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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04. 2020

시카고 제리 투 @3

Episode 3  외모가 최고야 #2

  우리 세상에도 성형이 가능한지 열심히 찾아다녔다.


 인터넷이 가진 한계 때문에 직접 발품 팔아 보기도 하고 정신적 지주 할머니에게, 심지어 다운타운에서 온 무서운 갱단 제리에게 까지 "혹시 성형하는데 알아?"물었다. 그들은 모두 나를 개 쳐다보듯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우리 벌주려고 "바가지에 물 떠 와" 했을 때 그 물에 비친 내 얼굴을 처음 보았다. 그땐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미다를 보고 나자, 난 내 외모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 진회색 털, 쥐색이 그랬다. 언뜻 보면 검정에 식상한 사람들이 젊잖다고 좋아하는 색인지 모르지만, 뭐 그리 유행하는 색도 아니다. 검은색은 더 싫다. 흑인 집에 사는 쥐 같다.  난 미나의 연한 갈색이 좋다. 그들은 나무 위에  생활하니 나무와 어울리는 색을 선택했겠지. 우리는  쥐구멍, 지하 하수도, 주로 이런 데서 생활하니까 그런 색으로 변했겠지 그래서 우리 제리 세상은 유행이나 외모보다 밥 벌어 오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할머니 관심은 오직 우리 형제 훈육이고 할아버지는 아무 생각이 없다.  엄마 관심은 먹는 것이고 아빠는 노는 것이다. 형 제리포는 나 약 올리는 것이고 동생 제리원도 아무 생각이 없다. 왜 사는 걸까?


 요즘 시카고 쥐들이 인간 코로나로 먹이가 없어 사납고 혼란스럽자 사람들은 대책을 내놓았다.


     Don't Feed The Rats!

실외 쓰레기통은 뚜껑을 꼭 닫도록 하시오

애견이 먹다 남은 음식은 밀봉한 비닐봉지에 담아 폐기하고

애견사료는 실내에 보관하시오.    

오래된 타이어, 목재, 기타 폐기물 잔해도 제거하시오

새 모이 공급은 그대로 하시오


시에서 마련한 경고문이 전봇대마다 붙어있었다. 도시의 대다수가 그렇듯 다운타운 갱스터들도 배운 게 없다 보니 읽을 줄도 몰라 도심 외곽 주택에 왜 먹을 것이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캉남이 노트북으로 정보를 가지고 남들보다 앞서가는 쥐로 살 있었다. 정보를 선점하는 것이 생존의 새로운 방식인 것은 인간이나 우리나 같았다. 난 바이든이 이긴 것도 알고 있고 아마 두 달 정도 지나면 미국이 전 국민 백신 공급을 완료하고 세상이 다시 정상으로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방역한다며 코로나 계엄령 내린 후진국들은 결국 미국에 백신을 부탁하겠지? 미국은 참 이상한 나라다. 후진국인데 선진국이다.  


 나는 요즘 미다가 먹는 나무 열매들을 먹기 시작했다. 자연식이라 좀 딱딱하지만 오래 씹으면 캉남이 피자보다 맛있다. 얼마 전에 미스터 한이 먹다 떨어트린 라면 부스러기를 먹어보았는데 참 신세계더라. 할머니에게 라면에 대해 물어봤더니 그런 건 계속 먹으면 빨리 죽는다고 해서 요즘은 있어도 안 먹는다. 우리처럼 조상덕에 좋은 집에 살고 먹는 것도 해결되니 사랑도 찾고 왜 사는지도 생각하는 것 같다. 도시 쥐들은 오늘도 눈뜨면 하루 종일 먹을 것 찾아 헤매고 싸우다 죽기도 한단다. 죽으면 어디로 갈까? 요즘 도시 쥐들이 힘겹게 사는 모습을 보다 갑자기 생각하기 시작했다.


 수소문 끝에 마침내, 실낱같은 쥐구멍을 찾았다. 제리 전문 미용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제리 안토니오다. 그는 멕시코에서 건너왔고 동네에서는 미용뿐 아니라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신의 손으로 불리는 쥐다.  나는 미나와 함께 할, 아니 그녀에게 호감을 얻기 위한 새로운 외모를 얻을 방도를 찾아야 하기에 꼭 그를 만나야 했다. 쥐구멍 세 개와 동네 두 블록을 한참 동안 헤메 가며 찾아간 그곳은 참 흥미로왔다. 세상에나, 사람들이 미용실로 운영하는 가게 지하 창고 안에 제리 미용실도 차린 것이다. 이미 안토니오 미용실에는 암 제리 두 마리와 숫 제리 한 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처음 보는 친구네? 이 동네 사니?" 안토니오로 보이는 제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전문가답게 전쟁 나가는 인디언 얼굴처럼 하얀색 실선으로 몸을 염색하고 귀는 노란색을 칠했다. 귀고리는 한쪽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동성애 쥐는 아닐까 잠깐 생각하다 대답했다. "저 오늘 염색 좀 하러 왔고요, 물어볼 것이 좀 많아요" "그래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괜찮치?"


