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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09. 2021

지고 있을때

 나는 지고 있을 때 의도적으로 뇌 스위치 여럿을 오프 한다.

 좌절감, 염려, 두려움, 우울감, 모욕감, 패배감 등의 스위치...


 인생은 싸우려 태어난 것 아닌데, 우리는 의도치 않게 출구 없는 인생 전쟁터에 유기되었다.

 

 어떤 경쟁이든 이기지 못하면, 좀처럼 사람 구실 못한다 소릴 듣는다. 인생싸움에 익숙하고 이겨본 경험이 많은 승자 어른은 자신의 아이도 강하고 능력 있는 승자로 키운다. 하여 이기는 싸움의 기술은 대물림된다. 아날로그 피를 먹고 자란 세대는 디지털 피를 먹는 아이들과 달라서 시간이 흐르면 아날로그인은 자연스레 줄어들테고 그들의 낭만도 곧 문명에서 사라진다. 냉정하고 이기적인, 남 생각 안 하는 디지털 피를 먹고 자란 아이들은 여러모로 기계를 닮았다.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피를 섞어 먹으며 적자생존의 본능을 따라 경쟁하고 싸우며 자랐다. 이기려고 살았다. 이기면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어 그것이 곧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다. 결국 지고 있을 때 보다 이길 때가 많았다.  그래서 지고 있을 때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지고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축구부가 있었다. 운동신경이 좋은 덕분에 나는 대표 선수로 뽑혀 방과 후에도 훈련하고 노력해서 우리 학교는 서울 시장배 축구대회  예선을 통과하여  결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그날 결승전에서 우리는 지고 있었다. 지니까 경기시간은 더 빨리 흐르고 몸은 생각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지나보다" 체념이 이길 무렵 우리 팀의 손흥민이 극적인 골을 성공시켰다. 경기는 연장으로 이어졌지만 승부를 보지 못한 채 양쪽 응원단이 모두 모인 곳에서 승부차기를 하게 되었다. " 자, 맘 편하게, 잘해보자, 이제 다 왔어. 파이팅!" 감독 선생님이 우리를 독려하고 우리 팀의 손흥민, 나는 마지막 키커로 선정되었다. 순서에 부담을 느꼈다. 매도 차라리 먼저 맞는 게 낫지, 마지막에 차는 것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엔 골을 성공시키는 문제보다 내가 혹시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내 마지막 골이 성공하면 우승이고 실패하면 완전 망하는 나쁜 순간을 맞이했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연호하고 제발 골을 성공시켜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초롱초롱 주목했다. 운동장까지 반칙으로 걸어 나온 키 작은 교장 선생님은 키커 하나 하나와 악수하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믿는다는 뜻으로 두 손을 꼭 잡고 눈도 지긋이 마주치며 "알지?" 약속의 레이저 눈빛을 쏘아주었다.



 내 공은 하늘로 멀리 날아갔고 내 몸은 땅속 깊이 추락했다.



 나를 연호하던 사람들의 눈빛이 증오의 눈빛으로 순식간에 바뀐 것은 햇살이 밝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고 자랐다. "지면 아프다"는 암시도 그때부터 생겼다. 아니 어쩌면 마음의 상처였다. 그 후 나는 유별난 승부욕으로 앞장서서 공부하고 운동하고 노력하고 경쟁하며 살았다. 심지어 윷놀이 까지도.,..



