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노아 Jan 18. 2022

겨울 햇살을 먹다

 올해 겨울은 우량아 같다.


토실토실한 눈송이며 늘씬한 서고동저의 기압배치, 장군의 위용 품은 세찬 바람과 차가운 대기도 기세 등등하던 옛날 겨울 같아 보기가 좋다. 그래서 우리 옛것을 자주 찾나보다.  

 토마토도 계란도 옛날 맛은 사라졌다. 토마토는 밍밍하고 계란은 싱겁다. 우리 밥상이 눈부시게 좋아져도 가난한 나라일 때 엄마가 해주시던 가난한 밥상 맛은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표현할 때 옛날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이라고 말한다.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자기는 요리를 못한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을 따라 요리를 하다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어머니가 그리워서.

 

그래도 올해는 겨울이 잘 자라 햇살이 더 따뜻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도시 사는 사람과 군인들은 싫어하겠지만 눈만 조금 더 와주면 나처럼 시골 머무는 과객에겐 행운의 인생 경험 샷을 추억으로 남길지도 모른다.


작년 말에 우리 집에 한그루밖에 남지 않은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 먹고 씨를 품어보았다. 비닐 주머니에 수분 머금은 키친타월로 곱게 싸 몇 주간 서랍 암실에 품었다. 녀석들은 몇 주 만에 깨어났고 반가움에 놀라며 화분에 옮겨 심었다. 무려 열두 개나 어두운 우주에서 생명으로 깨어났다.


매일 아침이면 튼튼한 겨울이 깔아놓은 차가운 대지 양탄자에  "엄마손은 약손" 하며 아픈 배에 얹혀주던 따뜻한 엄마손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우리 집 햇살은 동이 트면 마을 뒤쪽 작은 나무숲에 떠올라 마당을 비추다 마루에 넘실대고 거실로 치밀하게 쳐 들어온다. 조금 후엔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고 실내온도는 1도나 올라간다. 이때다 싶으면 주방에서 잠자는 감나무 아가들을 억지로 깨워  "엄마 앞에서 짝짜꿍" 하나씩 햇살 앞에 내어 놓는다.


 겨울 햇살은 감나무 씨앗 보모처럼 자기 가슴을 풀어헤쳐 생명의 온기로 젖을 먹인다. 빠른 녀석은 벌써 씨앗을 모자처럼 쓰고 첫 이파리를 거의 다 내어 놓았다. 햇살 먹은 씨앗들은 하루하루 다르게 무럭무럭 자란다.


 씨앗 키우다 나도 동냥젖을 빨아먹었다. 햇살을 먹기 시작했다.


작년 이맘때 내가 살던 시카고 스트리터 빌 고층 아파트에는 겨울 햇살이 전혀 들지 않았다. 빌딩 숲에 묻혀 햇살은 가려지고 앞 건물 유리를 반사해야 잠시 동안 겨우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키우던 두 개의 화분은 이웃 빌딩에 비친 빛을 먹고 어렵게 자랐다. 그래서 나도 그땐 집에선 햇살을 먹어보지 못했다. 햇살이 고프면 집 앞 미시간 호를 찾았다.  미시간호는 겨울 햇살과 함께 바다의 풍광을 선물 주었다. 미국인들 피부는 우리와 달라 광합성이 필요하고 그들은 틈만 나면 멈춰 서서 햇살을 먹는다. 겨울에도 거의 벗고 호숫가를 달리는 미녀 대부분은 살이 구릿빛이고 그들을 훔쳐보다 살짝 걷어본 내 다리살은 하얀색이었다.



 지금 내가 사는 시골집은 남동향이라 <KBS 김미숙의 가정음악>이 끝나는 아침 11시까지 햇살은 감나무에 젖을 물리고 나에게도 조금 남은 젖을 물려준다.


나는 새벽에 일을 하고 글도 쓰고 아침엔 젖꼭지 문채 음악을 듣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닳고 닳도록 읽고 또 읽는다. 처음엔 이야기를 읽고 두 번째는 작가의 글솜씨를 보고 세 번째는 작가의 서재에 함께 앉아 어깨동무하고  듣는다. 영화는 두 번 돌려보기 힘든데 책은 보고 또 봐도 사랑하는 그녀의 얼굴 보듯 질리지 않는다.        


 여기 와서 해를 먹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햇살 없는 날, 먹구름이 잔뜩 낀 아침이면 나는 덩달아 우울해진다. 커튼을 열다 말고 다시 닫는다. 겨울 햇살 없는 아침은 꼴도 보기 싫어 집안 어디 하나 커튼도 열어놓지 않는다. 그런 날은 찡끄린 하늘에서 미세먼지마저 펄펄 내린다. 커튼을 닫고 어둡게 꾸민 거실엔 햇살 대신 빨간 등을 켜 놓는다. 미국은 빨간등이 많고 한국은 하얀 등이 많다. 나는 하얀 등보다 햇살 닮은 빨간등이 더 좋다.


햇살을 먹고살다 이전에 몰랐던 것을 하나 발견했다. "도시는 카드로 사는 것 같고 시골은 현금으로 사는 기분". 도시는 자연과 교감하거나 생명과 공감하는 순간이 적고 밤마다 돈과 사랑을 나눈다.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돈을 찾고 돈에 운다. 시골은 벌거벗은 나와 자연이 만나 항상 사랑하고 비로소  자기 삶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흙으로 가기 전 흙과 함께 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진지하게 깨달았다.


굿모닝 튜스데이, 


https://youtu.be/jd_jrob9xrg



      

작가의 이전글 스토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