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노아 Jan 14. 2022

스토커

 시골집에 머물면 일도 능률적이고 글도 잘 써져 점점 자주 오래 머물게 된다.


그런데 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 언제부턴가 느낌이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성 스토커가 내 주변을 배회하는 것 같았다. 착각이려니 생각했지만, 이 촌구석에서 누가 나를 지켜보고 따라다니는 것에 납득이 가질 않았다.

 

 처음 그녀를 본 것은 산책길에서였다. 나는 거의 매일 집에서 논둑길을 따라 걷는다. 걷는 이유야 건강이 첫 번째 지만 언제부턴가 걷는 기쁨을 배워서 걸을 때 행복을 느낀다. 도시에서 들어온 내가 걷기 시작하자 그동안 논둑길에서 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 걷기 시작했다. 나는 마을에 좋은 영향을 주는 셈이다. 자전거를 탈 때도 내가 멋진 복장을 갖추고 타니 옆집 할아버지조차 시골 오토바이에 헬멧과 선글라스를 끼고 타기 시작했다. 모습이 하도 어색해 속으로 "잘하고 있군"하면서도 생각날 때마다 곱씹어가며 킬킬 거리 웃곤 했다.  


  산책길에 그녀는 나와 거리를 한참 두고 멀리서 따라오듯 늘 같은 길을 걸었다. 멀리서 나마 그녀는 키가 조그 많고 아담한 체구에 나이는 그렇게 어려 보이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예쁘게 생긴 그녀는 우연을 가장해 늘 멀리서 나를 따라왔다. 이유야 잘 모르지만 스토킹 당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산책 말고도 우리 집 근처를 배회한다는 점이었다.


 우리 집 골목엔 네 집만 산다. 게다가 가로등 한 개가 도로 초입만 비춰서 집 주변은 밤이 무섭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그야말로 우주가 된다. 물론 정기적으로 우리 집을 순찰하는 냥이 호박이가 있지만 요즘 추워서 모습을 통 보지 못했다. 얼마 전엔 어스름한 시에 괴생명체가 대문 앞에 있었다. 나는 외계인인 줄 알았다. 몸은 고양이만 했고 회색털에 눈이 무지하게 컸다. 토끼였다. 모습을 보아하니 집에서 키우는 녀석이 탈출해서 길 토끼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도 시카고로 이주하기 전 살던 동네에서 밤에 자다 이상한 소리에 놀라 잠을 깬 적이 있었다. 휴대폰으로 창문을 비추자 눈이 정면으로 마주친 것은 다름 아닌 여우였다. 꼬리가 길고 얼굴이 뾰족한 여우 말이다. 그 동네는 숲 하나 끼고 있는 도시근교 평범한 마을이었는데 여우가 살았다. 나야 전설의 고향에서 남자 홀리는 여우만 알지 실물을 눈앞에서 본 적이 없었다. 야생 여우는 그때 처음 본 셈이다.


 시골집 대문 앞에 토끼도 처음엔 사실 좀 놀랬다. 녀석은 내가 가까이 가도 꼼짝 안 코 대문 옆에 앉아 있었다. " 네 집으로 가 이 녀석아" 동물들은 자기를 해치지 않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구분하는 것 같다.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면 놀라서 얼음이 된 건지. 암튼 그렇게 어두운 우리 집 골목에 그녀가 한 번씩 등장했다. 한 번은 해 질 무렵  내가 대문을 잠근 뒤 대문 앞 외등을 켜고 집을 야간모드로 바꿀 무렵, 대문 틈에서 우리 집을 바라보던 그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화들짝 놀라 황급히 뛰 나갔다.


분명히 스토킹 당하고 있었다.  


요즘은 하도 세상이 무서워 남자가 여자 따라다니는 것이 범죄로 취급되지만 옛날에는 연애의 기초가 미행이었다. 내 첫사랑 미영이도 비가 척척히 내리던 날 노란 우비 입고 내 앞에 우연히 나타났다. 슬쩍 길에서 스친 그녀에게 나는 첫눈에 반했고, 아닌 척하며 따라갔었다.  참 신기하게 그녀는 내가 다니는 교회로 들어갔다. 나도 그곳에 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새로 전입해 온 대학생이었고 모 여대 신입생인 것도 그때 알다.


 나는 그날 노란색 우비 입은 그녀에게 우산을 받치고 비를 쫄딱 맞으며 그녀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가벼운 스토킹 덕분에 나는 그녀와 일 년을 만났다. 하지만 얼마 못가 그녀를 따라온 다른 선배에게 그녀는 마음 뺏겼다. 그녀는 자기를 따라온 그를 따라 나를 버리고 떠났다. 나는 그 후로 맘드는 여자를 만나도 따라가지 않았다. 물론 전번을 따거나 쪽지를 전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직구를 날렸다. "저랑 사귀실래요?"






 한 달 넘게 나를 따라 같은 시간을 산책하던 그녀가 드디어 내게 다가왔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초면인데 스킨십을 했다. 내게 자기 몸을 비볐다. 그녀 이름은 촐랑이 었다. 아래 사진처럼 생겼다. 그녀 이름과 나이를 알게 된 것도 우연히 해가 좋은 날 마당에서 한가히 밭을 돌보던 촐랑이 어머니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재는 아무나 좋아해"


촐랑이는 그날부터 나와 "1일 차"가 되었다. 이젠 대놓고 가까이 나를 따라다닌다. 자전거를 타고 나서면 죽자 하고 달려 따라온다. 내가 자전거 전용도로 타고 읍내라도 갈라치면 촐랑이와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도로에 차가 위험해서 따라오면 안 된다.  촐랑이는 스토커 전문이다. 내가 문밖에 나서면 짱가처럼 달린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짜짱가 엄청난~ 기운이 (야!)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난다.

......

~ 짱가 짱가 우리들의 짱가~   


촐랑이 별명을 짱가로 지어 주었다.  앞으로 읍내로 가거나 서울로 갈 때는 짱가 눈과 코를 피해 골목을 돌아 나서야 한다. 짱가는 내 향수 냄새도 알고 내 목소리도 안다.


남의 집 아이지만 나를 스토킹 하는 짱가가 싫지 않다.

우리 집엔 길 냥이가 매일 교대로 방문하고

가출한 토끼가 가끔 오시고

짱가가 내 집 주변을 감시한다.

나는 녀석들을 위해 한 번씩 먹을 것을 준비한다.  


    https://youtu.be/OOxJ5_9zrgc

작가의 이전글 살면서 한 번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