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기대어

by 강노아

" 잡았다 요놈"

섬세하고 작게 우는 알람을 잡았다. 녀석은 한국 다이소에서 산 두 개 탁상시계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녀석은 다리가 부러지고 배터리 창이 깨져도 테이프로 칭칭 감아 쓰는 버리지 못하는 요물이다. 물건은 오랜 시간 지나면 정이 들어 어느 순간 삶의 동반자가 된다. 이 녀석이 그랬다. 크기도 작고 필요한 정보가 다 들어 있으며 (습도를 포함한 날짜. 시간, 온도) 연륜까지 묻어있어 스타워즈 R2로봇처럼 늘 나를 따라다닌다.


신형 탁상시계를 구입하면서 녀석은 조금 구석진 곳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선출된? 물건은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보장해주어야 한다. 녀석의 소리는 자기 존재를 알리는 최소한의 반항 같았다. 이유 없는 알람은 자정 무렵, 모기소리 같지만 깊은 수면에 취한 순간을 요격해 잠에 취약한 불면의 순간을 더 괴롭힌다. 알람시간을 바꾸고 요란한 빛도 조정해 놓았다. 오늘 밤은 잘 잘 수 있을까?




나이 들수록 시차의 변화에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 젊어서 며칠이면 그 나라 시간에 완전히 적응했지만 요즘은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두리뭉실 시간에 기대어 산다. 내 몸은 미국을 기준으로 세팅되어 있는데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러 그런지 여기서는 몸이 손님 같다.

나는 날짜와 요일도 잘 모른다. 아침마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그날은 모르는 날이다. 날이 나에게 초면일 땐 하루가 낯설고 친밀감도 다르다. 월요일은 짜증 나게 생겼고 금요일은 친근하게 생겼다. 평생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 나는 금요일이 제일 좋다. 그날은 날을 내려놓고 무거운 책의 중력에서 자유로운 무중력이 되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사람들이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 보통은 한 곳에 정착하며 아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야만 안정감이 생긴다고 믿지만.... 중략... 누군가가 히말라야 팔천미터 고봉에 올라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안전하게 귀환하는 것을 반복하듯이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지 않고 안전함을 느끼는 순간을 그리워하는데 그 경험은 호텔이라는 장소로 표상되어 있다"

나 역시 하루라는 날에 대해 친밀과 안전함을 다르게 인식하기도 하지만 싫어하는 날도 있다. 화요일이 그렇다. 허접농담으로 화가 나는 날이라 말하지만 남아있는 한 주가 길어 보여 그런지 모른다.

나는 시간도 새벽 4시를 좋아하고 4시 44분을 좋아한다. 한국인들이 "죽을 사"라 싫어하는 그 "사"가 우리 아버지 이름 중간에 있어 나에겐 낯익은 소리 숫자였다. 비밀번호를 대충 만들 때도 보통 1234라든가 0000으로 하면 난 4444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 하루라는 날의 숫자에서 안정감을 혹은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침대맡에 시계 두 개를 리셋하자 오늘 밤 소음 없는 침대가 그리워진다. 한국은 새벽에 열대야를 경험한다 하니 모두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을게다. 하지만 곧 계절의 시간은 흐르고 기습 한파를 맞아 한기에 깨어나겠지. 그러고 보면 참 삶이 덧없다.


우리는 시간에 기대어 날을 정하고 한해를 정의하고 나이를 만들어 우리를 구분한다. 생각해 보면 그날이 그날이고 노화 또한 자연에서 맞이하는 자연스러운 순간인데 우리는 그 시간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싶어 안달이다.


" 오빠. 요즘 엄마가 이상해. 치매가 오는가 봐"


집안의 어르신들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어떤 이는 팔십부터 어떤 이는 칠십부터 시간이 거꾸로 간다. 다섯 살이 되고 한 살이 되고 생명의 그라운드 제로에 도착해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면 의식 없이 머물다 미련 없는 삶의 여행을 마감한다. 우리의 남아있는 시간은 언제나 우리가 상상하는 시간보다 짧은 것 같다. 지구는 인류의 독특한 괴롭힘으로 몸살을 앓고 우리는 그 부메랑을 맞으며 앞으로도 이렇게 거친 시간을 살아야 하겠지. 사람도 자연도 점점 난폭해지고 순수의 시대는 저물어간다.


그러고 보면 참 옛날이 좋았다.


휴대폰 없는, 병물을 팔지 않던, 연애편지는 우체통에 넣고, 밤새 그녀를 기다리며 따라다녀도 스토커라 하지 않는, 지금보다 좀 더 키가 작고 못생기고 먹을게 부족해서 무엇이든 맛있던 , 그리고 유튜브 없던 그 시절이 AI의 지금 보다 훨씬 무게 있고 깊이 있다고 감히 나는 생각한다,


남아있는 삶의 순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오늘은 잠을 기다리며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2025. 11.10 낡은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들이 계셔서 글을 조금 손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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