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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an 12. 2022

살면서 한 번쯤

그는 그렇게 내 삶의 나와바리에 갑자기 등장했다.

 

그는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대 출신이며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제법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었다. 그는 그동안 머리 조아리고 눈 깔고 겨우 참아가며  직장 생존에 성공해 자기가 했던 대로 아랫사람에게 대접받을 쉴만한 곳에 간신히 도달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돌연 미국으로 뒤늦게 몸을 던졌다. 그놈의 자녀교육 때문에. 아니 기러기 아빠 생활에 지친 것이 더 정확하다. 그의 아내는 아이들 조기유학 뒷바라지 때문에 그보다 먼저 미국에 들어와 다행히 한국의 자기 전공 살려 취직을 했다. 대부분 한인들은 미국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한인사회 비즈니스에 편입된다. 결국 이민 1세대가 깔아놓은 직업군에 녹아든다. 지금은 인도계가 점령한 "세탁소"가 그렇고 히스패닉이 경쟁자가 되어버린 "뷰티서플라이"가 그렇다. 노련한 정치가 박지원도 뷰티 서플라이에서 김대중을 먹여 살렸고, 자신이 살고 싶었던 인생, 아니 어쩌면 관운을 타고난 삶을 지금도 살아간다.


뒤늦게 미국에 뛰어든 그는 한인들이 즐겨 찾는 직업을 가지기 힘들었다. 그가 한국에서 누린 직업의 위상도 그렇거니와 하루 열 시간가량 매장에 매달려 있기도 힘든 모양이었다. 그는 카드회사 단말기 영업(한국의 POS 같은)을 시작했다. 그것도 주로 한인들 비즈니스를 상대하며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  


 그날은 처제가 운영하는 뷰티서플라이에서 내가 쉬는날 잠깐 일을 봐줄 테니 일 보러 다녀오라고 다정한 형부 노릇을 하던 날이었다. 그는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수척한 모습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얼굴은 한국의 탤런트 누구 닮았더라?처럼 생겼고 키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가 드러나게 웃는 모습이 귀여웠고 건장한 사내라기보다 조금은 여성스러운 모습이었다. 참 이상하지만, 나는 사람을 대할 때 직업이나 과거 경력, 재산정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누구나 똑같이 상대했다. 오죽하면 중고등학교 후배를 우연히 만났는데도 그에게 말을 놓지 못했다. 어려서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닌데 같이 늙어가며 굳이 선배 노릇하는 것이 어색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고백하길 처음 봤을 때 자기를 인간 대접해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고 내게 말했다. 아마 영업하면서 홀대를 많이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영업용 카드단말기를 자기 회사로 바꾸면 수수료를 대폭 낮춰 준다고 제안했다. 솔직히 그대로 살아도 되는데 나는 초보 이민자가 사느라 애쓰는 것이 안돼 보이고, 도움을 주고 싶어 처제에게 전화 걸어 설득하고 그의 요청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나보다 네 살이나 어렸다. 나와 가장 가까운 선배에게 그를 소개해 주었다. 선배 병원도 카드 기계를 바꿔 주었다. 선배도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범생이에 대기업 출신이라 좋은 대학 나온 대기업 출신 이민자에겐 후하게 점수를 주는 편이었다. 나는 술을 안 하지만 둘은 한국 대기업 직장생활의 절반은 술이었다며 꿍짝이 맞아 과거를 안주삼아 식사부터 시작해 노래방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노래방에는 <데낄라>가 등장했다. 선인장 술이라는 멕시코 태생 <데낄라>, 선배와 그는 한국 대기업 술자리를 영화 세트처럼 미국에 옮겨 한인 노래방에서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워낙 노래를 좋아해 술 취하지 않고도 어울려 놀았고 대리운전도 해 주어야 했다. 그는 만취해서 인사불성이었고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머리에 넥타이를 매고 자기가 놀던 분위기를 보여준다며 재롱을 떨었다. 그의 몸은 미국에서 술 마시고 마음은 한국에서 술 마시고 있었다.


 술 취한 애들하고 노는 일은 금해야 하는데 그날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나는 노래를 아끼고 사랑해서 내가 노래 부를 때 두 명 정도 청중에게 찬사 듣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내 십팔번 임재범의 <비상>을 열창하는데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나 내 마이크를 뺐었다. "아이고 형님, 제가 진짜 노래를 어떻게 하는지 보여 드리죠" 그는 갑자기 뽕짝으로 음악을 바꿨다. 그리곤 코믹하게 개사해 미친 듯이 웃기는 막춤을 추며 노래했다.


 선배는 내 표정에 갓 새겨진 분노의 주름을 은밀히 알아차렸다. 선배는 <불광동 휘발유>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미쳐 노래 부르고 선배와 나는 싸~ 해졌다. 잠시 멍하고 있던  내 주유소는 곧 폭발했다. 노래방 탁자 위로 휘발유가 흘러들었다.


"야, 이 자식아! 너 미쳤어? 어디서 감히!"


"펑!!!!!!"


 나는 사귄 지 얼마 안 되는 동생뻘 앞에서, 분노조절 장애 폭탄을 거하게 터트려버렸다.

