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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Oct 21. 2020

더러운 놈,게으른 놈,무능한 놈

놈놈놈

영화 놈놈놈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나온다.


한 번은 모 방송국 뉴스 말미에 "기상학 박사"라는 여자가 예보하는 것을 보았다. 나만 느끼는 것일까?

참 방송국 놈들, 저 코너 만들어 기안한 놈이나, 그 서류에 사인한 놈이나 쯧쯧. 기상학 박사라서 타 방송에 비해 차별화되었다고 느낀 것은 단 하나, 짧은 치마 대신 바지를 입었다는 것 말고 없다.

기상예보는 틀려도 부지런한 예보관들이 열심히 밤새워 일하고 그것을 받아 방송하는 기상캐스터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기상학 박사가 하면 다른 예보가 나오나?  우리는 박사, 전문가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 전문가 놈들에게 매일 속고 살면서도 말이다. 어찌하든 놈이라는 표현은 붙이기에 따라 상스럽기도 하지만 단어 속엔 약간의 호기와 낭만도 배어있다.   방송국 놈들.


더러운 놈

더러운 놈하고는 결혼하거나 같이 사업해선 안된다. 아니 친구 먹어도 불편하다.

더러운 놈은 정리정돈을 할 줄 모른다. 퇴근하거나 외출 마치면 잘 씻지 않는다.  나야 그 재수 없다는 완벽한 놈이라, 위험한 나라 미국에서 코로나에게 살아남으려고 한국에서 지낼 때 보다 더 심한 박박이 (손부터 손에 닿는 모든 곳을 박박 문지르느라)가 되어 손가락 피부가 거칠게 텄다. 이 시국에도 더러운 놈은 손부터 안 씻는다. 그들은 집에 들어와 한참 동안 어슬렁 거리며 냉장고며 화장실이며 주방을 그 더러운 손으로 만지작 거리다 마지막에 콧구멍 한번 후비고 나서 손을 씻는다. 하하.  아마 요즘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한국 정부 확진자 감시망에 안 걸린 확진자들은 다 더러운 놈인 것이 분명하다. (세상 죄인도 "안 걸린 죄인"과 "걸린 죄인"으로 나뉘지 않는가) 나같이 재수 없게 완벽한 놈은 아침에 한번, 외출 후 한 번, 하루 두 번 샤워를 하고 속옷도 두 번 갈아입는다. 왜? 그렇게 의아하게 쳐다보지? 다 그렇지 않은가? 어디 여행 갈 때도 하루에 속옷 두 개 곱하기 여행 날짜로 계산해서 가지런히 속옷 가방에 가득 넣고 간다. 더럽게 피곤하게 완벽한 놈이다.(난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 영화 팬텀 스레드에 주인공 레이놀즈 같다. 훗 ) 더러운 놈은 잘 씻지 않으니 한번 입은 속옷을 여러 날 입어도 불편함을 못 느낀다. 팬티 돌려가며 일주일 입었다는 소리 듣고 웃던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갔다. 하지만 더 무서운 사람은 팬티 말고 러닝셔츠 안 입고 겉옷을 여러 번 입는 놈이다. 그런 사람은 겉옷에서 무지 냄새가 심하다. 담배까지 피우면 비참한 금상첨화다. 그래서 더러운 놈은 항상 몸에서 냄새가 난다.


더러운 놈은 방에서도 냄새가 난다.

미국에 이민 오고 한참 뒤에 집을 구입했다.(지금은 없어졌지만) 지은 지 2년밖에 안된 새 집은 경이로웠다. 그런데 그 집을 사려고 부동산 업자와 많은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 가끔 등장하는 우리 한국인 집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만 해도 카펫이 대세여서 (요즘은 마루가 많아졌지만) 어김없이 한국인 주인이 사는 집에는 음식 냄새가 배어 있었다. 퀴퀴하고 아, 뭐라 말하기 곤란한 역겨운? 난 그 후 집을 사고 음식을 할 때마다  환기하고, 식사를 마치고도  환기하고, 카펫 청소를 자주한 것 같다.