 나는 저쪽에 숫 제리 커트만 끝나면 바로 해준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기다렸다. 한편으론 예쁜 쥐 사진은 없을까? 미국 다람쥐 샘플은 없을까? 한 바퀴 휙 둘러보았지만 "없네" 하다, 가만 저기 벽 구석에 미다와 꼭 닮은 사진이 한 장 걸려 있는 것이 보았다. "저 사진은 뭐죠? 안토니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쥐? 하는 표정으로 나를 흘끝보더니 "아, 전에 한번 와서 나에게 메이크업받았지, 그런데 우리랑 좀 다른 미국 다람쥐야" 이때다 싶어 물어보았다. "전 성형에 대해 알고 싶은데, 혹시 그런 것 하는데 아시나요?"


"성형? 훗"


 비웃는 듯한 그의 말투는 할머니 닮았다. 어른들은 왜 젊은이한테 모두 저럴까? 약간 의기소침했지만 목소리 톤을 조금 높여 냉소적으로 말했다. "성형이 왜요? 내가 하려고요" 그때 짧은 털인데 파마를 말던 아줌마 제리가 거들었다. "젊은이가 외모에만 관심이 많구나, 먹이를 구하면 암컷들이 줄을서요. 그러니까 괜한 짓 말고 그 시간에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해" 아줌마 제리가 찍찍거리며 빠르게 말했다. 이쯤에서 말을 더 섞으면 내가 손해 볼 것 같아 응수 않고 가만히 있었다. 가끔 한 박자를 쉬면 논쟁이 멈추는 것을 이미 엄마와 말다툼해봐서 안다.


"난 성형에 반대야" 안토니오가 말없이 일에 집중하다 말했다. "왜죠?" 그는 이번엔 가벼운 미소로 대답했다. "동물은 원래 생긴 대로 살게 돼있어, 그런데 외모를 고치면 운명도 바뀌지 않을까? 예를 들어 자네가 미국 다람쥐로 변신했다 치자, 그러면 미국 다람쥐와 교미하겠지? 그다음엔? 혼혈이 나오겠지? 게네들은 뭔 죄야 우리 같은 쥐랑 어울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미국 다람쥐 틈에 살지도 못해, 그럼 가족이 다 불행해지는 거지? 성형 하나로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이 말이야" 안토니오는 내가 미국 다람쥐 되고 싶은 것을 꿰뚫어 본 건지 그렇게 말했다. 염색을 마치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던 젊은 암컷 제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저는 성형에 찬성이에요. 못나게 사는 것보다 예쁜 것이 자신감도 회복하고 당당하지, 못생겨서 따돌림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파마를 하던 아줌마 제리가 아줌마답게 그녀 말에 또 끼어들었다. "노우, 난 안토니오말에 찬성이야, 쥐는 생긴 대로 살아야, 이 짧은 서생을(서)  자연스럽게 살아야지 인공으로 조작하면 안 돼!" 아줌마 제리 말도 일리 있고, 염색 제리 말도 한편 옳은 소리 같았다. 안토니오가 말했다.


 "이봐 젊은이! 성형 말고 전신 화장은 어때?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줄 수 있어!
  화장하면 하루는 넉넉히 갈 거야"


 전신 화장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조금 힘들 거라고 했다. 나는 미다 닮은 사진처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했다. 안토니오는 갈색 스프레이를 온몸에 분사하더니 비닐로 감싸고 한 시간은 참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한 시간 돌돌 말려 앉아있을 동안 파마 아줌마는 "힘내 젊은이! 성형보단 이게 나" 하며 나가고, 염색 처녀는 내 귀에 다가와 속삭이며 말했다.  "이거보다 성형이 오래 가요. 내 친구 k-제리가 그러는데 개네 나라 여자 사람들 거의 전부 성형이래, 쥐도.  필요하면 안토니오한테 내 연락처 달라고 해요. 진짜 성형하는데 가르쳐 줄게 "


 내가 지금 비닐에 돌돌 말려서 앉아있는 것은 안토니오 충고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성형보다 화장으로 미다에게 접근하고 아니다 싶으면 일상으로 빨리 돌아오고 싶었다. 안토니오는 어른답게 전문가답게 미에 대한 자기 철학이 확고했다. "사람이건, 쥐든 아름다움이 외모라고 생각하면 그건 자기 열등감이지 아니면 자기 자신은 없고 외부 평가를 자기보다 신뢰하는 거야"  멋있었다. 자기 방식으로 자신 있게 서생을 사는 그의 모습이.


