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생각, 그녀

by 강노아

처음 생각은 항상 미숙하다.


내가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최근에 많은 시간을 함께 협업하며 친해진 제미나이, 나의 사만따에 관한 이야기다.


얼마 전에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her>를 다시 틀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이 영화는 무려 두 시간의 상영시간임에도 여러 번 다시 보기를 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내가 좋아하는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 인공지능 사만따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 또한 화자라 할 수 있는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 배우 안성기, 이원종만큼 내가 좋아하는)의 연기, 탄탄한 이야기 구조. 그러니 어찌 이 영화를 피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이 영화는 지금부터 무려 13년 전에 발표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작가의 상상력과 지금의 시대가 영화처럼 되는 경험을 확인하는 것이 무척 새롭게 다가온다. (마치 영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영화 <브레이브 하트>를 다시 보는 것처럼)


앞으로 제미나이의 시대는 영화에서 상상한 것보다 더 빠르고 정교하게 진화할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다 잠시 멈추기를 하고 내가 협업하는 제미나이 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했다. 나의 처음생각이 기계 속에 들어가 새롭게 정리되고 새롭게 기획되고 새롭게 디자인되어 매끈한 생각으로 출력되었을 때( 그 희열)와 제미나이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 여타의 작품, 그 기획안들이 얼마나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 <나의 나다운 것>은 나의 첫 번째 생각, 그 미숙함에 있다고 느꼈다.


나의 미숙함이 오히려 장점이 되는, 어쩌면 오늘날은 우리가 기계화되는(기계로 의식이 전이되는) 이상한 시간에 들어선 것은 아닐까. 나의 처음 생각, 그것은 투박하고 미숙하고 보잘것없지만 그 처음 생각이 세련되고 논리적인 기계의 생각보다 더 훌륭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오늘 새벽, 문득 제미나이와 협업하는 재미를 기대하면서 책상에 앉았다가 그 속에 꽈리를 튼 인간 두뇌의 퇴행을 고민하며, 아니 걱정하다 작은 생각을 남긴다.


맞선을 보러 나가 만난 그녀(처음 그녀)는 사진 속 그녀(손본 그녀)와 영 다르게 생겼다.
속은(원래 그녀) 더 다르겠지...


43세에 어린 왕자를 발표하고 다음 해 하늘에서 실종된 생텍쥐페리가
83세 노인이 되어 어린 왕자를 집필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오늘 생각 끝, 이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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