  

내가 놈놈놈 하니까 여자분들 실실 웃고 있는데, 놈의 반대쪽에 계신 분들도 마찬가지 더러운 사람이 많다.


잘 알고 지내던 분이 종교단체에서 여자 학사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방을 거의 무료로 싸게 해 주고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분들이 가끔 고장 난 것을 고치러 학사에 들어가면 공동거실은 폭격 맞은 참호 같고 각각의 방은 병사들이 버리고 도망간 토치카 (러시아어, 콘크리트, 흙주머니 따위로 단단하게 쌓은 사격 진지) 같다고 했다.


" 아휴, 말도 마세요, 여자들이 더해요 나갈 때  곱게 화장하고 나와서 몰랐는데......"  


방에서 나는 나쁜 냄새는 카펫, 침대 시트, 혹은 옷에서 나는 냄새다. 또 혼자 살면 이상한 냄새가 몸에서 난다. 아, 장이 나빠도 그 냄새가 난다. 물론 반려 동물이 있어도 그렇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동생 강아지를 애기 때부터 알아, 배변 교육을 잘 시켜 주었다. 강아지, 그분이 냄새 때문에 힘드실까 봐 오줌 싸는 즉시 그 부위 패드를 가위로 잘라 제거해 주었다. 물론 패드는 두장이다. 위에는 잘라진 패드 아래는 또 한 장. 덕분에 집에서 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우리 강아지는 큰 것은 집에서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힘들면 눈으로 말한다. 화장실에 들어가 보호자를 지긋이 쳐다본다. 그 애는 교감이 많아서 그런지 자기가 사람인 줄 안다.  오래전 큰 맘먹고 마당이 있는 독채 애견 펜션에 가족들이 머문 적 있었는데 아파트에 살다가 자유롭게 마음껏 싸라고 마당에 풀어주면 마당에서 절대 배변활동을 안 한다. 꼭 집 밖에 나가서 일을 보자고 또 끔뻑끔뻑 지긋이 바라본다. 개는 주인을 닮는다.  그 개 주인도 끔뻑거린다.


더러운 놈의 문제는 냄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리정돈에도 있다. 그들은 물건을 한번 만지면 원위치할 줄 모른다. 그래서 엄마들이 "치우는 놈 따로 있고 어지르는 놈 따로 있다"는 말을 지어 낸 거다. 정리정돈 실패는 대부분 마음이 정돈되지 못한 사람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마음이 부산하거나 우울하거나 산만한 사람은 정리를 잘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느낀다.


한국에서 사업 파트너  한 분이 있었다. 심성이 워낙 착하고 열심히 사는 분이었는데 나는 그분을 만나면 마음이 힘들었다. 그분 차가 너무 더러워서 같이 타고 다니면 냄새와 정리되지 못한 공간이 힘들어서다. 하루는 날 잡아서 손수 세차를 하러 가자고 했다. 여기 미국에는 손수 세차하는 곳이 비교적 많아서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 하던 습관 때문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에이, 뭘 그래요 나중에 제가 돈 내고할게요" " 아뇨, 제가 도와 드릴 테니 갑시다"  깨끗한 손수 세차 시설을 찾아갔다. 시설은 최고였다.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돼서 마치 미국에 온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가 세차를 혼자 다하고 그분은 그저 나를 돕는다. 속으로 " 하, 이 차 내 거 아닌데 저 양반 뭐 하는 거지?" 그분은 손수 세차를 처음 해보는 것이라 했다. 차가 미니밴인데 뒤쪽에서 살림살이가 나왔다. 골프채, 먹던 물, 세탁 안 한 양말, 건전지, 인삼드링크, 오래된 운동복, " 집에 안 들어가고 여기서 사시나 봐요?"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는 아무 대답 않고 옅은 미소만 지었다.

그날 그의 차는 새로 뽑은 차가 되었다.


몇 주가 지나자 그분 차는 다시 중고차가 되었고 그 후로도 쭈욱 그는 스스로 세차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차를 타지 않고 중간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그분 마음은 늘 많은 고민들로 싱숭생숭했다.

