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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10. 2021

브레이크

 한국에 와서 자전거를 많이 타게 되었다.

 

어색한 복장, 그리 단단하지도 않은 근육을 노출하는 레깅스 쫄바지에 계절에 맞는 상의와 배낭, 헬멧을 갖추고 나는 자전거를 탄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누나는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를 내 앞에서 엎질렀다. 레깅스 같은 쫄바지를 벗기면서 내 피부는 같이 벗겨졌고, 나는 그 사고로 한 달 동안 불구로 지내야 했다.  그래서 난 쫄바지를 싫어한다.


 동네 슈퍼 갈 때도 이런 복장을 하면 입고 벗고 하는데 성가시고 좀 웃기지만, 폼나는 걸 워낙 좋아하는 나로서는 뭐 그리 불편하지 않다. 그날은 짜장면이 당겼다. 한국인 만의 특권 "짜장면 시키신 분"을 하고 싶었지만 내 성격상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을 좋아하고 짜장면은 역시 식당에서 먹어야 제 맛인 것을 알기에 굳이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한십분쯤 달리면 짜장면 집이 나온다. 구글 맵으로 길을 찾아가는 초행길이라 좀 어리바리했고 옛날보다 내가 자전거를 잘 못 탄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그런지 이번에 뭔가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짜장면 집 입구에 자전거 도로에서 진입하는 오솔길이 있었는데 내리막길이었다. 내려가는 속도가 이건 뭐 장난이 아니다. 마음에선, 이러다가 제어가 안되면 정말 위험할 텐데 하는 생각은 잠시, 자전거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브레이크를 나눠서 눌렀다. 자칫하면 한 바퀴 돌아 우당탕 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상가상 브레이크가 듣지않았다. 양쪽 손목에 핏줄이 설만큼 세게 힘을 주어 브레이크를 잡아 겨우 좌회전에 성공했다. 자전거를 세웠다. 숨을 돌리고 내리막 길을 보았다. 내리막 끝 지점, 바로 앞에는 배수지 혹은 공장 지상 저수조인지 시멘트로 만든 거대한 수조가 있었다. 저기 빠졌으면 아마 심각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십 대 후반 오십 대 초반이 인생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진입한다 생각한다. 혹시 사십 대라도 이직하거나 조퇴를 했다면 내리막길에 들어선 것이고.

 내리막 길에선 브레이크가 잘 들어야 산다. 뭐 굳이 내리막 길 아니라도 삶에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으면 여러모로 곤혹스럽다. 더러운 성질도 브레이크가 필요하고 소비의욕도 성적 욕구도 일에 대한 열정도 브레이크가 필요해 보인다. 내가 내 삶의 지난날을 돌아보니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는 삶을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열정이 앞서 겁 없이 모든 일을 다 해냈다. 미국에 사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막막한 순간이 많았는데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열정은 내리막길 자전거처럼 빠르게 사라지고,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 이모저모로 두렵다. 많은 일에 브레이크를 잡게 되고 무척 소심해졌다. 가끔은 내 급한 성격이 그리울 때가 있다. 때론 식욕이 식을까 봐 배고플 때까지 참다 밥을 먹고, 무엇인가 하고 싶을 땐 벌떡 일어나 그 일을 한다. 조금 지나면 "뭘 그런 걸 하고 그래"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리막길에선 모든 것이 다 쉬이 식는다.




 미국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던 선배는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온다. 그는 입버릇처럼 " 나는 말년에 한국 가서 살 거야"를 말하곤 했지만 정작 여기서 지내는 것은 나고 선배는 아직 미국을 탈출하지 못했다. 선배는 시력이 나쁜 것 빼고 무척 건강한 사람이다. 우리는 미국에서 호기롭게 10Km 단축 마라톤을 했는데 보니까 나는 바다사자였고 선배는 날다람쥐였다. 달리기는 진 걸로 하고 테니스로 싸웠는데 "잘 못해"하던 겸손한 선배는 "라이어!", 날 가지고 놀았다. 내가 그보다 잘하는 것은 겨우 골프 한 종목만 남았다.

 

 선배는 산을 좋아했다. 그는 한 번씩 귀국하면 꼭 산행을 즐긴다. 얼마 전에는 베트남을 다녀왔다 해서 뭐하고 왔냐 물으니까 산을 타고 왔다고 했다. 시시하긴. 우리는 귀국 환영식으로 북한산을 오르기로 했다. 여러 가지 코스가 있었지만 당일코스여서 가장 가파른 언덕을 타고 빨리 오르기로 했다. 그땐 내가 등산화가 없어서 도시 거리에서나 신고 다니는 등산화처럼 생긴 가죽 앵클 부츠를 신고 산을 올랐다.  날다람쥐는 또 혼자 오른다. "선배~ 좀 기다려"  그 소리를 얼마나 많이 했을까. 혼자 가는 다람쥐 세우고 또 세우다 우리는 정상에 도착했고 선배는 깊은 감회에 젖어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내가 꼭 이 도시로 다시 올 거야"(선배는 지하철 서울역 에서도 그렇게 젖어 있었다) 를 다짐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다람쥐, 당신은 미국에서 못 나올걸? 마눌님이 미국을 더 좋아하는데 어쩌냐?"생각하다  혼자 몰래 웃었다.


