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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Feb 06. 2021

브랜드 로고

가난한 속물

이야기하자면 길어생략하고,

시카고 한복판 Streeterville 전망 좋은 미시간호 해변의 고층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말 그대로 백인 부자 동네라 안전과 깨끗함을 따지면 참 좋은 동네인데 문제는 내가 여기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 그것도 생각이 났다. 정말 명품 옷을 입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옷자랑을 하긴 그렇고 은근히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길래 다행히 알아보고 "옷 새로 샀네? 오, 비싼 거네" " 응, 좀 무리했어"  "근데 너랑은 잘 안 어울린다...

"  명품은 좋은데 너는 후지다?  딱 그 말이다. 나도 꿰 괜찮은 놈이라 생각했는데 여기선 초라하다. 왜 그럴까? 아시안 몰골이 그렇고 겨울 외투라곤 한국스타일에 두꺼운, 걸어 다녀도 전혀 춥지 않을 에스키모 같은 패딩 두벌, 게다가 한벌은 값싼 데카트론에서 구입한 아웃도어 제품이라 그런 것 같았다. 여기는 대부분 자기차 타고 다니니 가볍고 있어 보이는 패딩을 입는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몰골을 가리고 바니를 뒤집어쓰면 검정머리 마저 숨길수 있는데 아시안 여행객 같은 복장은 금방 티가 난다. 그래 사람은 항상 주변과 너무 다르게 튀기 싫은 거야.

 

내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도 미국에서 입던 옷이 무효가 되고, 전부 다시 처음부터 옷을 바꾸어 입고 살아야 했다. 여기서도 또다시 바꿔야 하나? 나는 이미 휴대폰에 코 박고 조금은 얇고 보온성이 뛰어난, 브랜드 로고가 이쁜 외투를 찾고 있었다. 내 하소연을 듣고 서울에서 동생이 보낸 패딩은 비행기 타고 장장 3주 만에 소포 박스가 찢어진 채 코로나 뚫고 도착했지만 사이즈가 안 맞아 다시 사야 할 것 같았다.


Polo Ralph Lauren 이 눈에 들어왔다. 가격도 세일해서 나쁘지 않았고 옛날부터 이 브랜드를 좋아했다. 단순히 폴로 로고를 좋아해서 선물로 받으면 그냥 기분이 좋았다. 몇 안 되는 좋은 옷은 다 이 제품이다. 한국에 있을 때 미국에서 친한 선배가 방문해서 US Polo Assn모자를 폴로라고 아내에게 선물하자 그녀는 썩소를 지으며 받았고 떠나고 나구석에 처박아 놓았다. 두 회사가 전혀 다른 회사인 것을 무지한 남자는 몰랐던 것이다. 그 생각 나자 훗, 하고 또웃음이 나왔다. 명품이 뭐라고 우리는 가슴에 명찰 달고 다닐까? 며칠 전 본 영화에 흑인이 자유를 위해 백인과 투쟁하던 시절, 한 백인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노예 숫자는 우리 가문의 명예고 사회적 지위야"  백인은 기도한다. "하나님, 내 삶을 편히 보내도록 흑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집 노예들도 기도한다. " 하나님, 우리를 짐승처럼 다루는 저들에게 벌을 내리시고 자유를 주옵소서"  명품은 피부색 같아 보인다. 우리 인간은 이처럼 보잘것 없다.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작품은 "역설적인 신"이고
  신이 발명한 최고의 걸작은 "모자라는 인간"이다.


얼마 전, 싼데 안 팔리는 명품을 조금 이나마  주워 올 수 있는 나의 최애 상점 TJ.max를 찾았다. 그 아래층에는 Marshalls이라는 Tj max가 소유한 저렴한 물건을 파는 매장도 있었다. 눈요기하려고 아래층에 먼저 들렀다가 역시 싼 목도리 하나를 구입했다. 바로 옆 창구엔 뚱뚱한 흑인 여자가 계산하고 있었다. 물건을 한참 많이 사서 계산한 뒤 Macy's (고급 백화점) 로고가 선명한 자기 봉투를 꺼내 물건을 담는다. 문득 가난한 사람일수록 브랜드 로고에 집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Marshalls 봉투가 창피한가 보지?  피식 웃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폴로 매장으로 가는 길을 잃었다. 미시간 애비뉴를 따라 집에서 걸어  15분 이면 가는데 나는 30분을 휘저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겨우 도착했건만 넘 이른시간 들어가 그런지 매장엔 손님 하나 없이 직원들만 분주하게 일하는 척하고 있었다. 요즘 여기서 내 영어가 잘 안 먹히는데 그날도 그랬다. 내가 찾는 패딩을 말로 설명하니까, 흑인 직원이 못 알아듣다 한참을 설명하자 겨우 알아들었다. 한국 탓이다. 너무 오래 한국에 머문 거다. 영어를 미국식으로 생각해서 뱉어야 하는데 한국어로 머릿속에 말이 생성되고 영어로 표현하려니 안 통하는 거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생각하는 순서와 언어의 방향이 달라서 생기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친한 친구가 나보고 그랬다.


"그렇게 미국 오래 살면 모든 단어 다 알겠네" 내가 웃었다.

"무식하긴, 미국애들 지네 단어 스펠링도 몰라."