사람이 참 착한데 정돈 안된 산만한 마음을 가지고 힘이 많이 들어간 삶을 살았다.


게으른 놈

더러운 놈은 대부분 게으른 놈의 형제들이다. 그리고 게으른 놈은 더러운 놈 형님이다. 이들은 저 멀리 조상에게 유전자를 물려받았거나 한량으로 살도록 지음 받았다.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내일 일은 그다음으로 미룬다. 도둑이 들어오면 "너 이 방까지 들어오기만 해 봐라", 이 방에 들어오면 "너 훔쳐서 나가기만 해 봐라", 나가면 "너 다시 오기만 해 봐라 가만히 안 둘 테다"  아무것도 안 한다. (게으름, 김남준)


미국에서는 유학 온 학생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 유감스럽지만 유학에 실패한 학생들도 많이 보았다. 그 실패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거나 영어에 적응을 못하거나 정해진 시간에 학위를 마치지 못한 채 우주 미아처럼 미국에 떠도는 상황이 그렇다. 대부분 한국에서 보내주는 송금으로 생계를 해결하다 보니 이들이 가진 부담은 이만저만 아니다. 혹여 유학에 성공한 사람들도 졸업장은 가지고 나가는데 조기유학의 경우는 중요한 시기에 부모와 떨어져 있다 보니 인격적 미숙아가 되어서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고 나처럼 이방인도 아닌 외계인이 되어 한국에 들어간다. 특별한 것은 이 외계인들이 한국 가면 취직이 잘된다는 사실이다. 왜? 당연하지 미국 학위가 있고 영어가 자유로우니까.  개중에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도 있다.  그 비밀은 대부분 감사하게 부모 유전자가 부지런한 아이들이다.  물론 공부는 부지런한데 생활이 더러운 놈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부지런한 아이들은 주변정리를 잘한다. 공부도 정리의 일종 같다. 배운 것을 노트 정리하고 기억 정리해서 저장하는 행위, 그것을 부지런히 미루지 않고 하면 당연히 성적은 좋아진다. 책상에 오래 앉아서 인내하는 것이 성적이던 시대는 지나고, 얼마나 요령 있게 자기 개성을 살려서 잘 기억하고 창의력을 발휘하느냐가 이 시대의 실력으로 진화되었다.


내가 대학 새내기 시절, 우리 학교 교양영어 교수는 당시 드물게 미국인 여자였다. 밤새워 외우고 시험 보던 영어에 익숙한 우리들은 그녀가 수업 때, 바구니에 진짜 사과를 가득 채우고 "This is an apple" 할 때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전부 가자미 눈을 하고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저 여자가 지금 미쳤나? 최고학부에 최선의 학생들이 모인 이곳에서 디스 이즈 언 애플 이라니, 누굴 유치원생으로 아나?"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자기소개를 하나씩 영어로 시작해 보자 하니, 우리는 개뿔 디스 이즈 언 애플보다 못한 수준으로 버벅대기 시작했다.


 요즘이야 한국이 미국 51번째 주 같아서 영어 세계라 그때만 하겠냐 지만- 아직도 공영방송에서 알파벳 브이(V 뷔), 제트(z 지~), LA(엘에이가 아니라 엘 레이), 히어로 말고 (Hero, 히~로)라고 발음해야 하는데- 아직 콩글리쉬의 미래는 멀고 험해 보인다. (내가 아는 영어가 이게 전부다)


나는 다행히 어릴 때 This is an apple 교수님으로 인해 영어의 신세계를 맛보았다.  영어는 쉽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만들어 말하고 쓰고 하면 잘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부지런해야 들리고 입도 열린다. 게으르면 공부도 못할 뿐 아니라  일도 잘 못한다. 자꾸 야근해서 해야지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능하면 집중해서 미루지 말고 부지런히 일을 마치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어차피 시간 품팔이를 업으로 삼고 있다면 효율적으로 일처리 해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노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 일하면 게을러지기 쉽다. 

