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수면아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 두 사람은 헤어진다.
더 사랑한 사람은 배신을 당한다 느끼고 덜 사랑한 사람은 그저 담담하다. 자연이 주도하는 이별은 (사별 같은) 아파하고 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인위적 이별은 서로 멀리 있지 않으면서도 뭉근한 통증을 안고 (심지어 함께 살기도) 조용히 남남이 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길들여지다"는 것은 단순히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이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며, 그 관계 속에서 책임과 애착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래 만남은 서로에게 길들여 짐을 허용한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우주의 법칙이 그렇듯 누군가는 더 사랑하고 누구 가는 덜 사랑하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 헤어진다.
젊은 시절 내 절친은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들어온 청년이었다. 그는 키가 훤칠하고 구레나룻 수염자국이 선명해 하루라도 면도하지 않으면 잔디를 안 깎은 정원처럼 수북한 얼굴이었다. 한마디로 그의 첫인상은 건장한 네안텔타르인 이었다. 그는 여섯 살 때 가족이민으로 한국을 떠났고 혀에 버터가 발린채 구워져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일 때 학교에서 그네를 타다 남미 아이가 밀어서 다쳤는데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아이가 영어단어를 사용해 자신의 사고상황을 교사에게 설명했었다. 나는 그때 그저 신기하다 생각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영리하고 경이로워 아마 아프리카를 나올 때 적응이라는 usb를 훔쳐 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미국에서 내가 그랬듯 그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 강의를 들으며 몰몬교 선교사처럼 모르는 국어 단어를 손바닥에 적어 다녔다.
내가 그와 가까워진 것은 까치 담배 때문이었다. 기독교 사립대학에 대부분의 학생은 금연을 했고 우리 둘 다 전통적인 기독교집안에서 자라 술담배는 죄악으로 여기던 시대였다. 게다가 친구는 PK(Pastor's Kids)였다. 그는 자주 몰래 흡연자였고 나는 가끔 몰래 흡연자였다. 어린 시절 나의 흡연은 반항에서 시작되었고 질풍노도의 시기에 옳다고 믿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덤벼들던 때였다. 기독교인 이면서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고 -지금은 당연한 독서가 -그때는 몰래 금서를 읽는 좌익청년 같았다. 생각하면 우습다.
우리는 얼추 친해져 함께 자주 어울렸고, 어느 날 인가 시내를 걷다 가판대에서 파는 담배를 보자 그가 물었다.
" 저게 뭐야?"
" 까치담배"
그는 의아해했다. 왜 담배를 한 갑 안 사고 한 까치씩 파는지... 우리는 몰래 까치 담배를 샀다. 성년 대학생이 종교를 가진 이유 때문에 양지바른 골목에 숨어 담배를 폈다. 담배는 고등학교 때부터 숨어 피는 게 제일 맛있었다. 담배를 다 피우자 어디선가 날아온 까치 두 마리가 하늘을 스치며 날아갔다. "까악 까악."
" 거봐. 까치담배를 피우면 까치가 날아오지"
언어바보 문화바보는 무슨 말을 해도 믿었다. 나도 미국에서 언어바보로 살 때 그에게 한국에서 한만큼 부메랑을 맞았다.
우리는 학창 시절을 살갑게 보내며 서로에게 길들여진 친구가 되었다.
세월이 한참 더 흐르고 더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대학원 공부를 위해 미국에 들어갔다. 결국 그의 추천으로 알게 된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일본 분위기가 나며 혀가 꼬부라지고 귀여운 한인교포를 아내로 맞이했다. 놀라운 것은 그녀도 흡연자였다. 우리는 내가 아파트를 얻을 때까지 그들의 신혼집에서 마음껏 술과 담배를 즐겼다. "말보로 라이트"는 미국에서 내가 처음 만난 가장 좋아하던 양담배였고 그 발음을 원어민처럼 하면 친구는 언어바보였던 내게 " 넌 참, '말보로 라잇'하고 '오 리얼리' 발음이 정말 완벽해"하며 놀렸다. 사실 주유소 마트에서 말보로 라잇을 점원이 알아듣게 발음하는 데는 수없는 시간이 필요했다. 미국바보들은 언어바보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지금의 한국이라면 모를까 그때 한국사람은 후진국사람으로 취급받았다. 미국에서 친구는 갑이었고 나는 을이었다. 그 없이 아파트도 구할 수 없었고 차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아 여러 가지 행정업무도 하지 못했다.(그때 난 한국에서 알바로 통역도 했었다 ) 언제부턴가 그의 아내는 내 운전기사가 되었고 그녀는 원래 내 친구였던 것처럼 아기를 바구니에 들고 혼자 사는 내 아파트도 드나들었다.
어느 날 우리는 너무 친해서 대판 싸웠다. 그 이전에 가끔 사소한 다툼, 다름으로 인해 작은 금이 서로에게 있었지만 이번에는 쓰나미였다. 친구가 한국에서 온 언어바보에 대한 책임과 까치담배의 우정을 잊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의 아내까지 삼총사가 되어 새로운 우정을 만들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지만 다투면 이내 처음으로 돌아오곤 했었지만 그때는 달랐다. 대판 싸우고 오랫동안 헤어졌다. 나는 언어바보에서 언어장애인정도로 미국에 스며들었고 차도 생겼으며 "틀린 발음, 엘에이(LA)와 옳은 발음, 엘레이(LA)"를 구분할 줄 알았고 보다 자유롭게 미국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가 없이 살 수 있었고 그 역시 그런 나에게 책임감이 없어졌는지 모른다.
친구의 이혼소식을 그의 아내에게 들었다. 우리는 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배신을 때렸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가까운 사람, 가족을 포함해 아주 가까운 사람은 헤어지기 어렵지만 상대가 배신을 때리고 떠난다고 생각할 때 그 역시 나에게 같은 감정을 느낄지 모른다. 인간사이에는 항상 높낮이가 존재하고- 먼저 혹은 늦게 입사하고, 선배이거나 후배이고, 병장이거나 이병이고, 더사랑하거나 덜 사랑하고- 또 거리도 존재하는 것 같다. 너무 가까우면 뜨겁고 멀면 춥고.
이제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지금의 나는 친했던 사람이 배신 때릴 때 미움을 갖지 않고 조용히 그 관계를 내려놓는다. 미움도 원망도 애증도 없이 서로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서로에게 힘들 때 내려놓으면 된다. 내게 내려놓음이란 포기가 아니라 따뜻한 거리감이다.
이익이 끊어지면 떠나는 사람이 있고(가족 포함) 정신적으로 뇌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고 가정교육을 잘못받아 민낯이 더럽게 못난 사람도 있더라.
요즘 나는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내가 가진 장점들로 단점들을 가리며 힘을 숨기고 은둔하는 전직킬러처럼 가급적 유튜브를 멀리하고 책을 가까이하며 매일 나를 재정비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화가 날 땐 욕대신 "에잇. 나인. 텐"이라 중얼거린다.
내려놓기에 실패한 날엔, 나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배신 때린 놈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아직 수양이 덜되서...
다시 주문을 외운다.
에잇, 나인, 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