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노아 Jan 13. 2021

시카고에서

한국이  형!

한국이 형! 잘 지내지?


형을 만나고 들어온 지 벌써 다섯 달이나 지났네. 난 여기서 잘 지내.

어느 날 문득 형과 함께 몇 년 지내고 온 것이 그냥 며칠 지난 것 같아 깜짝 놀랐어. 인생도 그렇겠지?


여기서 요샌 영어도 잘 안 터져. 미국 사람하고 말하다 한국말이 툭 튀어나와. 그러니까 지난 핼러윈 때도 그랬어. 난 뭐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나 근본을 알 수 없는 명절이라 반대도 찬성도 안 하는데, 작년 핼러윈은 코로나 때문에 동네 아이들을 집에 들이기가 싫었어. 불 끄고 조용히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만 깜빡 잊고 환하게 집안 불을 켜놓고 있었지 뭐야. "띵똥 띵똥" 요란하고 우렁찬 벨소리가 집안 식구 아니고는 누르기 힘든 당참이어서 아들 녀석이 뭘 두고 갔구나 생각하며 문을 열었는데 세상에나, 덩치 큰 해골바가지 한놈과 졸개 해골바가지들이 문 앞에 들이닥친 거야. 아, 핼러윈이지. 속으로 탄식이 나왔어.  옛날 같으면 웃으며 장난치고 사탕 주고 했을 텐데, 뭐라 했는지 알아? " 아, 애들아 미안하다. 올해는 준비를 못했어. 다음에 와라" 그걸 한국말로... 녀석들이 뭐지? 웅성이며 나를 이상하게 보더라고, 아차 내가 한국말했구나 몇 초 뒤에 알았어. 그래서 영어로 다시 말했어. 그러자 애들이 궁시렁 대며 가더라고. 아마 chinky라고 욕했을 거야. 암튼 요즘 내가 불쑥불쑥 영어 하다 한국말을 해.  아주 자연스럽게 두나라 말이 섞여서 나와. 이게 다 한국이 형 때문이야. 어떻게 한국 좀 살았다고 머릿속 영어를 지워버리지?  

 

 형, 여기도 코로나 때문에 난리야.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인구밀도가 좀 적어 그런지 한국처럼 압박감을 느끼지는 않아. 마트도 가고 산책도 하고, 다만 거리에 사람이 좀 없고 식당에 못 가는 거 정도?  형도 내가 출국할 때 코로나 천국에서 코로나 지옥 간다고 걱정했지? 그런데 여기 오히려 자유롭고 편해. 때로 형네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가 많이 틀리더라고. 나도 여기 DC에서 일어난 트럼프 폭동을 직접 볼 기회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미국 뉴스를 더 많이 보니까 형네 기자들 보도의 오류도 많이 보여.

 

 형, 그거 알아? 코로나 덕분에 세상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강제 진입해 버린 거. 인류가 인터넷에 갇힌 거지.

아참 나 이사했어. 시카고 다운타운 Streeterville 동네야. Navy Pier 건너편 고층건물로 미시간호도 보이고 부자 들만 사는 곳 이야. 내가 부자가 아니라서 엄청 불편해. 한국 강남역 부근 같은 아니 좀 더 고급스럽고 하얀 사람만 다니는 동네야. 지난번에 근처 마트에서 물건을 좀 많이 사서 백팩에 물건 가득 채우고 집에 걸어오는데 노숙자 한 명과 신호대기 앞에 같이 서 있었어. 그나 나나 비슷하더라고. 코로나 때문에 미국 사람들 중국인 무척 싫어하는데 난 머리가 커서 멀리서 봐도 거시기야. 그런데 거기다 배낭까지 가득 채워 넣고 걸어 다니니 영락없는 노 숙자 씨지. 그날부터 전략을 수정했어. 옷도 깨끗하게 입고 장 볼 때는 Whole food(고급 마트) 장바구니 들고 다녀. 아, 미국이 허접하게 다녀도 좋은 나라였는데 대도시 오니까 한국처럼 잘 차려입지 않으면 차별당하더라고.

 

이사 온 아파트에서도 당했어. 

