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좋은 직업보다 좋은

by 강노아

정쟁에 집안이 둘로 쪼개졌다.


이모 부부는 좌측성향이 강하고 자녀들은 우측성향이 강하다. 나는 중도라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지만 한국에 투표권이 없어 깍두기 취급을 당한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가들은 직업윤리를 저버리고 시민을 전쟁터에 내몰기도 하며 가난에 처박아버리기도 한다.

오늘은 정치인처럼 추위와 온기가 좌우로 갈라져 샅바싸움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에는 겨울 같고 낮에는 봄 같을 것이다. 휴대폰에 날씨와 기사를 들여다본다. 성공한 사람들의 실패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휴대폰을 닫으며 "인생은 좋은 직업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우문이 머리를 스쳐간다.



어려서부터 만화와 책, 여자를 좋아했던 나는 만화와 책 그리고 엄마가 제일 좋았다. 의상실을 운영하던 엄마는 종일 일만 했고, 어느 날부터 시골에서 상경한 나어린 누나가 살림을 맡아주었다. 지금생각하니 누나는 고등학교를 갓졸업하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상경한 지인의 딸이었고 외동인 그녀는 우리 형제를 무척 아껴주었다.


누나는 그때부터 나의 이상형 여자가 되었다.


그 소년은 만화를 적당히 정복하자 위인전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고등학생 무렵 내독서는 헤르만 헤세에서 정점을 찍었다. "유리알 유희"는 어려워 포기했지만 "지와 사랑" "싯달타"는 내 지적정서의 보물이 되었다. 나는 헤르만 헤세가 되고 싶었다.


어릴 때는 지구 중심에 땅속인간이 살고 예수는 외계인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머릿속에 기어 들어왔다. 인간의 뇌와 우주가 닮았다는 상상을 해서 우리 인생은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죽고 나면 잠에서 깨어나는 그런...




사십오 세, 인생의 내리막길을 내려오기 시작할 무렵 신, 우주, 지구, 인류, 역사, 과학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가 되었지만 철들기 시작한 것은 더 한참뒤였다. 이 모든 더딤은 직업 때문이었다. 바빠서.


스스로 철들고 스스로 깨닫기 시작하니 학교 다닐 때 영어 하나만 잘할걸 후회하듯 인생의 지나간 시간이 아깝기만 했다. 그래도 가장 늦은 것이 제일 빠르다고 생각해 남은 삶의 시간을 고민한 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엊그제 생애처음 출생기념 80km Biking에 성공했다. 구간을 넷으로 나눠 한 번씩 쉬면서 주파했다. 쉴 때마다 생각쥐가 나타났다.


" 그만하고 가지?"

" 무리하는 거 아냐?"

" 다음 정차역에서 밥이나 먹고 돌아가지?"

그때 머릿속 나르치스가 등장했다.


"무슨 소리야, 끝까지 해야지"

"말보다 실천을 해야 한다고 자기가 말하지 않았어?"


포기라는 고비가 중도에 세 번이나 찾아왔다. 40KM 반환점은 백제보였다. 부여 쪽에서 가느라 마지막이 오르막인 그 길은 진급하려 애쓰던 그 길을 닮았다. 고대하던 반환점 백제보 입구에서는 관리자가 쌓아놓은 눈 덕분에 미끄러지며 엎어지고 말았다. 넘어질 땐 늘 창피하지만 주위를 살피고 주섬주섬 일어나 자린이가 좋아하는 국토종주 자전거 수첩을 구입했다. 나머지 40KM는 돌아가야 하니 갈 수밖에...


내가 머무는 숙소, 시골집에 도착할 땐 하늘에서 펄펄 상이 내려왔다. 한 하늘에 펼쳐진,


낙조(태양), 보름달(달), 철새(생명)이소 비행


경이로웠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영장류도 자랑스러웠다.


곧이어 이런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는 것은 축복이고,

죽는 것은 영광이며,

결국,

산다는 것은,


우주에서 원소로 있다가 형체를 갖추고, 우주가 만든 그 눈으로 우주 자신을 바라보는 기적이라고.


그래서 나는

하루하루가 아깝다.


좋은 직업보다 좋은 인생을 사는것, 그것이 지성인의 아닐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생이라는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