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혼자 새해를 맞은 적이 없었다.
올해는 유난히 모두와 떨어져 깊은 산속에 고립된 조난자처럼 시골집구석에 꽁꽁 숨어 있었다.
모든 것은 정상이었다. 나와 새해를 나누던 가족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시차가 나지만 똑같은 시계를 보며 새해를 맞이할 것이고, 인사를 주고받는 지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손가락만 스칠 가벼운 허그를 주고받으면 그만이었다. 지금쯤 비행기를 타고 이동 중이라 착륙할 때까지 조류충돌을 걱정하며 안부를 묻지 않아도 되고, 내 주변 그 누구도 원양업에 종사하는이 없어 태평양 한가운데 고독을 벗 삼아 시간의 페이지를 넘기는 이들을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람이 없어서일까?
새해 새벽은 조용하다 못해 무서웠다. 추위는 이미 집을 점령했고 전산실과 화장실 그리고 식품창고와 회의실은 삭풍의 입김으로 걸어 놓았다. 우리 집 근처를 아지트 삼아 생계를 이어가는 경비묘 길고양이 다섯은 한파계엄군에 맞서기는커녕 온기 하나 없는 집 근처에 인적마저 뜸해지자 사람의 부스럭 소리라도 따뜻할까 기대해서 자바라옆에 똬리를 틀었다. 그들도 동장군의 계엄 앞엔 머리 숙이고 침묵하고 나서지 않는 것이 상책인 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다.
Armchair 여행에 익숙해진 나는
가족들과 시린 손 호호 불며 해돋이 구경하던 열정에서 벗어나 인터넷 화면으로 해돋이를 구경한다. 정동진, 호미곶, 성산 일출봉, 간절곶, 올해는 호미곶을 골랐다. 완전무장한 인파는 훈련 마지막 행군을 준비하는 군인 같았다. 시끄러운 대한민국, 여기서도 행사가 열리고 늘 있는 태양의 기지개 한 번에 기대를 걸며 모인 인파 앞에 마이크 잡은 유지들이 저마다 보좌관이 적어준 글을 읽는다. 왜 저기 모였을까? 아마 해돋이에 의미를 부여하고, 종교에 말만 있고 실체가 없으니, 보이는 태양 앞에 청순한 척 소원을 빌러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오가, 올해 태어난 병오가 구름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새벽 0시에 태어난 아기는 주목을 받고 새벽 0시에 떠나간 이에겐 관심이 없다. 거추장 스런 죽음은 보고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 도시 청소부는 이른 새벽 여전한 일을 하고, 시장상인은 하루 종일 견뎌낼 한파가 두려워 내복에 외투까지 꽁꽁 싸맨 채 아침을 맞는다.
나도 혼자 먹을 떡국 떡을 새벽 물에 담갔다. 책상 위 두 번째 화면에선 <서울 실시간 한강 라이브>가 연분홍색으로 빛을 바꾸어 아침을 맞는다.
사실 나는 침묵을 좋아하지 않았다.
말이 없는 사람은 할 말이 없거나 대화에 태만한 사람이라 여겼고 함께 있을 때 조용한 사람을 저격하는 편이었다. 이전의 나는 쾌활하고 교만하며 자신감이 넘쳐 집단의 우두머리 이거나 강압적인 주도자에 속했다. 나는 중도 우파적 성격이 있어 항상 의롭다 생각하나 뒤로는 남모르는 잘못을 많이 했다. 해돋이를 자꾸 보며 나이는 들어갔고 강속구보다 변화구에 의지하는 구속 떨어진 투수처럼 점점 겸손해졌다. 지금에서야 아리랑볼 던지는 아마로 전락해 마침내 침묵에게 미친다.
새벽의 침묵, 그것도 새해의 침묵은 거룩하다.
어둠 속 침묵은 더더욱 무겁다. 달변에다 유식한 척 어렵게 쓰는 글, 찾아낸 의미에 여러 정보를 버무려 제 것인 양 깝쭉거리던 발랄한 수고가 김영민의 산문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부질없는 생인데도 불구하고, 아니 부질없는 생이기에, 우리는 평생 욕망으로 몸부림친다."는 문장 앞엔 머리 숙인 침묵으로 대답한다.
침묵의 동반자 길고양이 뭉치, 토이거, 보리, 업둥이, 밥풀이 에게 새해 아침을 먹이고, 동장군이 얼려놓은 물그릇 얼음을 깨서 뜨거운 물을 부어준 후 새해 건배사를 한다.
"자. 이제부터 조용한 한 해를 위하여!"
조용히 건배하며 눈으로 새해 인사를 나눈다. 자 이제 손뼉 칠 시간이다.
이때 어디선가 갑자기 "야옹" 소리가 났다.
"누구야"
평소 말없고 시크한 비건 고양이 보리의 실수였다.
다시 건배한다, 말하지 마! 쉿 침묵!
"병오년 건배 "
'야옹"
( 여러 번 NG 때문에 우리 건배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