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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04. 2021

의심하고 확인해

 나 닮은 동생의 카톡 전화가 한국에서 걸려왔다.


 " 아 정말 미치겠어! 완전 속은 거 있지?"

 

 그녀는 오랜만에 휴가를 받은 딸과 지방에 계신 시댁 어른들을 모시고 통영을 여행 중이었다. 평소 이용하던 Airbnb로 숙소를 예약하고 귀염둥이 애견 로이까지 함께했다. 상궁 노릇 할 동생의 여행은 노동에 가까워 보였지만 출발 때 기쁨이 가득해서 그나마 괜찮아 보였다.

 

" 문제가 뭐야?"

" 아 글쎄, 숙소가 인터넷 나온 거랑 너무 다른 거 있지? 정말 후져! "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인터넷과 다르지 같은 데가 어디 있냐?" 그래도 속으로만 생각하고 위로해 주어야 했다. 그러니까 인터넷 정보는 항상 먼저 의심하고 확인하라고 했잖아? 네가 예약했어? " 아니 우리 애가 했지, 나도 하나 골랐는데 걔가 이게 더 좋다면서, 사람들 평가 댓글이 맘에 든다고 고른 거야" 평가 댓글도 믿을 수 없는 것을 왜 모르지? 자, 우선 심호흡을 하고 진정해, 긍! 정! 알지?  웃고 넘어가자 .

상황이 나쁠 때는 긍정적 마음이 최고야!      

  여기 시카고에서도 그랬다. 속은 것은 하나 없는데 인터넷 정보는 뭔가 다르다. 아니 크게 다르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애들러 천문대 앞에서 바라보는 시카고 스카이 라인도 처음 관광으로 보던 때와 너무 다르다. 그건 당연한 일이고, 여기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정보를 찾는데 둘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


 코로나 시국을 집콕으로 연명하다 큰 맘먹고 방문했던 핸콕 타워 John hancock Center도 그랬다.  그날은 코로나 때문에 전망대 아래층 레스토랑과 칵테일 라운지가 문을 닫는 바람에 "생일날 존 핸콕 타워에서 먹으면서 일몰 구경하기" 계획을 일단 접게 되었다. 하지만 아쉬워서 계속 웹 서핑하다 유일하게 오픈한 꼭대기 전망대에 무료 칵테일과 관람권 할인하는 티켓을 발견했다. 윌리스(구. 시어즈) 타워만 여러 번 가봐서 이번엔 핸콕의 일몰을 기대하며 마음도 같이 설렜다.


 칵테일 코너 팁도 현금으로 준비하고 드레스 코드도 있다 해서 평소 즐겨 입던 산책 복장에 빵모자도 포기하고 시린 머리로 추위를 참으며 나름 점잖게 올라갔다. 그렇게 어리바리(처음 해보는 것에 내가 항상 이렇다) 전망대에 올랐는데 아, 이건 뭐, 완전 실망이다. 여느 전망대와 다를 것 없는 가볍고 흔해빠진 곳이다. 내가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던가? 음료코너에서 예약 바코드 보여주고 제일 잘 나가는 것을 달라 했더니 애플 사이다에 진을 섞은 싸구려 맛을 주었다. 핸콕 타워 일몰이 윌리스 타워보다 훨씬 멋지다고?  한국에서 관광 온 사람들이 블로그와 너튜브에 쏟아낸 정보도 참고했는데 그들 시선의 최고가 내 눈높이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날 결국 "인터넷 정보는 의심하고 확인하라"는 교훈만 한잔 마시고 서둘러 내려왔다.




 내 동생은 기계치다. 그래서 내가 바다 건너 도망 와도 기계에 관한 것은 나를 시킨다. 

 대신 그녀는 사람과 하는 업무와 물건 고르는 데 탁월한 능력자다. 내가 한국 생활할 때도 그녀가 없었다면 오피스텔 구하기부터 계약에 이르기까지, 보나 마나 이상한 데서 살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운도 좋다. "넌 장님이 문고리 잡는 식으로 살아, 난 뛰어난 정보 능력으로 살게." 내가 그녀에게 정보 갑질 할 때 잘난 척하는 말이다. " 그래도 괜찮아, 결과만 좋으면 되지" 나의 정보력과 그녀의 직감이 뭉치면, 한 번만 의심하고 확인해서 얻은 것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물론 누군가 죽자고 속이면 당하겠지만.       


 " 아,  또 미치겠어 "


 무슨 일이야? 그녀는 무척 화가 나 있었다. " 여기 지금 비도 많이 오고 물 사러 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야. 우린 10층이고." 그럼 우선 급한 것만 조금 사서 걸어 올라가. " 문제는 그게 아니라 여기를 참고 또 참으려는데 이런 게 신경 딱 건드리는 거지" 숙소 예약한 조카는 아예 엄마 분노를 피해 이불속에 숨었다. 보내온 숙소 사진을 보니 허름한 실내에 귀염둥이 로이도 눈치 보느라 불안한 눈빛으로 멍 때리고 앉아있었다. 어른들 힘드시겠다. 우선 화 좀 가라앉혀. Calm down!