여기는 아마존이나 한국 소포 오면 아파트에서 문자로 물건이 온 걸 알려주는데 이사 오고 며칠 안돼서  아마존 문자 받고 물건 찾으러 프런트로 갔어. 중년으로 보이는 하얀 애가 나를 응대하면서 약간 신경질 내는 거야. 우리가 보낸 문자 받고 왔냐고? 아니 아마존 문자만 받았는데. 그가 말했어. 천천히 여기서 정리할 동안  시간을 좀 주면 안 돼? 좀 머쓱했어. 이게 내 노랗다고 무시하나? 억하심정으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데 멋지게 생긴 레트리버와 하얀 미녀가 같이 탄 거야. "하이!"  마스크 써서 미소가 안 보이지만 입을 헤 벌리고 웃으  밝은 목소리로 말했어. 그런데 그 좁은 구석에서 그녀는 대꾸도 안 해. 내가 애견인인 건 어떻게 알았는지 덩치  개는 큰 엉덩이랑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 그런데 이 여잔 뭐지? 왜, 내가 후져 보이나? 집에 들어와서 거울을 봤어. 이삿짐 정리하다 그대로 가서 반바지에 슬리퍼가 꼬질꼬질하더라고. 한시 간 뒤 다시 물건 찾으러 갔어. 프런트 하얀 그놈에게 복수하려고 옷잘 입고 나갔지. 옷장에 하나 있는 알만한 사람만 안다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입고 반바지도 분홍색으로 슬리퍼 대신 새로 산 하얀 운동화 꺼내 신고  마지막 화룡점정, 마스크 뚫고 냄새 나가라고 고급 향수까지 세 방울 묻히고 나갔지 뭐야. 그런데 프런트에 그놈이 없었어. 근무자가 바뀐 거야.커피색 여자애가 있었는데 내가 또 "하이"를 다정하게 외치며 다가갔지. 그런데 그녀가 말은 안 하고  나를 빤히 쳐다봐. 얼굴에 뭐가 묻었나? 그때 그 녀가 말했어, "마스크 없니?" 아쒸. 향수 바르다 잊은 거야. 하고 다시 엘리베이터 타고 집에 가서 마스크 쓰고 나왔지 뭐야. 결국 택배를 찾았는데 날 무시한 백인 직원이 택배에 매직으로 호수를 잘 못써서 찾느라고 난리 치고 결국  내 손에 넣었어. 그리고 당분간은 엘리베이터 혼자만 타는 거라 하더라고. 그래서 개 데리고 탄 그 여자가 말을 안 섞은 건가? 아니야 내가 샛노랗게 후져서 그래, 아무튼 혼란스럽고 불편했어. 아시안 열등감이 겨드랑이 암내처럼 스멀스멀 코로 기어 올라오더라고.  


한국이 형.

웃고 있지? 아무리 우리가 선진국 어쩌고 해도 작고 연약한 나라 같아. 피부를 갈아엎고 눈을 파내 파란색 안구로 바꾸고 전신을 성형하든 아니면 다시 태어나든지, 외모부터 차별당하는 것 같아. 옛날 최연소 최단기 박사과정 끝내고 귀국한 교수님이 참 부럽고 존경스러웠는데 그런 말 하더라고. 졸업식 때 가까운 미국 지인들과 단체로 사진을 찍었는데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자기는 동양인 하인 같더라고.(교수님 키가 158인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젠 알겠어. 각설하고, 미국도 도시는 서울과 똑같아. 돈에 의해 서열이 매겨지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 도시에서 빨리 떠나고 싶어. 난 숨쉬기가 힘드네.


 형도 잘 알지? 난 해탈은 못해도 탈각은 했잖아? 돈으로 아우성치는 세상도 싫고 명성이나 인기, 우월감 이런 것도 이젠 매우 부담스러운걸 보니 조금은 사람 다워지고 진정 가난해진 것 같아. 앞으로 남은 시간은 대도시 말고 작은 곳에 가서 살고 싶어, 그래서 그런지 올리버 색스가 죽기 전에 삶의 중요한 것에 대해 한말이 떠오르더라.


남아있는 시간에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안녕을 고하며 기력이 있는 한 글을 쓰고 여행하고 싶다. 그래서 인식과 통찰력의 새 지평에 다다르려 한다.   


내가 한국에서 형한테 인식과 통찰력에 대해 한참 떠들었지? 그때가 올리버 색스의 두꺼운 저서 읽다가  그 사람 삶의 무게와 깊이에 대해 나를 비교하며 한참 생각하던 때야. 인간이 깊어지려는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살면서 깊이와 무게를 가져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고심할 때였지. 인식과 통찰력이란 단어를 그때 좋아하게 되었어. 지나간 세월을 생각해 보니 내 인생이 전부 초고였더라구. 젊어서 당당했던 자신감도 무식할 때 용감해서 그런 것 이더라. 요즘 글을 퇴고하다 보니 삶도 퇴고하게 되었는데 자꾸 말이 없어져. 말하면 내 무식이 탄로 날까 봐...

