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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Oct 08. 2020

로봇 몰이

다시 미국에 들어온 기념으로 후배가 선물을 보냈다.

열어보니 로봇 청소기다.


원래 우리 집에는 로봇청소기가 한대 있다. "무슨 청소기가 아이큐가 좀 낮은 것 같지 않니?"

내 불평에 아들은 "싸서 그래요"라며 냉담하게 반응했다. 내가 자기 물건을 비난해서 싫은가?

그날 위 사진에 나오는 회사 이름으로 청소기 검색을 해 보았다.  "흠, 기종마다 다른데 우리 것은 좀 저렴하군, 그러니 머리가 저 정도지" 결국 좀 모자라지만 녀석에게 R1이라 이름 지어주고 (스타워즈에 나오는 깡통로봇 R2를 본떠)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내가 이 녀석을 멍청하다고 확신하는 시작점은, 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돼 R1과 청소하다 벌어졌다. 청소로봇이니 알아서 먼지 냄새 맡고 일을 잘하리라 기대한 채 나는 내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들려오는 "우당탕" 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아~ 거실이 아수라장이다. 현관 앞에 걸어둔, 아들이 출근하며 마지막 자기를 점검하던 거울이 벽에서 헐렁 대길래 다시 고정하려고 바닥에 잠시 세워놓았는데 R1이 아작 내 버렸다. 그래 놓고 자신은 자세가 헝클어져 깨진 거울 위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잉잉 발버둥 치고 있었다. "저 놈을 부셔? 말어?"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난 무엇이든, 나를 포함해, 실수로 잘못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오래전, 내비게이션이 지금처럼 똑똑하지 못한 시절, 미국에서 큰 맘먹고 내비 하나를 산적이 있었다. 기억하시는가? 호랑이 담배 피울 때는 인터넷으로 야후 지도 프린 아웃 printout 해서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가 구입한 미제 내비는 정말 소중했다. 그녀는 상냥한 영어로 항상 길을 안내했고, 어느 날 인가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잡혀 그녀 믿고 초행길을 정시에 출발했다. 하지만 그날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내비 그녀가 길을 잘못 안내해서 낭패를 보고 만 것이다. 대충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결국 화가 치밀어 차에 부착된 내비를 주차장 바닥에 내리쳤다. 당장 죽으라고 여러 번 밟아 명줄을 끊었다. 화면이 깨지고 몇 번을 밟으니 내비, 그녀는 완전히 죽었다.   마땅히 기계 쓰레기 버릴 때가 없어 죽은 그녀를 뒷좌석에 한번 더 세차게 던져 넣고 거칠게 출발했다.


 그런데 초행길이라 집으로 가는 길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더듬더듬 기억을 달래 한참을 찾아가는데 신호 대기 중에 뒤에서 아주 큰 소리가 들렸다.  " U turn as soon as possible"  엄마 놀래라, 죽은 줄 알았던 그녀였다. 기절했다 살아난 모양이다. 부상을 입고도 가해자에게 길을 안내한다.


놀랍기도 하고 우습고 미안하고......

나는 집에 도착해 그녀를 안락사시켰다. 망치로 한 번에 완전히 끝내 우주에서 영원히 보내버렸다.     


그것이 음성 로봇과의 첫 번째 충돌이었고 지금 청소 로봇 R1과 깨진 유리 치우며 비슷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R1은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라 죽이지 못했다. 대신 다음부터 로봇관리를 시작했다. 그것이 로봇 몰이다. 녀석을 감독하고 방향을 막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놈을 따라다니며 간섭하며 청소했다.


어제 후배가 보내준 로봇청소기도 R1과 같은 회사, 같은 기종이다. "멍청한 놈들"

이제부터 난 두 명의 로봇 R1, R3를 몰고 청소해야 한다, 상상해 보라 유치원도 아니고.

  

애초부터 나는 기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계치도 아니다.  

전자제품과 다양한 문명 도구들을 자유롭게 잘 다루는 편이고 화성에 떨구어 놔도 나는 영화 마션의 맷 데이먼처럼 잔머리, 굶은 머리 굴려서 살아남을 놈이다. 그런데 기계를 싫어한다.


한국에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버거킹, 주문 기계 앞에서 검지 손가락 하나로 주문을 순식 간에 해치울 수 있는데도 나는 굳이 직원 앞에 선다. " 프라이 소금 빼고, 냅킨 좀 더 주세요" (이것 때문에)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기계가 답답해서 그렇다. 최소한 내 앞에서 기계질 하려면 앞에 서는 순간 내 마음을 읽어서 무엇을 주문할지 알고 계산할 수준 아니면 버벅거리지 말아야지. 한마디로 이 시대 기계는 버퍼링이 심하다. 청소로봇처럼 지능이 낮다.  훗, "나는 누구인가"가 정되지 않았다.

 


한국 여동생 집에 로봇 청소기가 있었다.

우리 집 강아지 로이가 로봇이 뜨면 난리 지랄이어서 그 로봇은 개점휴업상태가 된 지 오래다. 우리 로이가 언젠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 기계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쯤 (로봇이 나는 누구인가를 알 때쯤?) 그 청소로봇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재택근무하는 나는 매일 로봇 두대를 몰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랴, 노노노, 거기 아니지, 아 진짜, 야 R3 (R2라는 이름은 영화 Her에 나오는 인공지능 싸 만다에게 붙여줄 거다) 거기 가면 안 되지"


나는 로봇 몰이 인人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도 평생 누군가에게 "몰이"를 당했다.

이념몰이를 당했고 종교 몰이, 정치 몰이, 건강 몰이, 음식 몰이, 패션몰이, 명품몰이, 방송이 가르쳐 주는 대로 언론이 말하는 데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내 청소로봇처럼 누군가에게 지배를 받았다. 여기 와서 새삼 느낀 것은 참 간섭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트럼프처럼 확진받고 트럼프처럼 퇴원하고 트럼프처럼 살면 진작에 하야했을 텐데 여기는 조용하다. 방송도 주로 사실만 다룬다(다양한 견해도 있지만). 누군가 몰아붙인다고 몰릴 사람들도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조용해서 좋다.


난 아침에 세상을 잠깐 들여다본다.

미국 뉴스, 한국 뉴스, 날씨, 스포츠, 브런치, 그러다 로봇 몰이할 때 거실의 대형 스크린에 어젯밤 한국 9시 뉴스를  걸어 놓는다. 그냥 한국말이 나오면 좋다. 이번에 한국 다녀와서 더 애정이 충만해졌다. 그런데 한국 뉴스는 듣다 보면 짜증이 난다. 특히 정치권 이야기를 다룰 때. 코로나 확진자 숫자도 더는 듣고 싶지 않다. 코로나 말고 할 일이 없는 건지 좀 헷갈린다.   항상 그런 것 같다. 한국 뉴스는 15분 정도보다 끄고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나는 누군가에게 몰이는 안 당하고 한국의 장점과 미국의 장점만 먹고살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이방인의 삶을 그냥 박쥐처럼  살지 않고 적어도 황금박쥐처럼 살 수 있으니까.


오늘은 자클린의 눈물을 로봇 몰이할 때 틀어 놓았다가 음악이 시려 그만 울고 말았다.


클린의 눈물: 정확한 팩트는 알 수 없지만 아래처럼 이야기한다.

https://youtu.be/-0WQKd2zn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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