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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Feb 16. 2021

이게 여기서 왜 나오지?


 통마늘 한 줄을 주방 서랍에 두었는데 싹이 돋았다. 실내 온도가 높아 싹이 돋은 건 아닐까? 궁금해서 인터넷 선생님에게 물었다. 아, 그렇군. 먹을 수도 있고 심을 수도 있구나. 난 아직 텃밭 기술이 없어 싹 난 마늘을 화분에 꽂아 두었다. 그 안에서 혹시 생명끼리 회생하는 요술을 부리지 않을까 은근 기대하면서...


 마늘을 사용하는 요리 세계에 입문한 지 벌써 15년 정도 된 것 같다.  옛날 옛적 유학 온 후배 집에 초대 받아 갔다가 그 집 주방에서 질문을 하나 받았다. 등소평(덩샤오핑)이 요리 잘하는 건 아세요?  아니? 몰라. 그의 아내는 식탁을 준비하고 그는 능숙한 솜씨로 웍을 돌리며 한참을 설명해 주었다. 훗, 사내 녀석이 주방은... 그때만 해도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 사내는 묵직하니 말 없고, 돈 잘 벌고, 아들 하나 떡 낳아주고, 넉넉한 사회성과 소주 한 병 정도는 주사 없이 비우면 멋있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주방에서 사내가 요리하거나 설거지하면 그는 돈을 못 벌거나, 재수 없게 여왕님 스타일 여자 만나 머슴살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요리하는 후배는 무능한 친구가  아니었다. 집안도 좋아 보이고 박사과정도 야무지게 할 뿐 아니라 부잣집 아내의 시종도 아니었다. 게다가 중국 요리할만한 실력이면 아부지가 중국집 사장일법한데, "느그 아부지 뭐하시?" 하면 증권 조금 하며 노세요 라고 대답했다. 잘은 모르지만 그들은 원래부터 부자였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 한참을 고민하다 후배를 흉내 내며 난생처음 요리를 했다. 

그날 저녁 메뉴는 김. 취. 찌. 개.


 그렇게 요리를 시작해 지금은 주문받으면 어떤 요리든 맛있다 소리 들으며 적당히 한다.  물론 부려먹으려고 가끔 거짓말로 맛있다 하는 것 정도는 눈치가 백 단이라 속아주면서도 한다.


" 그래도 차승원만큼은 하지 않아?" 아무도 대답 안 한다.


 마늘에 싹 난 것을 알아본 것은 내가 주방을 자주 들락거리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번 설에도 나에게 요리를 부탁했다. 아니 시켰다. 미국은 구정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지만 한국 실시간 뉴스를 틀면 코로나 뉴스와 가족마저 통제된 코로나 구정도 보인다. 여기는 그래도 자유로운 편이다. 엊그제 생일을 기념해 시카고에서 두 번째 높은 핸콕 타워를 방문했는데 칵테일 라운지에 마스크 쓰지 않고 음료 마시는 사람들 불편해(나는 한국식으로 마스크 쓰고 있다가 잠깐 열고 홀짝 마시고 닫고) 결국 일몰 구경을 포기하고 내려왔다.


 이번 구정엔 지인들 몇 초대해 각자 음식을 적당히 만들어와 나눠먹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준비할 음식은 갈비찜과 미나리 무침, 빈대떡, 생선전이다. 전부 모여 사다리 타기 해서 정했는데 내가 자신 있게 뽑아서 저 메뉴들이 걸렸다.  손 많이 가는 전 요리는 정말 걸리지 말았어야 했다. 음식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물론 우리 집이 호스트라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요리를 시작할 무렵 발견한 마늘 싹은 의외의 놀라움이었다. 생명이란 추상적 개념을 우연히 실물로 마주할 때마다 자주 나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낀다.


그래서 생명을 존중한다


 현재 확인된 지식으로 내가 정리한 생각은 지구가 대략 46억 년 동안 어미의 자궁이 되어 생명을 길렀다. 아버지는 어디 있을까? 우주다. 아버지를 하나님이라 불러도 좋고 하느님이라 해도 좋다. 부처님도 괜찮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생명의 근원은 자기 신념과 신앙으로 아는 만큼 해석해서 각자 살면 된다. 신은 우리가 이해 못하는 영역을 총칭하는 대명사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 지금 시판을 준비한다 하는데 우리 세대는 요양원에서 한국형 소피아들에게 간호를 받을 것이다. 그 소피아들도 발전을 거듭하면 신은 누구냐고 물을 것이다. 사람은 누가 만들었냐 묻고 자신들도 종교를 만들어 영생을 추구할지 모른다.  인공지능도 생명일까?


 나는 음식을 준비할 때 매우 조심스럽게 생명 사체를 다룬다. 저들도  생명이 되기까지 수억 년 동안 어미들이 죽어가며 지금이 되었을 텐데  씻다 버려지면 (난 음식 분쇄기가 있는데 그걸 잘 사용하지 않는다. 더 오염이 심한 배출 방식이라 생각해서) 세상에 단 한번 태어난 나물은 태어난 지 얼마 안돼 흙에서 나와 지옥 플라스틱에 갇힌다. (물론 먹다 남겨 버려진 음식도 마찬가지다) 생명은 다른 생명을 위해 사용되어 생명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그 생명을 먹은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아는 생명의 선순환이다. 죽어 음식이 된 식물과 동물은 우리 몸속에 들어와 다른 우주를 만난다. 어쩌면 큰 우주가 창조한 우주 닮은 작은 우주 안에서 분해되고 먹이가 되고 영양이 되어 생명으로 존재하던 모든 것이 다시 생명으로 분해된다. 연어가 드디어 상류에서 아이를 낳고 죽으면 그 아이들은 인큐베이터 같은 상류에서 죽은 나무의 잎에서 나온 영양과 어미 살이 썩으며 남긴 에너지를 먹으며 다시 자라 바다로 가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연어를 보면 가슴이 벅차다. 나는 음식을 먹을 때 남기지 않으려고 불가의 스님처럼 싹싹 비운다. 생명의 잔해가 전부 내 생명 속에 들어가 나를 살리고 다시 배출된 그 원소들이 생명의 근원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니까...


 오래전 내 절친이 방부 처리한 특수관에 밀봉되어 썩지 않은 채 백 년이고 천년이고 그대로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시체는 썩거나 화장되어 하늘로 비상하는 것이 좋다. 영생을 믿고 피라미드에 박제가 된 파라오들은 원시 인간의 영생에 대한 갈망이 무지에서 온 것임을 보게 된다. 생명 장치는 죽음이라는 최고의 장치로 고안되어 돌고 돈다. 죽음은 인간 최고의 절정이며 행복한 결말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지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는 다른 생명의 재료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우주로 나갈 수도 있다. 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 이런 상식에 종교적 안목을 추가해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살아간다.


 마늘 싹에서 사설이 길어진 것 같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래서 벅차다. 우리 몸의 DNA 가운데 45%가 바이러스라는 다큐를 보고 놀랐다. 인간이 바이러스로 피해 보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의 세상에 인간이 뛰어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정리도 신박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나의 삶도 사랑한다.


 마늘처럼 내 머리에 싹이 나면 좋겠다.


 https://youtu.be/4 A1 bVDtpm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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