 

 그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그리곤 그걸 냅다 벽에다 던져버렸다.


 마이크는 에코와 함께


"콰왕~와~와와~왕"


선배는 아무리 술을 먹어도 점잖고 자기 조절이 되는 사람이라 이 상황을 무척 난감해했다.


 "선배 미안해, 내가 계산하고 먼저 갈게, 알아서 대리 불러 "  


나는 아마 내가 계산하고 나가면 내 분노 값을 지불해서 깽판 죄가 사해질 줄 알았나 보다.






"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되냐?"

 

  선배는 점심 먹으며 어제 행동에 대한 내 사과를 그렇게 받아주었다.


" 넌 성질 좀 죽이고 살아, 정말 아홉 가지 장점에 그 한 가지 욱하는 성질..."

(선배는 항상 그 말 할 때 내 눈치를 본다. 또 불광동 주유소 폭발할까 봐. 지금은 주유소 문 닫았다)


마이크 뺏은 그는 이른 새벽, 잠 한숨 못 잤다며 나에게 전화를 했다. 죽을죄를 졌다고 사죄했다. 그는 통화중에 울었다. 술에 취해 그런 걸 어쩌냐고 들어주고 달래주었다. 나도 내 행동을 사과하고 앞으론 새벽에 전화하지 말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뭘 해도 용서받을만한 착한 남자였다.


 그날 이후 그는 내 앞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고, 나는 그와 노래방에 가지 않았다. 결국 식사를 마치면 평소처럼 선배와 나는 단둘이 어깨를 끼고 고국을 그리워하며 김광석을 노래했다.


 그때가 이맘때라 가끔 그가 생각난다.  자기수준에 비해 그렇게 사는 모습의 그가 아까웠다. 아이들은 잘 컸겠지?


 착하고 성실하고 순진한 그가 한국 대기업에서 힘든 술자리 참고 버틴 돈으로 아이들 키우다 미국 나와 고생하고, 또 선진국 만드느라 중간에 끼어 죽을 고생하고 사신 그 세대 베이비 부머들도 생각한다.


 모두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으면 참 행복했을 텐데...


                   






영화 때문에, 순전히 영화에 집중하다 그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My Salinger year>, 여 주인공 마거릿 퀄리의 연기에 감탄하며 그녀를 발견한 것도 행운이지만, 나는 극 중에 작가 JD샐린저,그가 더 흥미로왔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너무 오래전 읽어서 <데미안>만큼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주문했다. 고전은 그래서 고전인가 보다. 초등학교 운동장이 그렇게 컸는데  또 그렇게 작아지는 것도 내가 커져서 그런 것을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느꼈다. 내가 영화에서 출발해 샐린져의 삶의 종점까지 당도한 것은 내가 고민하던 지점을 그가 가지고 있어서였다.


 사실 나는 그것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살면서 한 번쯤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기 재능에 딱 맞는 일, 자기가 폭발하는 일 (화내는 것 말고)을 해보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 말이다. (아까처럼 아이 때문에 자기가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미하는 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만날 수 없다.)


나를 좋아하고 아끼는 지인은 내가 가졌던 직업에 대해 적성에 맞지 않아 보인다고 안타까워할 때가 있다. 좋게 말해 나를 좀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해준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나도 참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난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때 우주, 천문학, 기상학, 철학, 문학 이런 것은 딱 밥 굶기 좋은 학과였다. 기계공학, 전자공학, 컴퓨터 등 돈 되는 학과가 유망한 곳이었다.


샐린저는 대작이라 할만한 <호밀밭의 파수꾼> 하나와 그럭저럭 단편 몇 개 내놓고 죽을 때까지 은둔했다. 요즘 작가세계에서 말하는 신춘문예 당선되고 사라지는 그런 류의 작가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 한 개는 시대를 초월하고 세대를 아울렀다. 시대를 꾸짖고 세대의 잠자던 의식을 일으켜 세웠다. 뭐, 베스트셀러 작가 되었으니 돈 벌었겠다 생각하면 속물이고, 그는 살면서 한 번쯤 찾아온 기회를 멋지게 사용한 것 같다.


나는 그를 탐구하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래 한 번쯤 내 안에 나다운 것, 내가 남들과 다른 가장 특별한 그것을 끄집어내어 터트리고 가야지...




    공군은 11일 오후 1시 44분쯤 화성시 정남면 관항리의 한 야산에 공군 10 전투비행단 소속 F-5E 이륙해 상승 중 항공기 좌우 엔진 화재 경고등이 켜지고 항공기의 기수가 급강하하면서 추락했다고 밝혔다. 추락한 전투기에는 조종사인 심모 대위가 탑승 중이었다. 심 대위는 추락 당시 비상탈출을 시도했지만 탈출하지 못했고 순직했다 (김태희 기자, 추락 F5E조종사 순직, 경향신문,  2022. 01.11)


회삿돈 2215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오스템 임플란트 직원 이모(45)씨의 아버지(70)가 11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씨 아버지는 전날 피의자로 입건됐고, 이날 11시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석경민 기자, 횡령 혐의 오스템 임플란트 직원 부친 숨진 채 발견, 중앙일보, 2022.01.12)

https://youtu.be/y3afwjfIo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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