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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Feb 18. 2021

폭설이 지나간 뒤

 겨울폭풍이 지나갔다.


 트레킹화 조여매고 내복도 단디 해서 우주복 입듯 방한복까지 챙겨 입었다. 마지막, 현관문 앞에서 지갑, 휴대폰, 열쇠, 마스크 복창도 잊지 않았다. 오늘은 눈폭풍 지나간 시카고를 두루두루 느껴볼작정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좀 멀리 있는 Target(일종의 백화점)이다. 굳이 오늘 일정에 포함시킨 것은 전자제품 하나를 반품해야 하고 또 내가 원하는 제품이 거기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외출은 폭설이 지나간 뒤의 도시 풍경을 스케치하고 싶었다. 도시의 미국인들은 이런 폭설 후에 어떻게 지낼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사실 난 이 도시에서 매서운 한파를 느끼고 싶었다. 한 달여 전만 하더라도 서울이 북극한파에 크게 혼쭐 나고 있을 때 북한과 위도가 비슷한 이곳은 오히려 따뜻했다. 그땐 시카고 겨울이 겨우 이 정도야? 하면서 겨울왕국을 무시했다. TJ Max에 친절한 아줌마 직원이 말을 시킬 때 시카고에서 겨울을 처음 나는데 겨울이 왜 이 모양이냐 물었더니, 그녀가 함박웃음 지으며 조금만 기다려봐 네 기대를 만족시켜줄걸? 하고 윙크했다. 정말로 그 말 나눈 지 얼마 만에 매일 섭씨 영하 10도 근처에서 한 달 넘도록 살고 있고 해를 잊은 지 오래, 겨울폭풍만 무수히 지나갔다. 미시간호는 얼어 거대한 스케이트장처럼 되었고, 이번에 내린 무릎 높이 눈은 그동안 내린 눈과 섞여 호수 산책길에 눈 언덕이 여기저기 새로 생겨났다.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여기 도시 사람들, 눈이 오면 거의 대부분 어김없이 신발장에 잠자는 앵클부츠 혹은 트레킹화를 신는다. 넘어지지 않고 눈이 신발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겠지. 난 목이 짧은 트레킹화를 신고 나와 집에 있는 앵클부츠가 그리웠지만 그냥 가기로 했다. 시카고의 명물 DIVY(자전거 대여 스테이션) 자전거들은 눈을 맞아 안장이 빙수 같다.  전세버스 리무진 탄 것처럼 혼자 버스 타고 가는데 머리를 깨끗하게 민 단정한 백인 청년이 내 앞에 앉았다. 멋있다. 나도 머리를 밀어버릴까? 하지 마! 넌 어른이잖아. 그래 어른은 평범하고 개성이 없어야 해. 어른은 참 아는 것도 많아 못하는 것도 많다.


 내가 어릴 때는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았다.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 저수지는 겨울엔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그때도 눈이 많이 와서 스케이트장이 오픈하나 안 하나 가 보았다. 얼음에 눈이 덮여 있고 그날 좀 따뜻해서 개장을 안 할 것 같았다. " 야! 짱돌 하나만 줘봐" "여긴 돌이 없는데? 뭐하게?" 같이 간 친구 대답을 건성으로 듣고 두리번거리다 흙에 파묻힌 큰 돌을 찾았다. 그런데 용써 뽑아보니 돌이 내 머리 만하다.(난 중학생) 그래도 어슬렁 거리는 주인이 없어 보여  그 큰 돌을 저수지 얼음 위로 냅다 던졌다. " 쿵, 우지지직" "누구야! " 스케이트장 비닐하우스에서 건장하고 덩치 큰 털보 아저씨가 뛰어나왔다. "도망가!" 우리 둘은 냅다 뛰었다. 정말 숨이 멎을 때까지 우사인 볼트처럼 달렸다. 한 10분쯤 달리자 털보 아저씨가 점처럼 보였다. "야, 안 온다 걸어가자" 우리는 햇살이 잘 드는 담벼락에 숨을 몰아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 그러니까 그 큰 돌을 왜 던져?" " 우리 얼굴은 못 봤겠지?" 나는 교회 중등부 학생회장이고 학교에서도 평판이 좋아 착해야 한다. 돌로 나쁜 짓 한 것이 소문나면, 특히 여자애들이 알면 더더욱 안된다. 다행히 같이 간 친구는 교회를 다니지 않아 그 녀석 입단속만 제대로 하면 된다. 둘이 따뜻한 햇빛을 맞으니 긴장도 풀리고 해서 집으로 갈 생각은 안 하고 장난치며 계속 앉아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목을 세게 잡았다.


" 잡았다 이놈" " 아아, 아파요"


" 너 이노무시키 저수지에 돌 던졌지? 누가 시킨 거냐? 말해!"


 주인은 움푹 파인 무서운 눈으로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 아니에요, 저 스케이트 타고 싶은데 문 닫은 거 같아서 얼음 얼었나 던져 본거예요"


" 야! 이 녀석아, 그렇다고 니 머리통만 한 걸 던져?"