내가 그렇다. 감시자도 없고 일의 목표도 내가 정하고 평가도 내가 하니 내 안의 그  게으른 놈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미 했어야 할 일 몇 가지를 여태 미루느라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안 하고 있다. 게으른 놈이 나를 점거하자 결국 나는 불면증에 걸렸다. 게으른 놈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지 않고 꼭 밤늦게 필이 오른다. 늦게 자면서 한국 라디오 방송을 주변 시끄러울 까 봐 헤드폰 끼고 들으며 게으름질 하기 시작했다. 일 안 하고 잠 안 자고 쓸데없이 시간 목졸라 죽이며 노는 행위다. 결국 이러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졸피뎀을 먹고 겨우 잠들고 오전에는 헤롱 거리다 11시 넘어서야 부랴부랴 혈압 운동하고 또 혈압 재고 조금 좋으면 운동 빼먹고 어디서 들었는지 졸피뎀은 중독성과 자살충동 있다 해서 월그린 가서 수면유도제를 사 왔다. 하, 이건 감기약 졸린 것과 유사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나쁘다.  

결국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수면제를 끊었다. 게으름도 확 끊어야 한다.


무능한 놈

무능한 놈은 더러운 놈, 게으른 놈의 큰 형님이다. 무능한 놈은 더럽고 게으르다 보니 문제를 보면 항상 못 본 체한다. 무능한 놈은 문제를 만나면 덮어두거나 문제를 피해 달아난다.


삶은 언제나 문제 투성이다. 어쩌면 인간의 학습은 문제를 풀고 해결하는 능력을 연습하는 것일지 모른다. 학교에서는 가상의 문제를 풀지만 인생은 목숨을 담보로 문제 앞에 설 때도 있고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나락에 떨어지기도 한다. 요즈음 내가 좋아하는 최지만의  템파베이와 과거 류현진의 다저스가 월드시리즈에 맞붙었다. 기대가 많이 된다. 그런데 지면 탈락이 되는 중요한 경기에 투수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이 마음도 류현진과 김광현을 응원하다가 생긴 것이다, " 맞으면 어떡하지?" " 저놈은 내공을 칠 거야" " 아니야" 별의별 생각이 요동칠까? 아니면 무상무념? 그런데 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된 습관을 보았다. 심호흡이다.


투수는 문제를 풀기 전에 심호흡을 한다.  그만 그런 게 아니다. 타자도 깊은 호흡을 한다. 투수는 맞는 게 문제고 타자는 때리는 게 문제다. 둘 다 문제를 풀어야 한다.  문제를 푸는 쪽은 승자가 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패자가 된다. 그러나 경기는 이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팀 전체 문제고 감독의 문제다. 경기는 문제를 푸는 행위고 그런 선수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관객은  자신이 선수인 것처럼 문제를 푸느라 긴장한다. 그것이 재미다. 재미있게 문제를 푸는 사람은 유능한 놈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문제에 노출된다. 유능한 사람은 돈 많은 놈이 아니라, 어떤 문제 앞에서도 침착하게 심호흡하고 문제를 상대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부자가 유능한 사람이라 착각하고 산다. 부자는 영리한 사람이지 유능한 사람은 아닐지 모른다. 영리한 사람은 계산적이고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인간미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부자가 종교에서 홀대받는 것이다.

"제발 인간아 인간 좀 돼라"라고 외치는 것이 종교라서 천국 가면 부자가 드물다고 한다.  


게을러서 가난한 것과 부지런히 가진 것을 버리고 가난한 것은 많이 다르다.



만약 내 안에 저 세 놈이(더, 게, 무) 전세 내서 들어앉아 있다면 오늘 한놈 먼저 "방 빼"하고 통보하면 어떨까?

나는 어제 게으른 놈 내 보냈다. 더러운 놈은 애초부터 안 받았고, 조금 뒤에 무능한 놈한테 "그만 나가 달라" 할 작정이다.  내 집의 주인은 나니까......





내가 경애하는 부지런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https://youtu.be/QazDUeJMae0

손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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