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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un 28. 2022

회색- 좋아한다, 싫어한다

 나는 회색 하늘을 싫어한다.


 특히 한국의 장마시즌 북태평양 고기압과 북쪽의 저기압이 만나 엉거주춤하고 있을 때를 매우 싫어한다.

한국 기상청은 언제나 잘 모르니까 강수 가능성은 30%로 예보를 맞추어놓고 실시간으로 예보를 고친다. 한국 예보는 유럽 모델이나 미국 모델보다 구독 참 싫어하는 내가 구독하는 유튜버 소박사라는 양반이 제일 잘 맞춘다. 암튼 어정쩡한 회색 날씨, 비가 올 것 같은데 잔뜩 찌푸리고, 습도는 높고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하루를 보내는 날은 밤이 되면 진이 빠진다.

 여기 시카고는 한국 같은 장마가 없어서 여름이 좀 화끈하다.  완전 덥든지, 한바탕 난리를 치던지, 겨울에도 강풍과 윈터스톰이 잘 지나가며 눈은 하늘에서 퍼 내리고 여름에는 화끈하게 소리 질러 장대비를 쏟고 휙 지나간다. 그래서 골프장에서도 스톰 워닝 경고 사이렌 뜨면 그린 위에 공 올려놓고 그대로 대피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 뒤면 숨어있던 골퍼들이  아무 일 없는 듯 젖은 그린 위에서 자기 공을 퍼팅한다.


회색 하늘은 싫지만 나는 요즘 회색 옷을 억수로 좋아한다.


회색 계열, 심지어 내가 싫어했던 쥐색도 소화한다. 원래 내 정체가 한국 미국을 오가는 회색분자라 그런지 몰라도 요즘 내 옷은 회색 계열로 바뀌고 있다. 야구모자도 회색이고 운동화도 회색이 몇 개 있다. 며칠 전 옷장 정리하다 보니 요즘 내 몸에 맞는 사이즈 바지는 죄다 회색이다. 최근 구입한 옷이 대충 회색이라는 증거다.


주거는 도시의 회색보다 시골의 초록을 좋아한다.  


 여기서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회색 야구모자에 회색 바지, 회색 운동화를 신고 도심에 나갔다. 오랜만에 스트리터 빌 거리를 쏘 다니며 관광객들과 섞이자 내가 잠시 현지인인 것을 잊었다. 한참 걷다 내 복장이 이 도시의 회색과 동명이인인 것을 느꼈다. 내가 아는 미국에  흑인은 흰색을 좋아하고 한국인이 사랑하는 검은색은 식당 종업원 유니폼이거나 경찰들이 많이 입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여기 상당수 중년들 나처럼 회색을 입었다.


어릴 때 나는 부끄러워서 밝은 색 옷을 입지 못했다. 어머니가 파란색 양말 한번 신기려면 한참의 전쟁을 치러야 했는데 그렇게 눈에 띄는 색이 싫었다. 그런데 청년시절엔 웬걸 빨간색을 무지 좋아하더니 한때는 흰색, 그리고 최근 한국에 있을 때 검정을 배웠고  따라하다 지금은 회색이 좋다.        


한 번은 한국에서 그랬다.


 시골에서 정신없이 기차를 이용해 서울로 간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뇌동맥에 통증을 느껴서였다. 서울에 사는 내 시골집 주인장 여동생은 심히 걱정이 되어 기차를 타고 올라오면 바로 조금 큰 내과로 가서 진단을 받자고 했다. 나는 뒷목 통증이 심해 최소한 경동맥 초음파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부랴부랴, 그때 코로나 시대의 특권, 세수 안 하고 야구 모자 쓰고 마스크 쓰고 서울로 향했다. 올라가는 기차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데 몰골이 꼭 노숙인 같더라.  (난 몸이 지성이라 하루에 두 번 샤워하지 않으면 바로 노숙인 몰골이 된다.)  


