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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Feb 27. 2021

노숙인과 노숙견

 그 청년이었다.


 그때도 미시간 애비뉴에서 구걸하던 개와 청년을 보고 왠지 개가 더 불쌍해 복잡한 마음만 안고 못 본 척 길을 건넜었다.  동정을 유발하려고 떠돌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아니야, 그러면 개가 도망가겠지. 코로나로 직장과 집을 잃고 애견과 길에 나온 걸 거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은행에 가서 현금을 좀 찾아 다시 가 볼까? 아니야. 은행은 너무 멀어. 잠시 망설이다 나는 가던 길을 무겁게 갔다.

  

 그래도 그들을 잊지 않았다. 나는 마음에 담아둔 생각을 꺼냈다. 지갑 한 칸에 그들을 위해 현금을 보관했고  애견에게 먹일 촉촉한 습식 고기 사료 한팩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하지만 청년과 개는 한동안 그곳에 보이지 않았다. 폭설 탓도 있지만 조금 걱정 되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이 마침내 나타났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한 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햇살이 밝아서 버티기가 조금 나아 보였다. 나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아이 먹이를 꺼내 수줍게 말을 걸었다. " 저기, 내가 당신 개를 위해 음식을 준비했는데 먹여도 될까요? " 처음으로 그를 자세히 보았다. 당연히 돈이 없어 마스크는 쓰지 않았고 어쩌면 사람들은 코로나 감염 때문에 가까이 오지 않는지 모른다. 노란 머리에 하얀 피부, 미국의 기득권 인종이다. 나이는 30대 초반 지친 모습이지만 착하게 생겼다. 하긴 세상은 착한 놈에게 안 어울리지, 어떤 악한 놈이 감원하면서 가장 착해 보이는 놈을 골라 가스실에 밀어 넣었을지 모른다. 내 아들은 이 코로나 시국에  직원들 정리 해고하느라 살해 위협도 받았다고 했다. 내 아들이 게슈타포? 혹시 아들에게 잘린 건 아닐까? 요즘 내가 잔소리 몇 번, 화 한번 낸 것 가지고 게슈타포처럼 군다.

 

 가족끼리 말 안 하고 지내면 서로 집에서 구걸하는 "가숙인"이다. 

 노숙인의 가장 큰 고통은 경제적 궁핍과 안전한 집이 없는 것이지만 타인의 무관심도 한몫할지 모른다. 애견도 집에서 무관심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가숙견이다.


 하루는 한국의 여동생이 재미있어 죽겠다며 나에게 일러바쳤다. "우리 딸이 머라는 줄 알아?  너는 엄마를 어떻게 생각해?"하고 물었더니 " 흠, 세상에서 제일 좋은데 제일 싫어" 하는 거야. "그게 무슨 뜻?" 하고 다시 물으니 "잘 생각해봐" 하면서 날 가만 쳐다보는 거야 " 좋은데 싫다?"  그거,  나 이제 알 것 같아. 둘이 한바탕 웃었다. 내가 지금 그것을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체험 중이다. 가족은 오래 같이 있으면 좋은데 싫다. 그래서 노숙인이나 가숙인이나 노숙견이나 가숙견이나 그 지위는 같다.

        

" 고마워 " 노숙인이 좋은 듯 수줍게 웃었다.(그때 정말 서로 의지하는 그의 애견인 것을 느꼈다.)


 애견 고기 팩을 열자 사료 광고 그림보다 더 먹음직 스럽고 촉촉한 고기 덩어리가 나왔다. 맛있겠어, 다행이야 잘 골랐구나. 아이는 며칠 굶은 듯 게걸스럽게 내 작은 사랑 한 덩어리를 정신없이 먹어치운다. 미안했다. 언제 볼지 모르고 가지고 다니기 무거울까 봐 조금 큰 깡통 사료를 집었다가 내려놓고 좀 작은 팩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종류별로 몇 개 더 챙겨야겠다. 아이가 먹는 모습을 보다 갑자기 행복이 밀려왔다, 이 행복감은 지난번 주저하며 지나쳐버린 내 후회를 용서하고 오히려 기쁨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처음이라 내 인생 기억에 남기고 싶어 허락을 구한 후 식사하는 아이 사진을 찍었다. 내가 준 음식을 먹는 아이 앞엔 건식사료도 한 줌 놓여있지만 맛난 고기 먹느라 사진 찍는 것도 모르고 녀석은  자기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노숙인이 갑자기 녀석 얼굴을 들어 보이려 하자 나는 괜찮다 하고, " 아 참, 그리고 작은 돈이라 미안해" 하면서 너 주려고 지갑에 보관해 두었던 현금을 너에게 건넸다. 그는 코로나를 의식해 조심스레 손끝으로 돈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그들도 지폐를 꺼내 주었다. 주인과 함께 지나가던 개가 노숙견을 핥아 주었다. 그 모습에 잠깐 눈물이 날뻔했다. 다 아나 봐, 어쩌면 개는 인간보다 더 깊은 대화를 지도 몰라...  


 조용히 그 자리를 떴다. 길가던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노숙인과 노숙견에게 관심을 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은 뿌듯했다. 그들은 오늘 부자가 되었고, 나는 기쁨에 취했다.


https://youtu.be/zN4tm--Te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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