 내려가는 길은 숨이 턱에 닿던 오르막 길과 달랐다. 무릎이 시리고 신발 덕에 자주 미끄러졌다. 다시는 이런 신발로 산에는 오면 안 돼.  정상에서도 바위에 미끈둥 해서 죽을뻔했다. 내려올 때는 몇 번 넘어졌을까?  날다람쥐는 벌써 내 소리가 안 들릴 만큼 혼자 내려갔다.


"너는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 나를 안 돌아보고 혼자 갈 놈이야"


 선배는 내가 넘어져 한참을 못 내려가자 다시 올라왔다.


"무슨 일이야?" " 넘어져서 좀 그래, 쉬었다 가자"  


 "곧 어두워져서 빨리 가야 할 텐데?"  으이구, 이 다람쥐야......


 며칠을 끙끙 앓았다. 무릎관절은 말을 안 듣고, 엉덩이는 멍 때리고 손바닥과 발뒤꿈치는 피나게 까졌다. 아마 전치 일주일쯤 부상자 명단에 올라 인생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것 같았다. 날 다람쥐는 밥 먹자고 불러내 놓고 나한테 이젠 치타가 아니라 바다사자라고 놀리며 다.  그때 나는 "바다사자는 다신 다람쥐랑 산에 가지 말아야지"를 연신 다짐했다.


내리막길에, 브레이크는 때로 디딤발을 지탱하는 등산화가 될 때가 있다.


" 단디 입고, 단디 신고가라!"


 내가 대학생일 때 어머닌 등산만 가면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항상 배낭에, 싫다는데, 그리 싫다는데 개떡을 넣어 주셨다.  그때 개떡은 메밀가루나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킨 손쉬운 빵 같은 떡이었는데 출출할 때 새콤하니 맛있다. 짐이 한가득이라 마지막까지 다투던 나는 내 고집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검은 봉지 한가득, 친구들 것까지, 개떡을 내 방한복 한 개 빼고 배낭에 욱여넣었다. 그땐 엄마의 예지력을 몰랐다.



 

나는  친구 세명과 함께 지리산을 종주했다. 그때가 가을이라 밤에는 몹시 추웠고 낮에는 선선했다. 오르막길은 젊은 패기가 버무려져서 재미있었다. 게다가 그땐 내가 치타여서 등산의 선두를 꿰찼다. 모두가 지친 정상 부근에서도 "여기서 한번 쉬고 정상까지는 달리기로 시합하자" 결국 나는 정상 정복에 일등을 했다.


" 헉헉, 넌 자슥아... 넌 군사학교 다니잖아?" 친구들은 나를 질투했다.


 문제는 하산길이었다. 내려가는 길에 일박하기로 했다. 그때는 따로 캠핑 장소가 지정되지 않아 산 아무데서나 텐트를 치고 잠을 잤는데, 그날 밤  모아 놓은 쌀을 도둑맞았다. 다음날 우리는 하루 종일 먹을 것이 없었다.


" 맞아, 검은 봉지!"


그때서야 구겨진 검은 봉지에 담긴 어머니 개떡이 생각났다. 옷가지들과 함께 배낭에서 함부로 싸고 풀며  그냥 묻혀있던 개떡!  


"오, 이게 뭐야?"


친구들은 괴성을 질렀고 그 순간 나를 엄청 사랑했다. 울 엄마에게도 "사랑합니다 어머니"를 외쳤다. 선선한 날씨 덕에 다행히 떡은 쉬지 않았고 맛도 기가 막혔다. 우리는 개떡으로 허기를 달래며 하산에 성공했다. 그때 산행의 일등 공신은 개떡이었고 개떡은 두고두고 친구들에게, 하고 또 하는 군대 이야기 처럼 되었. 




나는 요즘 브레이크가 잘 듣는다.  꼭 필요한 물건 아니면 잘 사지도 않고, 삼겹살도, 욕망이 부르면 "살쪄" 하고 개무시한다.  심지어 무거운 물건을 들 때도 조심한다. 나는 뇌경색 출신 고혈압 환자라 머리가 터져 죽을 수도 있다. 너~무 잘 듣는 내 브레이크를 살살 밟으며, "젊어서 이랬으면  제20대 대통령 됐겠다" 하고 피식 웃는다.         


삶은 브레이크를 장착하고 열정이 넘칠 때,


그때가 가장 섹시한 것 같다.   



https://youtu.be/mrR6tqKVo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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