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노아 Dec 04. 2020

시카고 제리 투 @4

Episode 4: 가족  #1

  "루이다. 어서 피해!"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일광욕 즐기던 우리 가족은 혼비백산해 제각기 도망쳤다. 제리원은 거의 잡힐뻔했다. 저놈의 개는 우릴 잡아먹을 것도 아니면서 왜 저리 난동을 피우는지 알 길이 없다.


한 집에 살면 가족 아닌가?


 내가 성형 쑈를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우리 가족은 비난 대신 온기로 맞아 주었다. 앞으로 절대 그런 짓 하지 말고 오손도손 즐겁게 지내자고 오랜만에 아빠가 길게 말했다. 맞아서 온몸에 든 멍이 없어지는데 일주일 걸렸고, 갈색으로 염색한 털과 원래 내 쥐색이 섞여 이상한 쥐가 되었지만 이제 외모따윈 내게 별 의미가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살기로 했다.  나와 격이 다른 다람쥐에 대해서도 신경 끄기로 마음먹었다. 이 어려운 시국에 이렇게나마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서서히 철드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내 사건이 마무리되자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왔다. 사는 게 다 그렇지 항상 대기하던 문제가 하나씩 등장한다. 그거 풀다 다 풀면 여기 떠나겠지. 아마 신은 생명이 사느라 지루할까 봐 하늘에서 출제하기 바쁠것 같다. 이번 문제는 루이였다. 우리 집안에 가장 위험한 루이가 예민하게 우리를 괴롭혔다. 톰이야 워낙 오랫동안 아웅다웅하고 지내 "잡아먹기야 하겠어?" 하는 믿음이 여기 가슴에 있지만 루이는 자기 이빨 힘 조절을 못해서 물리면 찍소리도 못 내고 황천길로 갈지 모른다.  며칠 전 제리원이 물리기 직전 그 공포를 말하는데 우리 가족은 침을 꼴깍 삼켜 가며 캉남이가 매일 밤에 보는  k-드라마보다 더 몰입해서 들었다.


 이번엔 문제 일으킨 내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루이와 먼저 대화가 돼야 골탕을 먹일지 혐상을 할지 정할 것 같았다. 대화는 어떻게 하지? 방법이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 (난 정보 박사 아닌가?) 동물 간 대화 가능한 앱을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개> 고양이 하면, 개 멍멍을 고양이 야옹으로 통역해주고 반대로 고양이> 개 하면, 고양이 말을 개 언어로 바꿔주는 기능 말이다. 이 패키지에 쥐 언어를 추가하시겠습니까? 예 하고 동의하면 루이와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 만능 통역기다. 분명히 어딘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못 찾아서 그렇지 정말 좋은 것이 많다.


 문제는 루이와 대화하기도 전에 그의 입속으로 들어갈지 모른다는 것과 캉남이 스마트 폰은 어떻게 훔쳐 오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은밀한 루이 프로젝트를 가족에게 발표했다.


 성형 사건도 나 혼자 생각하고 고민해서 실패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가족과 함께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매일 밤 모여서 회의를 했다. 회의는 두 개 분과로 나누어서 할머니와 엄마 제리포가 한 개 조로 루이 대책을, 나와 아빠, 할아버지, 제리원은 캉남이 스마트폰 탈취를 의논했다. 우리 조는 필승조라 이름을 지었고 할머니 조는 불사조라 지었는데 할아버지는 이름 가지고 딴지를 걸었다. "필승조" 이렇게 명사를 사용하고 조를 붙여야지 무슨 "불사조"는 단어가 불사조인데 그럼 조 이름이 "불사"냐고 따졌다. 작은 소란과 논쟁이 있었지만 조 이름은 그대로 가결되었다. 이혼도 안 할 거면서 어른들은 왜 가족회의만 하면 싸우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 그것도 전혀 의제와 상관없는 사소한 일로...       


역시 모이면 힘이 더 강해지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불사조는 회의 결과를 종합해서 엄마가 발표했다.

루이와 우리는 그동안 친밀한 관계가 없었다

루이는 우리 가족을 구분하지 못하니 교란작전을 통해 지치게 만들고 가까이 접근한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면 개는 훈련이 된다.

집에 비축한 비상식량 중에 닭똥집을 이번 작전에 푼다. 개는 먹을 것을 주면 대체로 환장한다.

마지막 단계에 루이 옆에 몸을 살짝 붙이고 눈은 마주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우리 필승조는 평소 말없는 아빠를 조장으로 해서 발표했다.

스마트폰을 외부에서 구하는 방법은 힘들다.

캉남이가 자는 시간에 훔쳐서 사용해야 한다.

잠을 오래 자도록 삼촌이 요즘 복용하는 졸피뎀을 먼저 훔쳐야 한다.

언어 패키지를 노트북으로 먼저 조사하고 스마트폰에 깐다.

