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는 나보다 열 살이나 많았다.
그런데도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국 고등학교 선배에다 나와 성격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누구나 그렇듯 다는 아니지만) 몇 안 되는 우리 동네 한인사회는 미국 대학 tenure인 그를 존경했고 인품도 훌륭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는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지만 씀씀이가 커서 늘 모든 사람에게 융숭한 대접을 했다.
그를 만나고 우리는 주말마다 골프를 쳤다
그는 나보다 키는 좀 작지만 얼굴이 하얗고 말도 느려 진중해 보였다. 그러나 골프장에 들어서면 그는 매홀마다 치열하게, 골프장 디자인한 사람의 의도까지 다 파악하고, 싸우는 승부욕 강한 인디언 전사였다. 그에 비해 나는 골프장에서 자유롭고 사람들과 놀면서 농담도 잘하는 한량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찰떡궁합이었다. 그의 날카로움과 내 느슨함이 제대로 만나 맞물린 것이다. 매주 우리는 골프 치는 시간을 기다렸고 두 개의 팀이 생기면서부터는 정례화되었다.
골프를 치기 시작할 때 사실 나는 골프 초보 백돌이였다.
선배는 보기 플레이어 수준이었고 처음 골프장에서 그가 이런 말을 나에게 던졌다.
"어이, 왜 드라이버 비거리가 그거밖에 안 나가?"
나는 폼에만 관심 있었지 비거리는 아직이었다. 그런 말하는 그는 나보다 구력이 대단한데도 드라이버 비거리가 한 200 야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짧은 애가 더 짧은 애를 만난 기쁨?) 비거리 조롱에 충격받은 젊은 나는 그때부터 절치부심하여 드라이버 연습을 많이 했고 얼마 못 가 250 야드를 넘기는 장타자가 되었다. 성적은 말해 뭐 하나, 당연히 일취월장하여 실실거려도 내기에 강한 내가 홀마다 "따블, 따따불"(꼴찌가 거는 건데)을 걸고 지던 이기던 항상 인디언 잡는 기병대처럼 덤벼들어 적을 제압하고 딴 돈으로 밥을 샀다.
매주 경기는 전쟁터처럼 흥미진진했고 마치면 연회장같이 화기애애했다.
지금 한국에서 골프를 치지 않지만(시골텃밭 땅을 파느라) 미국에서의 골프생활 25 년 정도는 나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드라마로 언젠가 죽어갈 때 곰곰 씹어먹을 추억이 되었다. 선배이야기는 더 해야 한다. 또 그는 드라이버 비거리가 짧아서 슛 게임을 잘했다. 언제나 그가 붙이면 기브 거리(컨시드)고 어려움에 빠지면 기가 막히게 잘 빠져나갔다. 벙커 샷도 대박이고 개울물 러프에서 올라오는 것도 대단했다(한 번은 물에 들어가 맨발투혼을 보인 박세리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홀에서 감격해서 울뻔했고 돈도 잃어 울뻔했다 ).
그는 골프장에서 한 가지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 골프는 누구든 18홀 중에 세 홀 정도 무너지는 시간이 있어"
그 무너지는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 하는 것이 이기는 비결이라 말했다. 역시 종신교수다왔다. 어떻게 노란 애들과 치열하게 싸워 그 자리에 올라왔는지 알만한 인디언의 철학, 나는 그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그가 완벽주의자에다가 고집도 세고 항상 왕이 되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점이 참 마음에 안 들었지만 또한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경쟁하기 좋은 상대였고 그의 신하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다.
하루는 모르는 멤버들과 골프를 쳤다.
골프장도 다른 지역이고 새로운 상대들은 입도 거칠었다. 그날 선배는 성적이 무척 나빴다. 매홀마다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런데 웬걸 나도 성적이 나빴다. 그 선배가 무너질 때마다 나도 무너졌다. 그날 경기는 결국 망치고 말았다. 집에 와서 내 경기를 복기해 보니 주변이 안 좋을 때, 다시 말해 성적이 안 좋은 사람들(그들은 90타 정도 레벨이었다)과 골프를 치면 나 역시 성적이 안 좋다는 사실이다.
그 생각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꼬리 끝에서 나도 완벽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 정리를 했다. 주변에 삶의 깊이나 넓이의 크기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 나 역시 비슷해진다는 것.
나는 요즘 한국에서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정리를 한다. 내 글의 크기도 나와 비례하다는 것을...
직업의 그는 인격의 그로서 직책만큼 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나이나 직급 때문에 직업의 그들을 산처럼 생각했다)
작가도 훌륭한 문장의 그(그녀)와 생활의 그는 다르다. 자폐적 기질을 가진 작가는 일반인보다 글이 섬세해 뛰어난 것 같지만 자폐와 평범의 경계에 서있는 자폐인이 많아 보인다, (이 경우 천재나 영재가 많이 등장하고, 나는 이것을 자폐끼 라 부르지만.)
글이 복잡한 사람은 머리가 복잡할 것 같고 (윌리엄 진저의 On writing well에서도 간소하게 쓰라고 말한다) 보이는 것과 생각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작가들은 자신의 글로 자신이 크다고 착각하거나 큰 척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나는 이 지점에서 머리가 복잡해져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 일과 내 삶의 크기가 같아지려는 고민.(내 폼과 내 비거리가 같아지려는)
나는 가끔 일과 삶에 내가 어린아이 같다고 느낀다.
니체가 말한 궁극의 위버멘쉬가 아닌 그저 미숙한 아이.
올해는 생각이 많다.
나는 언제쯤 자랄까...
내 나이가 지금...
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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