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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16. 2021

Riverwalk의 우사인 볼트

  달리는 모습이 우사인 볼트 같았다.


 볼트처럼 흑인이라 그런지 롱스트라이드 주법으로 그는 폭발적인 속도를 내고 있었다. 내가 따라잡으려면 어림없어 보였다. 게다가 나는 수년 전 뇌경색 때문에 한쪽이 조금 불편해 그런 속도로 달리기는 불가능 했다. 그래도 난 저 녀석을 꼭 따라잡아야 했다.

     



 며칠 전 얀센으로 백신을 맞았다.  다행인가? 나는 먼저 맞는 것이 더 좋았다. 꼬박 이틀 조금 아팠다. 타이레놀로 버티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혈압환자라 매일 운동을 해서 이틀이나 쉬었으니 오늘은 미시간호보다 조금 더 가까운 리버워크로 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프런트 근무하던 데이빗이 반갑게 인사한다. " 데이빗 이것 좀 봐" 나는 휴대폰에 저장한 백신 기록 사진을 자랑했다. " 넌 백신 맞았니?" "아니, 내일 예약이 잡혀있어"  그는 즐거워하는 내 모습이 아이 같은지 피식 웃었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나섰다. 커피색 슬링백에 휴대용 매트와 새 먹이도 챙겼다.  날이 맑아서 그런지 산책 나온 사람들과 강아지도 많았다. 강에는 유람선이 다니고 식당도 문을 열었다. 아름다운 빌딩 숲에 초록색 강물을 안고 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걷고 있었다.


 오늘은 나도 천천히 달렸다. 미국에는 한국에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간판이 없는 깨끗한 건물과 어디에나 흔히 보는 쓰레기통이다. 우리나라도 건물에 간판 떼고 휴지통 좀 많이 놓으면 국제적인 도시 모양이 생길 텐데 참 아쉽다는 생각하며 (물론 종량제에 대해 알고 있다) 오랜만에 달리는 속도를 조절해 인터벌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조금만 더 가면 전쟁 용사 이름이 벽에 새겨진 작은 분수대가 나온다. 한참 달리자 인공 폭포 물소리가 제법 시원한, 비둘기가 분수대 안에서 샤워하는 아담한 쉼터에 도착했다. 비둘기에게 준비한 해바라기 씨를 던져주자 동네 비둘기가 다 모여들었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곳에서 누리는 시간은 참 소중하고 행복하다. 흔한 말 같지만 내가 죽기 전에 과거를 회상한다면 시카고의 미시간호와 리버워크는 잊지 못할 것 같다. 혼자 일 때와 둘이 있을 때 그 행복감이 많이 다른데 여기는 혼자 올 때 더 행복하다. 클래식 음악을 귀에 꽂고 눈은 휴대폰 사진을 정리하며 자고 있을 한국 지인들에게 손가락으로 카톡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예상보다 오래 앉아 있었다. 바로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옆 계단으로 우르르 뛰어 내려왔다. 두 명의 백인은 자전거를 들고 내려오고 일행이 아닌듯한 한 명의 흑인은 내려오다 나와 눈이 탁 마주쳤다. 그런데 그는 뭘 잊고 온 듯 다시 계단을 타고 뛰어 올라갔다.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기분이 뭐랄까 누군가 뒤에서 나를 계속 쳐다본다는 느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정말 까무라 칠 뻔했다. 아까 계단을 다시 올라갔던 그 흑인이 바로 내 뒤에 앉아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도 당황했다. 놀람의 겨를도 잠시, 그는 옆에 내려놓은 내 슬링백을 집어 들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생각할 겨를 없이 나도 반사적으로 그를 뒤쫓아 달렸다. 바로 그때 그놈이 우사인 볼트 같다는 생각을 했다. 키는 한 180cm 정도, 하얀 운동화에 하얀 후드티와 회색 러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정신없이 뒤 따라 달리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911에 신고해 달라고 소리 질렀다. 


 미국 경찰은 예산이 많아서 참 신기하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갑자기 나타난다. 쫒아가다 보면 경찰이 올 것을 믿었다. 놈은 달려가며 훔친 내 슬링백을 자기 어깨에 걸었다. " 오, 어디 해보자 이거지?" 예수께 나아 가면 앉은뱅이가 일어났다 하는데 나는 내 가방을 향해 나아가니 왼쪽 다리가 정상이 되어 기적처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놈은 장애물 선수처럼 사람을 피해 달리고 나는 비킨 사람을 다시 피해 뒤 따라 뛰었다.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놈은 방향을 바꿔 강변 산책로를 벗어나 도심, 노스 클락 N. Clark st으로 올라가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면 경찰이 와도 우리 위치를 찾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집념이 분기탱천하여 속도를 올렸고 놈을 잡을만할 거리로 가까워졌다.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멈추어 대면하여 서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이리 오라고 그를 불렀다.  "내려놔. 놓고 가면 용서해줄게" 그는 내게 흑인이 하는 욕을 하며 옆에 떨어진 벽돌을 집어 위협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이번엔 내가 도망가기 시작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뒤 바뀌었다. 큰길로 도망가는데 저 멀리서 기마경찰이 말을 타고 다그닥 다그닥 달려온다. 나는 뛰던 길을 멈추고 의기양양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이번엔 놈이 다시 도망갔다. 아까 막힌 골목 말고 다른 곳으로 뛰었다. 그의 속도가 존경스러웠다. 지치지도 않는지 정말 빨랐다. 나는 다시 따라가고 놈은 뛰면서 내 슬링백을 벗어던졌다. 결국 놈은 도망갔고 나는 내 가방을 되찾았다. 나는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긴장이 사라지자 죽을 것처럼 숨이 차올랐다. 경찰이 몰려왔다.  기마경찰, 자전거 경찰, 사이렌 소리 자동차 경찰...



 

그날 이후, 나는 산책할 때 지갑은 바지 왼쪽 뒷주머니, 열쇠는 바지 앞 주머니, 휴대폰은 바지 뒷주머니. 슬링백에는 해바라기씨와 천으로 된 휴대용 매트만 넣고 다닌다. 앞으로 누가 내 가방을 훔쳐 달아나면, 그냥 쳐다볼 것이다. 누군가 말했지 "삶은 주저흔의 집적"이라고 나는 무엇 때문에 그를 주저하지 않고 악착같이 쫒아갔을까? 어쩌면 내 미국 운전면허증과 한국 면허증에 적힌 내 이름을 잃어버리기 싫어 그랬을지도 모른다.


살다가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말자,
   그것은 다 살아 있어 생기는 일이다.      




                           

https://youtu.be/CN05 QBLf3 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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