지문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아빠가 저렇게 발표 잘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평소에 하도 말이 없어서 생각이 없는 줄 알았더니 엄마와 할머니 기세에 눌려 지낸 것이 틀림없다. 엄마도 자기 남편이 유창하게 발표하자 심하게 손뼉을 쳐서 가족들 눈총을 받았고 아빠는 정말 오랜만에 아주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실행 작전도 두 개 조로 나뉘어 치밀하고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루이는 쥐 일곱 마리가 계속 자기를 지치게 하자 이젠 쫒지도 않는다. 원래 저질체력이었거니와 루이는 호기심이 사라지면 금방 무심해진다. 지금은 제리포 형과 내가 자기 눈 앞에서 계속 빠르게 자리를 바꾸어도 좌로 우로 머리를 흔들며 번갈아 쳐다보고 누가 형인지 고르는 게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캉남이가 잠든 틈에 노트북에 들어가 언어 패키지도 조사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개> 사람, 사람> 개는 있어도 그러니까 동물과 사람 사이의 언어 소통 앱은 있어도 동물과 동물 소통 앱은 없었다. 당연하지 누가 그것을 사겠는가? 그래서 정말 오랫동안 밤에 감청하는 쥐의 기본 업무는 제쳐두고 밤새 웹서핑하다 드디어 찾았다. 러시아에 동물 간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이노무스키 박사다.  그는 동물 Vs동물  언어 패키지를 개발했고 아직 실험 중이라 앱을 무료로 배포했다.


 여장부 엄마가 드디어 루이 엉덩이에 자기 엉덩이를 접촉했다.


 엄마 말로는 가만히 누워서 슬쩍 한번 쳐다보더란다.  엄마는 그때 가슴 설레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 어휴 난 무서워 죽겠는데, 네 아빠 첨 만날 때 딱 한번 말고 지금까지 그런 설렘은 처음이지 뭐냐? 눈이 '탁'하고 마주치는데 '억'하고 전기가 쫘악, 공포가 떨림으로 오더라고. 아 정말 한번 더 하고 싶어. 엉덩이도 따뜻하고 털도 기름지고,
무슨 향기가..."


아빠는 엄마 간증을 듣고 처음엔 웃다가 점점 말이 없어졌다. "개소리하고 있네" 생각하는지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다 눈길도 외면했고 식구들은 경악하며 흥분한 엄마 이야기에 깊이 빠져 들었다.


 어서  할머니가 루이 엉덩이를 체험하고 엄마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이번엔 할아버지가 말이 없어졌다. 루이 엉덩이와 눈빛이 그렇게 황홀한 이유가 종이 달라도 원래 암놈은 수놈에게 설레는 건지 아빠가 직접 실험해 보기로 했다. 아빠는 사실 겁이 많았다. 지난번 다운타운 갱스터 쥐가 우리 집에 기웃거릴 때도 "쥐다" 하고 놀라며 엄마 뒤에 숨었다. 쥐가 쥐 보고 놀라는 아빠를 보자 엄마는 기가 차서 혀 차는 소리를 한번 내곤 갱스터 쥐에게 말했다. "우리 교회 다녀요"


 그때 아빠가 겁 많은 것을 모든 식구가 알았다.  이번에도 아빠는 루이 곁에 가면서 우리 식구 두 번 먹을 닭똥집을 세 덩어리나 두 번에 걸쳐 가지고 갔다. 엄마는 "저 양반이 꼴에 사내라고 질투하는 거야. 사내들, 지는 외간 여자한테 눈웃음 살살 치면서 지 여편네는 다른 수놈이랑 눈만 스쳐도 못 참거든"


 그런데 아빠는 루이 근처에도 못가고 먹이만 바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흥분해서는 아주 길게 변명했다.

 엄마 잔소리와 할머니 비웃음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건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엔 내가 나서기로 했다.


 과연 암컷 쥐라 엉덩이를 내준 건지 아니면 우리 가족이 익숙해서 이젠 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인지. 이번에 나는 먹이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어둠이 무심하게 가득 찬 밤, 루이는 거실 자기 매트 위에편히 잠들어 있다. 하루를 사느라 지친 네 다리는 하늘로 쭈욱 들어 올리고 그르릉 드르렁. 거실 옆 방 캉남이도 드르렁,드르렁, 푸아. 묘한 화음이 평화로운 거실을 가득 채운다. 


 어둠을 찢고 들어와 앞마당에 밝게 빛나던 붉은 조명은 창문 틈에 몰래 들어와 거실을 이리저리 살피 고요와 함께 잠이 들었다. 창문 너머 여전히 깨어있는 붉은빛 위엔 숨소리 죽여가며  살포시 하얀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주 빠른 뜀걸음과 느린 걸음을 뒤섞어 가며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시카고 제리 투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