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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Oct 22. 2021

외면

 새벽에 눈 뜨면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죽었겠다. 애써 사이렌 우는 소리를 외면했다. 휴대폰 들어 밤새 한국에서 누군가 남긴 문자를 기대한다. 아무것도 없다. 이어 여기 날씨, 한국 날씨 보고, 참 이상하지 고국에서 도착하는 비행기를 앱으로 본다. 긴 비행 마치고 오헤어 공항에 들어오는 한국인도 상상한다. 그리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원두를 갈고 죽어도 포기 못할 새벽 커피 한잔을 소중하게 천천히 음미하며 즐긴다. 


 하루의 시작은 겨울의 자동차 워밍업과 비슷하다. 나는 반드시 엔진 온도가 충분히 올라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야 차가 잠에서 깨어나 달릴 준비가 되는 것을 알아서다. 한국은 춥다는데 여기는 그저 서늘한 가을이다. 자동으로 맞추어진 실내온도는 계절에 관계없이 일상 온도를 제공해서 아낌없이 헤프게 쓰는 미국인들의 삶은 직장만 좋다면 한국보다 훨씬 좋다. 


 뇌가 워밍업 끝나면 두 나라 뉴스를 본다. 제목만 본다.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스킵하고 스포츠, 여기서 제일 오래 머문다. 아, 다저스가 올해는 안 되겠군. 흥민이가 원정을 안 따라갔더니 망했구나. 부산에서 열리는 BMW LPGA에서 코로나 방역 때문에 외국선수들이 격리당해 고통을 느낀다는 기사는 이해가 확 다가왔다. 자유로운 국가에 살다 통제된 나라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는 자유롭지 않으면 모르는 개념이니까. 


 살면서 불편한 소식은 자꾸 외면하게 된다. 



 나도 외면당해 보았다.


 더 이상 그들에게 이익이 없거나 쓸모가 없어지면 그렇게 버려졌다. 상대 입장에서 보면 원인제공을 내가 한 것 같지만 결과물이 있을 때도 나였고 일이 안 풀릴 때도 같은 나였다.  상황에 따라 그들이 변심한 것이 틀림없다. 나도 사람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나는 늘 사람의 호의를 진심으로 믿었다. 그래서 처음에 너무 좋아하다 시간이 지나면 사태 파악을 하고 멀어지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가족은 그런 나를 보고 둔하다며 처음에 좀 조금만 좋아하라고 충고한다.  나는 상대에 대한 호감을 줄이고 적당히 표현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게 어려웠다.


 나는 요즘 나 자신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고 산다. 어차피 혼자 태어나 혼자 갈 텐데 남의 이목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남에게 인정받아봐야 가져갈 것도 아닐테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아도 삶의 시간은 부족하고 그 이야기만 풀어갈래도 작가의 머리가 필요할 텐데. 그래서 굳이 남을 내 인생에 넣고 싶지 않다. 내 안의 작은 나와 싸우기도 벅찬데 복잡한 이야기를 품은 그들마저 업고 걸어갈 힘은 없다.


좀 더 진작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지나간 시간들이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을 텐데...    


남은 시간은 "너나 잘하세요" 할 거다.    

나는 예민하게 둔감한가보다. 이 시간에 갑자기 상념은 왠일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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