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노아 Nov 09. 2021

한풀 꺾인 사람

긴 여정을 품고 다시 한국에 왔다.

 

 내 몸무게 세배 만한 짐을 골라 엄격한 코로나 방역 벽을 넘어 방역 선진국에 도착했다. 역시 한국은 마스크의 나라다. 허술한 미국과 달리 PCR확인서를 검토하는 관리들이 서류에 적힌 영어는 안 읽고 핵심 단어에만 동그라미 치는 마스크 넘어 예리한 눈빛에 군기를 느낀다. 정육점 돼지고기 엉덩이에 찍힌 파란 스탬프처럼 마침내 합격도장이 찍혀 입국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동생이 구입해 놓은 시골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젠 한동안 업무가 무척 바빠질 것이다. 여기에도 동생은 내게 할 일을 남겨놓았다. 못다 한 시골집 축대 토목공사, 페인트 칠, 축사 철거, 미장, 하... 난 일복 터진 시골 머슴이다. 잔머리 굴려야겠다.


  미국에서 챙겨 온 새 노트북과 새 모니터를 풀자 제일 먼저 미국 방송을 튼다. 일전에 한국에서 미국집에 갔을 때는 인터넷 열자 한국방송을 먼저 틀었었다. 여기서도 영어 백색소음을 들어야 마음이 편하다. 아직 적응이 안 된 거다. 오래전, 후배가 한국에서 교수되더니 " 형, 웃기죠. 미국에서 소주 사러 그 먼 한국 마트 달려가더니, 여기서는 그때 먹던 값싼 양주가 그립고, 왜 그거 중국 뷔페도 먹고 싶더라고요."


 인간은 참 간사하다.
자기가 누리는 <지금>은 항상 불만으로 가득 차있고
자기가 꿈꾸는 세상은 완벽할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지금 여기'가 우주에서 찰나, 생명으로 발현된 가장 소중한 순간임을 이미 알아버린 나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불편에 대한 불만이 지금은 전혀 없다.  


 비행기에서 한국방송을 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스터 빈을 키득거리며 다 보고 나면 한국영화나 예능프로 한 개쯤 보고 마지막엔 한국 뉴스를 본다. 그때 방송에서 신기한 사람 한 명을 보았다. 어려서부터 방송에서 보던 연예인이 오랜만에 출연했는데 그녀는 얼굴이 많이 변해 있었다. 뭐라 할까 차분한 온화함으로?. 세월이 빚어낸 얼굴. 늙은 걸까? 아냐 사람은 어떤 모양으로든 깎이기 마련이지, 그때 "한풀 꺾인"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박정희 대통령이 흉탄에 맞아 쓰러지고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어린 나의 아끼던 자전거가 없어졌다. 그때 나는 무척 슬펐다. 대통령은 한번 되면 영원히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자전거를 도둑맞은 나의 개인사와 겹쳐 그의 죽음이 슬펐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카락 없는 사람이 흑백 TV에 많이 나오더니 결국은 나라를 송두리째 삼켜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컬러 TV 방송을 송출했다.  컬러방송은 대통령만큼  충격이었다.


 동물은 사물이 흑백으로 보인다나? 그때 비로소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느낌이었다.(아담도 먹지 말라던 사과 먹고 눈이 밝아진, 흑백에서 칼라로 세상을 본 것인지 모른다.) 당시 TV의 색상은 엉망이었다. 초기 방송기술이나 장비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텐데 나는 요즘 4k, 8k로 진화하는 색의 세상을 누리고 산다. 공중파 방송의 색도 그때 이후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원색에 가까운 칼라가 한풀 꺾인 고급스러운 색으로 구현된 것이다. 왜 화장한 듯 안 한 듯 그런데 예쁘고 세련된, 그런 것 말이다.


 인간도 살면서 색이 변한다.

 

 어릴 때 나는 듣기보다 말하기, 읽기보다 쓰기, 신중하기보다 행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 나는 컬러 TV의 처음색과 같았다. 아직 내 삶의 색은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이전보다는 아주 조금 개선돼 보인다. 이젠 제법 내 힘으로 나를 꾸짖을 줄도 알고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다듬어 정리도 할 줄도 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요즘은 말하기보다 타인을 잘 들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쓰는 허접한 글보다 영감이 깃든 타인의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쓴 책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내가 어디 를가도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는 책이다. 그녀가 영어로 작업한 글에는 수준 높은 작가의 현란함이 느껴지지만 그녀가 다른 언어로 쓴 글을 보면 신생아 같은 모습, 그녀 내면의 초자아를 몰래 엿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좋아한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다시 읽고 싶은 까닭은 아마 글쓴이의 진정성이 담겨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진정성은 항상 담기 힘들다.  


 가끔은, 탁 놓고 내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고 싶지만 알아버린 것들을 다시 놓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자주 혼자 헤드폰을 끼고 막춤을 춘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푸는 발작이며 기지개다. 내 춤을 훔쳐본 가족은 너나 할 것 없이 미소를 머금고 머리 옆에 손가락을 바람개비처럼 힘차게 돌린다.


직업이 나인 줄 알았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돈이 성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삶의 나무들이 만추의 나무처럼 내 색을 드러내자 나는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이 내 색깔인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변인들에 묻혀 나는 그들처럼 초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가 노란색인 것을 안다. 이제 서고동저의 기압배치로 북풍이 조금만 더 세 불면 잎은 떨어지겠지...


 한국 온 기념으로 자전거 타고 금강 자전거 길을 달려 강경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화초 박범신의 기념물을 보았다. 소설 <소금>의 배경이 되었다는 집을 지자체는 예산 아껴 대충 지어놓았다. 그때 나는 박범신이 강경에서 살았던 것을 처음 알았다. 강경은 젓갈만 유명한 줄 알았더니 기독교(구교, 신교) 성지들이 수두룩하다. 한창때는 인구 십만의 대도시였다는데 이명박이 강을 고치는 바람에 지금은 만명만 산다고 한다. 나는 박범신의 기념 건축물 앞에서 금강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과거의 여러 색을 보고 소리도 들었다. 강은 썩어가지만 과거에는 싱싱하게 출렁이던 푸른색 물과 침략하던 왜놈들의 바람에 나부끼던 총 천연색, 만선 새우잡이 어선들의 웃음소리 등.


 작가는 기어코 하얀색 새우젓을 한 병 샀다. 하얀 새우가 비싸고 좋은 것임은 진작 알았는데 집에 돌아와 냉동실에 잠자던 돼지고기를 하얗게 삶고 몸에 안 좋다는 하얀 밥을 지었다.


새우 한 점에 연 노란  마늘, 짙은 갈색  쌈장을 돼지고기에 얹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채식주의자가 되려고 애쓰지만 아직 준비중이다)

야채가 없는데도 경이로운 맛이다.

역시 한국에 오길 잘했지,

하마터면 햄버거만 먹다 죽을뻔했네.


내 삶은 여러 가지를 만나며 생각하다, 한풀씩 꺾이며 조금씩 고급지게 변해가는 것 같다.   


      https://youtu.be/YRaT88qJago

        

작가의 이전글 외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