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피아노 앞에서 같은 음정을 찾아보지만 찾기 어렵다.
똑똑똑 틱톡 톡톡 틱틱
한파가 찾아오면 어머니는 늘 화장실의 수돗물을 틀어놓았다. 옛날집은 집가장자리에 아궁이 딸린 부엌이 있었고 부엌옆에 욕조가 있는 신식 화장실도 있었지만 그곳은 언제나 추웠다.
어린 나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소리가, 알 수 없는 연주소리가, 건반악기 같지만 타악기 같은 소리도 났다. 때론 느리게 가끔은 조금 빠르게, 느리게는 화장실 물을 내릴 때, 빠르게는 물을 쓰지 않을 때. 소리는 대야에 물이 차는 양에 따라 또 다른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연주소리 같았다.
내가 시골집을 고쳐 살아 보겠다는 욕심의 배경에는 문명을 거부하고 숲으로 들어간 니어링 부부의 영향이 컸지만 평생 도시에서 살아온 이방인에게 그 결심은 무척이나 벅찬 일이었다. 텃밭에서 채소를 자급하고 최소한의 소비로 살아가려는 결심은 조국의 훌륭한 택배 시스템 덕에 무너졌고, 관행농법으로 오염된 흙은 아무리 유기농법을 해보아도 열매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나마 작년에는 크기가 조막만 한 자연산 양파라도 건져내 비건이 많은 우리 가족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다.
이곳의 시골집 화장실은 나 어릴 적 집처럼 주방 옆에 덧붙여 지은 공간이다. 그곳은 난방이 없어 겨울이면 삭풍의 고함에 귀를 막고 틈새 찾아 슬그머니 들어온 차가운 손을 뿌리치며 겨우 겨우 온기를 지켜낸다. 결국은 고민 끝에 전기히터를 넣었지만 높은 용량 탓에 필요할 때만 잠깐 쓰는 애물단지가 되어 나는 밤마다 수도꼭지로 경비를 세운다.
똑똑 또도독 똑
옛날에도 아버지가 공들여 지은 새 집에 살기 전에는 더 낡은 집에 살았다. 그 집은 장마 때마다 항상 천장에서 물이 나와 빗방울은 안방에도 건넌방에도 물방울이 되어 버려 집안의 모든 양동이를 물받이로 빗물을 받아야했다.
톡톡 틱틱 탁탁 툭툭 똑똑
어질러진 걸레와 숱한 물동이로 가득 한 방은 금세 소리로 가득 찬 연주회장이 되었다. 잔잔히 내리던 비가 폭우로 변하면 쏴하는 지휘자 신호에 맞춰 악기들은 포르테로 태세를 전환해 빠르고 큰 소리를 냈다. 어린 남매는 까르르 웃어대고 어머니 한숨소리가 빗소리에 묻혀도 그 누구 하나 불행하다 원망하지 않았다.
똑 뚝뚝
우리가 미국행을 선택해 아이들은 한국말보다 미국말 잘하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큰아이가 성장해 시카고의 대학에 들어가고 난생처음 헤어지며 기숙사에 아이를 내려놓을 때 나는 뒤에서 서러움에 북받쳐 갑자기 울고 말았다. 자동차 핸들 위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 이별, 아쉬움, 보람, 노고, 자랑스러움이 한데 뒤섞여 장마 때 쏟아지던 빗방울 소리가 들렸다.
아들은 난생처음 혼자 세상을 헤쳐나갔다. 기숙사 홀에 마련된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외로움을 달랬고 지겨운 크리스피 치킨과 감자튀김 그리고 흔한 고기들을 억지로 먹으며 김치가 그리울 땐 교회를 찾았다.
한때는 겨울 방학에도 집에 오지 않는 아들이 걱정돼 기숙사를 찾았더니, 그는 학업의 어려움으로 우울증에 걸려 깜깜한 방에 자기를 가두어 놓았다. 커튼을 열어젖히고 가득 쌓인 설거지를 해주고 뜨거운 술 한잔을 건네자 아들은 눈물을 토하고 말았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때 내가 그를 떠나보내며 흘리던 그 물방울 소리가 났다.
똑똑똑
우체부가 문을 두드려 소포라고 소리 지른다. UPS에서 한국을 거쳐 배달된 동생의 소포다. 이국땅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유품을 부탁했다. 살아생전 오고 싶었던 고국땅에 내가 머물 동안 모시고 싶어서.
화장실 수도에서 물이 떨어지는 겨울밤엔 어머니가 흥얼거리며 즐겨 부르던 한상일 의 <애모의 노래>가 들려오고 내 아들의 서글픈 울음소리와 설움을 견뎌내던 내 눈물 소리도 같이 들린다.
이 추위에 죽어가는 생명이 없기를, 모든 이가 웅크리지만 살아서 이겨내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응원의 노크를 보낸다.
똑똑똑
*겨울에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