식을 여러 번 듣고서  한번 만나 오해가 있나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내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한 날, 그녀는 매우 긴장하고 있었고 아마 내가 만나자고 한 의도를 눈치챈 것 같았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그땐 내가 매우 직선적인 사람이었다.  그녀가 했던 말을 종합해서 "그 말이 사실인가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씀하셨나요?"라며 직구를 던졌다. 그녀는 나의 강속구에 심하게 당황했다.  " 아, 그게 꼭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사람들은 사실 확인으로 대면할 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거짓말과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다"는 각색된 거짓말이다. 사실은 그렇게 말한 게 맞으며 "미안하다"라고 사과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대화는 격하게 시작하여 부드럽게 마쳤다. 그녀는 긴 대화 끝에 경우가 어찌 되었건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나는 오해를 풀었다. 우리 만남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느꼈다. 나는 악플러 대신 선플러 한 명을 더 얻은 셈이고 내 지도력이 효과적이며 서로에게 유익한 상담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며칠 뒤 또 다른 소식을 들었다.

나와 면담을 마친 그녀가 주변 사람들 에게 전한 말이었다. 그 말의 요점은 " 그가 나를 불러내어 거의 죽일 듯 취조했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분명히 손잡고 따뜻한 미소로 악수하며 헤어졌는데 무슨 말이지? 내게 말을 전해준 분이 말했다.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이 하나 있어요. 그 사람은 숨 쉬는 것 빼면 전부 거짓말이라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전부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이 말합니다"(나는 이 말을 무척 싫어한다)는  무엇이고 그분은 왜 또 그렇게 구설에 오르는지. 똑같은 말과 사건이 자기 수준에서 다르게 이해되고 해석되는 것을 그때 처음 심각하게 느꼈다.


자기 수준의 이해

그녀 이름은 마샤 Marsha다. 그녀는 노란색 스프레이로 나무의자에 색을 입히다 옆집 사는 나를 만났다.

초록색 잔디 위에서 노란색 의자를 만드는 그녀가 참 정겨웠다.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를 트자 그녀가 대학생이며 이곳에 이사온지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노란 머리를 가진 키 크고 진중하게 생긴 백인 처녀다. 자연스럽게 코로나에서 시카고에 관한 이야기, DIY 취미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말이 이어졌다. 미국애들은 참 말도 잘한다. 처음 만나 나누는 잡담도 논리적이고, 친절하게 헤어질 때는 전화번호도 나누자고 한다. 나는 얼떨결에 서양 미녀 전번을 땄다. 그 순간 아주 잠시 그녀가 나한테 관심 있나? 하고 생각했다.  아주 잠시지만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여성의 친절을 이성의 관심으로 착각하는 한국인의 오래된 습관을 가진 내가 초라해서 그렇다. 요즈음은 한국의 남자 연예인들이 예쁘게 생겨서 그럴지 모르지만 서양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동양 남성에게 관심이 없다. 아니 서양 남성들은 쌍꺼풀 없는 동양여성에게 흥미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 수준에서 사람과 사물을 이해한다.      


다양함의 수용

내가 사는 도심 가장자리 이곳에는 집들이 참 다양하다. 특별히 부자동네가 아닌데 백인이 살고 흑인이 살고 히스패닉과 아시안이 산다. 내 시선으로는 이사 가고 싶은 곳이지만 가족들 직장이 가까워 할 수 없이 머문다. 그렇다 보니 가까운 마트에 걸어서 다니는 상황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가 오래된 집들이 저마다 모양이 하나같이 다르다는 아주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재미있었다. 개성만점의 집들을 뜯어보며 내가 오래전 시카고를 방문했을 때 윌리스 타워 Willis Tower에서 바라본 도심의 스카이 라인이  독특했던 기억이 찾아왔다. "여긴 참 제각기 다르구나"  다름을 안고 사는 국가는 다양성과 다름에 대해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나라의 숙명처럼 보였다. 나는 내 안에 단일민족의 폐쇄된 민족성을 느낀다. 노력하지 않고는 도무지 오픈하지 않는 편견과 아집도 느낀다.        


인생수업

내가 좋아하던 미시간호의 애들러 천문대 Adler planetarium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쳐 막아 놓았다.  도시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그곳을 찾았다가 무척 당황했다. 그곳은 추억이 담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 중에 한 곳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는 인간 삶의 모든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당혹스럽게 바뀐 지형에서 낯선 삶의 길을 찾기란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현상과 만날 때 잊지 말아야 할 단 한 가지는 침착함이다.


기대되는 야구스타 김광현이 시카고 컵스와 경기 직전 부상자 명단에 오른 소식을 보았다. 그가 시합할 경기장은 여기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들어갈 수 없지만 지척에 있는 그를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가 그의 갑작스러운 부상을 예상이나 했을까?

인생은 끊임없이 예고 없는 낯선 사건, 원치 않는 사고로 가득 차 있다. 행복과 불행은 그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유, 무능한 해결의 결과 아닐까? 언젠가 인생은 배움이고 배움은 즐거움이라는 생각을 만났다.

배운 것을 만족스럽게 누릴 수 있다면 원 없이 이 작은 세상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두 개의 인터넷 모니터 앞에
미국인지 한국인지 알 수 없는 잠수함 같은 내 삶의 공간에서
나는 잠망경 창으로 세상을 보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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