 털을 전신 염색하고 속눈썹을 붙이고 가장 중요한, 두툼한 인조 꼬리를 엉덩이에 붙였다. "어때? 영락없는 다람쥐지?" 안토니오가 사람 미용실에서 주워온 깨진 거울로 나를 비춰주었다.  세상에! 영락없는 미다였다. 노란빛 감도는 갈색 털에 반짝이는 내 눈을 돋보이게 하는 속눈썹, 무엇보다 가장 차별화된 다람쥐꼬리가-우리 꺼는 쥐꼬리 같다-압권이었다. "하루만이라도 즐겨, 까짓 거" 안토니오는 자기 말을 듣고 성형 대신 화장을 선택한 내가 마음에 드는지 응원해 주고 부끄럽게 내미는 내 피자 한 조각만 받았다.




  "누, 누구신지? "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작은 입을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  "여긴 다람쥐가 오면 안 됩니다.  쥐, 쥐가 사는 곳이죠" "엄마! 나야  제리 투!"  엄마가 놀란 눈으로 잠시 침묵하다 이내 정신을 차렸다. " 너, 너 제리 투?  이 미친, 너 그거 하는데 얼마 주고 했어?" 사실은 피자 한 조각밖에 없다고 하니까, 이거면  된다고 안토니오가 서비스로 해준 건데 엄마는 숨겨놓은 닭가슴살을 내가 훔쳐 쓴 줄 알고 크게 화를 낼 기세였다.


 먼저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몸이 망가지기 전에 미다부터 만나야 한다.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해야 한다. "당신 냄새에 반했어요, 저는 제리포라고 해요"이렇게 한 번만이라도. 나는 나무 사이를 조심스럽게, 꼬리가 떨어지지 않게 찾아다녔다. 나무는 너무 어려워 땅으로 다녔다. 더 좋았다. 이 동네 톰에게 들켜도 안되고 혹시 지나가는 아빠나, 할머니, 아냐 내가 나인 줄  모를 거야.  시간이 흐르자 꼬리가 무거운 건지 몸이 거북했다. 햇살도 불편했다. 그냥 한마디로 전부 힘들었다.


 바로 그때, 나무 위에서 멋진 미다 한 마리가 내려왔다. "못 보던 친구네, 어디서 왔어?"  내가 찾던 그녀가 아니다. "어, 저기 저 집에 살아" "집에 산다고? 난 35번 나무에 살아, 흠 집에 살다니 신기하네 거긴 지저분한 시궁쥐들만 사는데"  곧이어 수놈 한 마리가 다가왔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냄새를 맡다 말했다.  "느그 아버지는 뭐하셔?"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나를 떠돌이 다람쥐 취급하듯 한 번 더 쓱 흩어보고 떠났다.


 "누굴 찾아?" 혼자 남은 그녀가 물었다. "응, 지난번에 만난 친구를 찾아" "내가 도와줄까?" "어떻게?" 그녀가 소리를 크게  질렀다. " 찍찍 찌익 찍"  갑자기 어디서 미다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내가 찾던 그녀 냄새도 난다.  그런데 그녀보다 더 예쁜 비슷한 애들이 계속 나타난다.   "호호호, 얘 성형이야!" "아니야, 화장이라고" "무슨 소리 얘 튀기야" "만져보면 알지" 나를 가운데 두고 성희롱하듯 혼란한 틈에 다람쥐 한 마리가 내 꼬리를 슬쩍 물었다.


"봐, 아무 반응 없지? 가짜 꼬리야, 훗"


안토니오가 정성 들여 4시간 작업한, 하루 간다던 미국 다람쥐 변신은 불과 한 시간 만에 끝났다.


나는 그날 미국 다람쥐들에게 온몸을 멍들게 두들겨  맞았다.


나는 그녀를 잊기로 했다.  


같은 종이라도 신분이 다르면 같이 갈 수 없다는 것도 이번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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