이렇게 이방인은 어디 가도 불완전하다. 쥐의 찍찍도 아니고 새의 짹짹도 아니다.


2층까지 올라가 위엄 갖춘 매장 안을 이리저리 패딩 찾아 헤메다 친절한 백인 직원 하나가 나를 위해 물건 찾으러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동안 주변을 둘러보여기는 내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비싼 매장에 가면 나는 주눅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거짓의 대접을 받는 것, 거짓된 부자 행세도 그렇다. 한 번은 비싼 백화점 신사복 매장에서 옷을 입어보는데 직원이 뒤에서 옷을 잡아주었다. " 아, 아니요 제가 입겠습니다. 주세요" 집에 돌아오는 차에서 운전하던 동생이 나무랐다.  " 오빠는 창피하게 왜 그런 말을 해? 입혀줄 때 그냥 손만 내밀면 되는 거야" 동생은 세련된 부자 행동을 완벽하게 하고 산다. 용모가 뛰어나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녀 옆을 따라다니면 늘 호의를 덤으로 달고 산다. 사람들은 나에게 퉁명스럽고 그녀 앞엔 모두 친절하다.

  

 누나는 외제차 좀 끄는데, 어디 가나 노골적으로 부자 행세를 한다. 오래전 새마을식당이 생각나서 가고 싶다고 했더니 갔다가, 그날 외식을 망했다. "아휴, 넌 도대체 어디서 이런 데를 다 아니? 난 이런데 못 와" 그런 그녀는 항상 고급 고깃집에 예약을 한다. " 네 사장님!, 저 000 이예요, 거기 그 방 예약해 주시고요, 써빙은 아시죠? 그때 그 아주머니" 이상하게 누나와 고급식당에 가면 속이 올라온다. 밥 한 끼 먹는데 수십만 원을 쓰고 팁을 받은 직원의 굽신거림을 뒤로하며 좋다고 먹고 집에 오면 속이 쓰리다.


폴로 매장에서 찾아준 패딩을 포기했다. 내가 원하는 색이 없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직원들의 고자세와 고급스런 매장이 싫었다. 재고가 바닥난 세일 끝물의 물건을 사는 것도 창피했다. 나는 체면을 좋아하는 속물 이었다. 나오면서 생각했다. 그까짓 로고가 대수라고, 내가 후지니까 로고로 감추려는 거지. 별별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에 엉뚱한 생각이 새치기한 것은 매장 앞 신호등  불쌍하게 앉아있던 홈리스였다. 요즘 이 동네 길거리에 저런 사람이 많아졌다. 청년인데 거적때기 같은 누더기를 뒤집어쓰고 머리만 내민 채 박스 종이에 "배가 고파, 가족이 없어, 돈이 없어, 도와줘"라고 써놓았다. 충격을 받은 것은 그가 아니라 누더기에서 밖을 내다보려고 잠깐 머리를 내민 비글이었다. 눈동자가 선명하고 선하게 생긴 녀석이 춥다고 덮어버린 누더기에 갇혀있기 싫어 머리를 내민 것이다. 거지는 녀석을 다시 누더기로 무자비하게 덮었다. 무식한 놈, 애견인이라 그런지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생각도 복잡해지고 마음이 힘들었다. "어쩌지? 내가 현금이 얼마나 있나? 강아지 사료를 사 올까?" 순신호등이 바뀌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돌봐준 선한 사마리아비유에 제사장처럼 나는 그를 지나쳐 길을 건너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보면 도와주지 뭐" 나는 생각만 하는 속물이었다.


자주 가던 밀레니엄 파크 앞 허름한 메이시스 백화점에 도착했다. "폴로 말고 이름 없는 패딩을 살 거야. 아까 그 청년과 비글을 봐.  요즘 코로나로 거지가 너무 많잖아, 절약해서 검소하게 살아야지" 애도 아니고 바른생활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백화점에도 사람이 없었다. 직원을 너무 줄여서 아무도 나를 안내하지 않았다. 여기서도 오랫동안 발품을 팔았다.

" 이건 좋은데 로고가 없어 저건 좋은데 너무 비싸. 저건 로고가 너무 커, 내가 브랜드 광고하고 다닐 일 있어?" 할인매장을 한 시간 동안 몇 바퀴나 돌았다.


 " 아이, 오늘은 쓰지 말고 가자"


그러면서 나가려 하는데 그동안 내가 미쳐 보지 못한 폴로 매장을 발견했다. 그곳은 아까 고급진 시카고 지점과 다르게 백화점에 입점한 평범한 모습의 매장이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던 색과 사이즈를 갖춘 패딩이 마지막으로 한 벌 떡 하니 있었다.  " 이거 세일하면 얼마야?" 직원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아, 인터넷 가격보다 싸다. 후다닥 집어 들었다. 그동안의 오랜 성찰은 순식간에 날아가고  패딩이 구겨질까 봐 백팩에 담지 않고 굳이 손에 꽉 움켜쥐고 좋아서 흥분하며 걷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브랜드 로고에 집착한다며 남을 탓하고
          사실 그 로고를 사랑하는 내가  가난한 속물임을...    

                       

 나는 속물 되기 전 초심을 찾아 설렘을 안고 다시 길을 나선다.


https://youtu.be/b2ni24eK3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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