 가는 길에 장비가 많은 병원을 검색하고 동생과 만나자마자 차로 급히 이동했다. 내과의원인데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종합 건강검진센터도 있고 환자도 많았다. 대기실에는 젊은 병원장의 TV 출연 장면이 반복해서 계속 흘러나오고, 드디어 내 영어 이름이 호명되었다. " 같이 들어가 줄까?" 동생이 말했지만 난 정색을 하고 " 아니, 내가 무슨 애니? 혼자 할 수 있어"


 의사는 피곤한 얼굴로 나를 눈으로 쳐다보지 않고 입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환자 얼굴은 보지 않고 모니터만 계속 보며 이야기했다. " 보시는 대로, 경동맥 안에 떡이 보이죠? 이런 것들이 위험한 겁니다. 혈압약 드시죠?" "네, 네" 그는 내가 어디가 문제 있어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초음파 결과에 대해서만 말했다.


"저기, 저 사실은 여기 뒷목이 며칠간 심하게 아파서 검사를 먼저 한 건데 혹시 몰라서 와파린(피를 묽게 하는 약)을 한 알 먹고 왔습니다."


 나는 뇌경색 유경험자라 그때 내과의사였던 형, 요즘 잘 만나지 않는, 이 처방한 비상약을 한 알 먹었다고 했다. 의사는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런 걸 왜 의사 처방 없이 함부로 드세요?" 나는 속으로 말했다. " 병신아, 약을 의사 처방으로 사지 내가 어떻게 구하니? (형은 그때 말했었다.  혹시 이번처럼 응급상황이 오면 골든타임이 중요하니까 와파린 한 알 먹고 빨리 응급실로 가야 한다) "


 의사는 그때서야 일어나 내 목을 만졌다. "목에 근육이 뭉친 것 같네요" 나는 속으로 또 말했다. " 이 사람 돌팔이 구만" 나는 여기를 떠나고 싶었다. "네, 네. 잘 알겠습니다. 어쨌든 경동맥이 응급상황으론 안 보신다는 거네요, 감사합니다." 자릴 박차고 나왔다.



근심 어린 동생이 말했다.


"뭐래?"


"목 근육이 뭉쳤데"


"호호, 거봐 아무 일도 없을 거랬지?"


나는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의사 되게 재수 없어, 진료도 대충하고 불친절해, 목 한번 만져보고 근육이 뭉쳤다?" 동생은 웃다가 정색을 했다. " 그건 말이야, 오빠. 세수도 안 하고 옷도 촌스럽게 입고(검정모자,검정바람막이,검정바지,검정운동화) 몸에 살짝 땀 냄새도 나고 해서 그래. 그러니까 나 데리고 들어가랬잖아?" (동생은 미모가 출중하고 향수 냄새가 나서 어디서나 여왕대접을 받는다)


난 그날 이후 한국에서 공적 업무를 보러 나갈 때, 아니 물건을 사러 나갈 때도 옷을 챙겨 입었다. 지인한분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충고했다. " 그러니까, 특히 병원 갈 때 옷 잘 입고 가셔야 해요"


 내가 살던 중소도시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 백인만 사는 시카고 중심에서는 옷을 잘 입어야 한다. 미국인은 잘 입고 깨끗하면 일본인이냐 묻고 좀 아닌가 싶으면 중국인이냐 묻는다. 코리아는 맨 나중에, " 아~" 그런다.(애네들은 바보라서 노스 코리아와 사우스 코리아를 정확이 이해하지 못한다. 중소도시에 가면 코리아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내가 코스타리카를 잘 모르는 것처럼... 한국에서는 우리가 세계 일류 국가라는 착각이 들었다  )    

    

암튼 나는 여기 시카고에서 옷 잘 입고 다닌다. 회색으로 깔맞춤 해서...


밤이 깊었다.

다음에는 "사랑이 힘"에 대해 쓰고 싶은데 영감이 오락가락한다.


한국에 장마피해 없기를 기도하고 자야지.


   https://youtu.be/DO845EqU3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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