 

 형, 그래도 요즘은 삶이 좀 정리돼서 죽기 쉬울 것 같아. 예전에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웠는데 지금은 담담해.

조숙해서 그런가? 남들은 내가 어려 보인다고 하는데...  허, 이 사람아 웃지 마시게, 미국애들이 그랬어. 40대 애들이 자기 또랜 줄 알았다고 했다고, 정말이라니까?

난 죽음에게 끌려가고 싶지 않아. 운이 좋다면 대면하고 맞짱 뜨다 가고 싶지.

 

 요즘 통풍이 다시 찾아왔어. 형도 알지? 무지 아픈 거. 애드빌 먹고 발작 다스리고 있는데 혈압약 끊고 혈압만 신경 썼더니 그런 것 같아.  애드빌 과량 먹고 요산 몰아내려고 애쓰고 있어, 나이 들어가니 여기 고장 나서 고치면 저기 고장 나고 할부 끝난 자동차 같아. 그래도 미국이 살던 데라 편하긴 해. 시카고는 첨 살아보는데 다른 동네 미국과 달라서 매일 밤 총 맞고 사람들이 죽어. 서울에서 매일 밤 몇 명씩 칼 맞아 죽으면, 요즘 그 용하다는 탄핵당할 텐데 여긴 그게 일상이야.


 며칠 전에 우리 애한테 거친 말 섞어서 썡 지랄했어. 이사 때 서로 이사하는 방식이 틀려서 자주 다투었는데 그동안 쌓인 게 터진 것 같아, 자기 물건 어디 있냐고 자꾸 물어봐서 박스를 여러 번 풀었다 묶었다 하고는 새집에 와서도 또 찾아. 자기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지, 미국 회사에서 코로나에도 안 잘리고 유능하게 사는지 모르지만 이 녀석 집에서는 개차반이야.  녀석이 챙겨준 크레딧 카드 쓰고 살아서 끽소리도 못하다가 이번에 제대로 난동 피웠어. (카드 받을 땐 효자라고 입이 마스크 찢고 나왔었지. 사실 걔가 브런치 이 딴 거 안 읽어서 몰래 쓰는 거야 비밀로 해줘) 아직 덜 개봉한 이사 박스 발로 차서 다 부숴버리고  박스 안에 옷걸이가 튀어서 날아가고 옛날 같으면 싸대 귀 날려버리는데 가슴을 그냥 밀었어, 왜? 덩치가 너무 커서 내가 올려보더라고. 이젠 아버지 권위도 끝난 것 같아. 며칠 지나서 부드럽게 말 걸었는데 아직도 저기압이야. "네, 아닙니다." 다나까로 군인처럼 말해. 내가 화내면서 어른에게 예를 갖추라고 난리 쳤거든, 암튼 세상은 사람이 제일 어려워. 형은 딸바보라 이런 일 없겠지? 하기사 내 친구는 딸도 말 안 듣는다고 푸념하더구먼.

 그런데  그 말 안 듣는 아이들이 뭐라는 줄 알아?  "요즘 것들, 90년대 이후 태어난 것들은 싸가지가  없어요"


형.

담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형한테 다녀온 후로 여기나 거기나 사람 사는 데고 내 맘에 드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 죽고 나면 그러겠지 그래도 이승이 좋았다고.  그래서 요즘은 하루를 끊어서 살아. 뻔한 말 같지만 하루가 내 마지막인 것처럼 말이야. 조금 있으면 내 생일이야. 그날 이방처럼 문자 하란 소리 아니고 그때까지 원고 정리해서 책 한 권 마쳐보려고 해. 형도 내가 없어서 외롭겠지만 조금은 참을 수 있겠지?  


 얼마 전에 손흥민 때문에 <토트넘 다큐>를 봤는데 감독 "조제 마리우 두스 산투스 펠리스 모리뉴"(이름 길지?)를 다시 보게 됐어. 참 치열하게 살더라.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지더라고 힘을 다해 싸우라"는 거야. 그런 것 같아. 인생도 승패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살면 좋지 않을까? 요즘은 그 "알던 최선"을 정리하고 "최선 너머 최선"에 몰입하고 있어.


형, 다시 만날 땐 서로의 인식과 통찰력이 조금 더 깊어져 만나면 좋겠다.

거기 눈이 와서 좋겠다. 여긴 날씨가 런던 같아.


하나도 안 추운 어느 겨울 ,  시카고에서   


https://youtu.be/B6efp9cD1Zk  신지아 

작가의 이전글 시카고 제리 투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