 아저씨는 한 손으로 자전거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 내 귀를 찢어질 듯 아프게 잡아끌고 갔다. 한참 끌려가 비닐하우스에 던져졌다. 그런데 그 안에는 우리 교회 여학생들이 개장을 기다리며 난로 쬐고 앉아 있었다.


 " 이놈이야 이놈, 이놈이 얼음 깨서 장사 못하게 돌 던진 놈"


 아저씨 부인도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 아이고, 생긴 건 부잣집 도련님 같은 게 왜 그런뎌?"   나는 그날 비닐하우스에서 원산폭격하고 물구나무서서 빠따를 맞았다. 요즘 같은 "학폭"식으로 말하면 "저폭"이다 (저수지 아저씨에게 맞은 사건)  나는 그날 한 시간쯤 기합 받고 ( 아저씨는 자기가 해병대 출신이라고 했다. 그날 귀신 잡는 아저씨는 애를 잡았다.) 그렇게 맞고도 창피해서 집에 가서 말하지 못했다.  


 다음 주말, 스케이트 가지고 저수지에 갔다. " 뭐여? 너 그때 그놈이지? " 아뇨! 오늘은 손님!" 아저씨는 그제사 미안한지 웃어 보였다. " 오늘은 공짜로 타" " 진짜요?"   훗, 어려서 부터 매로 돈을 벌었다.

 그날 나는 연습하던 코너링을 멋있게 돌고 신나서 눈으로 만든 경계선을 폴짝 뛰어넘다 발랑 넘어져 기절하고 말았다. 또 비닐하우스에 실려갔다. " 아그야, 정신이 드냐?" 얼마나 지났을까? 또 그 아저씨가 눈앞에 있다. " 너 참 가지가지한다. 괜찮아?" 그때 그 해병대 털보 아저씨 눈은 참 착해 보였다. 정말 날 걱정하는 하얀 눈빛이었다.


 그렇게 나의 겨울은 온통 눈빛 추억이다. 눈이 오던 크리스마스 때 청년들과 새벽송을 돌던 추억, 고3 겨울엔 "비중격 만곡증"이란 이비인후과 수술하느라 병원에 입원했다. 몇주 뒤  크리스마스이브에 퇴원했는데 그날따라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옆 침대 꼬마 고모가 (S여대 다니던 2년 연상 누나) 그 아이 간호하느라 매일 왔었고 나는 곧 그녀와 친해졌다. 함박눈 맞으며 퇴원하던 날 , 그녀는 병원 현관에서 아이를 안고 배웅해 주었다. ( 내 지난 브런치 글 "추억의 눈물"을 다시 읽어 보았다) 병원 앞 거리 레코드 가게에는 "기억이란 사랑보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한국의 눈은 정말 눈부시게 새하얬다.


 상념에 젖어 멍하고 버스 창을 내려보는데 휴대폰이 내리라고 한다. 이제 모르는 길은 휴대폰이 시키는 대로 가야 한다. 내려서 10분쯤 걸어가는데 보도가 드문 드문 눈으로 막혔다. 한 번씩 무릎 깊이의 눈을 헤치며 목적지로 향했다. 재미있었다. 웃음도 나고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내가 점점 어린이로 변하고 있었다.  Target에서 물건을 반품하고 원하는 제품을 구했다. 이제 거꾸로 다시 눈을 헤치고 걸어 집 근처 Chicago Riverwalk를 걷기 위해 길을 떠났다.


 주로 호숫가를 산책하고 강 주변은 처음 걷는데 이 길도 참 재미있었다.  강변 산책로에 눈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공공시설의 눈을 참 잘 치운다. 우리 같으면 우선순위에 들지 못하는 곳이 치워져 있다. 강변의 웅장한 건물들을 마음에 담으며 걸어갔다. 폭설이 지난 다음날 하루는, 내 마음에 아주 중요한 추억이다. 나중에 혹시 요양 감옥에 갇혀 있거나 암에 걸려 투병하면, 혹은 더 가망이 없어 호스피스에서 임종을 기다린다면 오늘 같은 기억이 나를 더 살아가게 할 것 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다른 곳은 고장 나도 뇌만큼은 망가지지 않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카메라보다 선명하게 풍경을 눈에 담고 작은 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귀에 담았다.  도심의 깊은 곳에 다다르자 길은 끝나고 돌아서야 했다. 잘 치워진 눈길 따라 구경 다했으니 이제 낯익은 미시간호로 돌아가면 된다.


그런데 돌아서는 순간 갑자기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다.  


아까 오면서 본 건물들이 돌아가는 방향에서 보자 모두 낯선 풍경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삶의 내리막에 보이는 오르막 때 풍경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같은 길이나 다른 길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올라갈 때 생존 목표 때문에  보지 못하던 것을 반환점 돌고 나면 더 섬세하게 보고 느낄 수 있음에 각성이 찾아왔다. 나는 폭설이 지나간 뒤 도시를 걷다 앞으로 내가 생각할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을 하나 더 발견했다.


삶은 그래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https://youtu.be/WoCC8 G5 faBc? list=RDWoCC8 G5 f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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