 미국에 살 때 그녀는 매일 싱글벙글 웃었다. 영어에 취미가 없어서 말도 거의 없지만 동양인 미모는 서양 남자에게도 통했다. (나는 한국 여자들이 대체적으로 아름답다 생각한다) 산책길에 자주 마주치던, 나에게 무심했던 남자들이 아주 멀리서부터 눈웃음치며 그녀에게 눈 맞추 하이! 그런다. 동서양 남자 사람들 어디나 못 말린다.  동생이 미소 지으며 "하이!" 하고 응대하면 그 남자도 덩달아 신이 나서 손도 흔들며 포레스트 검프처럼 더 빠르게 뛰어간다.

 

 홀풑마트Wholefood mart에서도 그랬다. 그녀가 뭘 찾다가 남자 종업원에게 물으면 입 찢어지게 미소를 머금고 창고까지 뒤져서 가지고 나온다. 옛날에 내가 찾을 땐 고개 까딱거리며 저리로 가봐, 해서 매니저에게 저 친구 태도 불량하다고 일러바친 바로 그놈이다. 간사한 놈.


 영어 못해도 그렇게 우대받던 동생이 한국 살면서 화가 많아졌다. 한국에 머물 때 나는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옛날보다 잘 사는 것 같은데 국민 모두 화병에 걸렸다. 코로나보다 전염력 강한 그것에 나도 감염됐었다. 지난여름이지 아마, 숙소부터 구하고 집에 필요한, 좀 무거운 물건들을 힘겹게 들고 신호등 없는 상가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바로 그때 승용차 한 대가 아주 무서운 속도로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칠 뻔했다. 사람 우선의 미국 교통문화에 젖어있던 나로서는 용납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도 모르게 Fxxx 이 자동으로 나왔다. 분명히 혼잣말로 욕했다. 그런데 창문 내리고 운전하던 영어가 유창한 그가 들었나 보다, 차에서 내렸다. "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다짜고짜 반말이다. 머리는 반쯤 벗어졌고 체구와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이는 데 내가 너무 어려 보여 반말하나?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 나는 한참 경어를 쓰며 언쟁을 벌이다 " 야, 근데 너 몇 살인데 반말해!" 하고 물었다. "왜? 민증 깔까?" 그가 비웃듯 자신 있게 대답했다.


 민증이 뭐지? 나는 갑자기 어리바리 해졌다. 옆에서 싸움 거들던 동생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동생은 나를 한심한 듯 보다 귀에 입을 대고 "바보야, 주민등록증"


 아...


 그가 구스 goose처럼 꽥 소리 지르며 말했다.

 

" 나 환갑이다 어쩔래?"


" 나보다 훨씬 나이 많네. 그만합시다"  


후후, 본질은 사라지고 도토리 키재기로 싸움이 끝났다. 애들처럼 싸웠다. 동생은 지금도 그것을 놀린다.


" 나이 많네, 그만합시다! 그게  뭐냐?"


그 사람 진짜 대머리 동안 이더라고...        


 동생 일행은 다음날 아침 후져서 불편한 숙소를 옮겼다. 

 집주인에겐 미안하지만 엘리베이터 고장 때문에 나간다고 하자 주인이 사과하며 환불해 주었다. 그래도 주인은 착하네... " 그래서 그냥 취소하고 급하게 다른 곳 얻었어. 그런데 거기도 후져. 하하 " 그날 이후 나는 태평양 너머에서 의심하고 확인하는 그녀의 "정보 보조원"으로 일했다. " 애견 동반 식당 찾아줘" "장어구이집 찾아줘" 나, 사람 빅스비가 그녀에게 받은 보수는 " 최고야, 너무 좋아!  땡큐"가 전부다.


 " 오빠 빅스비! 다음엔 전기로 충전해 줄게 수고했어! "




 마트에서 시금치를 사 왔다. 하루 만에 냉장고에서 많이 시들었다.


 큰 보울 bowl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 설탕을 적당히 녹이고 뿌리째 조심스레 담가 두었다. 밤사이 당분을 먹은 시금치가 아침이 되자 꽃처럼 피어올랐다. 난 확실하게 싱싱해지는 이 정보를 애용하고 즐긴다. 상추도 그렇게 한다. 우주에서 한번 태어나 자기 형태를 갖추고 마지막으로 보게 될 찬란한 세상을, 당분으로 힘 얻어 한번만 더 보라고... 작은 부스러기 하나까지 정성껏 살려놓는다. 그리고 하루쯤 뒤에 감사함으로 네 생명에 빚을 지며 내 안에 머물게 한다.


나는 그들을 먹지만 그들도 나를 먹는다.


인터넷은 자주 거짓말하고 자연은 항상 솔직하다.




      https://youtu.be/_jhXtpjJR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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