 아이들이 미국에서 자라고 나를 닮은 큰 아이는 고등학교 축구부에 선발되어 뛰게 되었다. 그 당시 미식축구가 대세인 미국에서 학교에 축구부가 있는 것도 신통했고 성적도 좋아야 운동부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같이 특기생이 선수가 아니라 취미로 자기 학교 선수가 되는 것을 명예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시합 때마다 경기를 보러 갔다. 손흥민 아들은 축구 레슨 한번 안 받고도 공을 잘 찼다.(다른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축구교실을 다녔다) 그날은 야간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파란 잔디와 밝은 조명은 여기가 바로 미국이라고 환하게 자랑했다. 전반전 끝나고 굳이 아들을 내 앞으로 불러 훈수를 두었다. 자유롭게 뛰게 놔두지 어쩌고 저쩌고, 아들은 열중쉬어 자세로 내 말을 다 듣고 뛰어나갔다. (잘난척하는 나쁜 아버지의 선례다) 그날은 이웃학교와 중요하지 않은 경기였지만 승부는 나지 않았고 페널티킥을 하게 되었다. 아들은 마지막 키커가 되었다. 내 어린 시절이 재현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 텐데 아들은 지금처럼 무표정이었다.


그날  아들도 실축했다. 우리 집 식구는 페널티킥을 차지 말아야 한다. 훗날 아들이 말했다. "그때 아빠가 하도 잔소리하고 시끄러워서 페널티킥 못 넣으면 죽겠구나 생각했는데 결국 못 넣었어" 웃기는 놈 핑계는 왜 나 한 테? (나는 그날 잘했어! 기운 내! 라며 밥을 사주었다) 하지만 녀석 말이 맞는지 모른다.


나도 "교장 선생님 눈만 마주치지 않았다면...", 아들도, "아버지만 없었다면..."



 

 삶에 지고 있을 때 그 중압감을 이제 겨우 이해한다.

 

 운동과 다르게 우리는 입시에서 낙방하고, 해고당하고, 원치 않는 이직, 아프기도 하고, 사기당하고, 사고당하고, 모욕을 당하기도, 싸우고 헤어지기도 한다. 모두 인생의 지는 경험이다. 지고 있을 때 그 중압감, 두려움, 좌절, 우울, 무능함, 낮은 자존감 등 모든 나쁜 것들은 질 때 온도를 틈타 몸에서 탄생한다. 이전에 나는 고난을 또 하나의 배움으로 "골짜기가 깊으면 산이 높다"는 식으로 좋게 생각했다. 하지만 고난이 꼭 좋은 것은 아니더라.        

                         

 생각이 바뀐 나는 지고 있을 때, 이기려 하지 않고 비기려고 한다.(당연한 말 같지만, 지면 더 이기려고 힘주는 것을 생각해서) 비긴다는 것은 싸우기 전의 상태 즉 내 마음이 평상심으로 충만한 처음의 상태라고 본다. 승부를 뒤집어 역전하려 노력하지 않고 일단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랬더니 지고 있는 동안이 적어도 초조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일이 잘 안 풀릴 때가 더 자유롭다.

 

그 자유는 몸에 힘을 빼주고 문제를 직관하게 해 준다.        




 썰물을 바라볼 때 그랬다.


 서해안 갯벌에서 아이들과 놀아준 적이 있었다. "가득 참"이 나가는 순간  또 다른 생명의 몸짓이 갯벌을 가득 메우고 그곳에서 생명의 망치로 생명을 건설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로 구멍 하나 파다, 주변에 가득 찬 생명의 하모니를 눈여겨보았다. "비어있음"은 없는 것이 아니라 "비움이 있는 것"처럼 우리 삶에 물이 나가는것도 꼭 있어야 하는 순간인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아픈 것을 사랑하고 지는 것을 이해하고 느린 것과 실패를 진심으로 존중한다.


 나는 삶에 지고 있을 때 본능이 생산하는 부정적인 볼륨을 줄이고 원래의 나로 회복되기를 먼저 애쓴다.

 그리고 평화가 내 마음을 주장할 무렵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적어도 나의 지는 순간은 이전처럼 초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단단해진 내가 그 순간도 즐기는 초연함을 실험한다.


나는 지고 있을 때 순수함으로 나를 충전한다. 그런 나를 보는 것 또한 나름 재미있다.   

 


    https://youtu.be/dCzSLm0Lpx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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