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by 강노아

프리미어 리그를 직관하러 북런던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골리앗과 싸우던 다윗이 미국에 들어가 동네 축구로 전향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박차(spur)를 단 싸움닭의 거친 숨소리,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군중의 함성,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다.


그 무리는 유랑을 떠난다.


치킨 루져처럼 고루한 행색으로 오래된 컴퓨터 앞 조글조글한 비닐 자판 위에 조이스틱 대신 마우스를 쥐고 유튜브 탐험대가 되기도 하고 AI 셀파의 도움을 받아 주식시장의 발 빠른 싸움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 마저 지겨우면 전쟁을 구경한다.


구독자를 만들어야 생존하는, 유튜버 말투를 흉내 내는, 공영 방송사의 생중계를 들여다보면 된다. 남의 일이니까, 지구저편의 기후 재난과 전쟁에서 보이는 피는 더 이상 붉은색이 아니다.


아버지는 칠십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처럼 백세가 택시 기본요금이 아니던 시대라, 가족들은 조용히 조퇴한 가여운 인생 앞에 숨죽여 울었다. " 세상이 미친것 같다"는 그분의 말씀은 아직도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세상 무대에 중견배우가 되면 누구나 미쳐 도는 것을 알게 되는지 모른다. 인습의 사회와 악연을 끊고 월든의 숲으로 떠난 소로, 유인원의 원래 그곳으로 떠난 니어링 부부는 평생을 그렇게 세상과 헤어져 살았고 우리는 읽고도 여전한 구경꾼이다.




새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국 이민 몇 해만에 은행의 후원을 받아 평생 갚아야 할 내 집을 마련했다. 크레디트만 좋으면, 빚에 짓눌려 숨통이 막혀도 갚기만 하면 훌륭한 사람이라 손뼉 쳐주는 신용사회 맘몬의 달콤한 말에 속아, 마음껏 소비하며 혈관 터져 죽을지 모를 설탕물(콜라)도 양껏 들이키고 살던 아이 같은 시절, 대궐 같은 신천지 집은 소비자 어린이에게 주어진 황송한 선물이었다.


거실천장이 높은 집, 계단 위 복도에서 내려다보면 기회의 땅이란 믿음을 확인받는 저택이었다. 그 시절 4 bedroom 2 bathroom은 가난했던 한국에서 언강생심 꿈도 못 꾸던 거창한 둥지였다.


그 집의 유일한 단점은 갓 지은 집이라 블라인드가 없어 밤마다 백 야드 건너편 이웃에게 볼거리가 된다는 점이었다. 미국인들은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척하면서 블라인드로 세상을 훔쳐본다. 한국에서는 동네 싸움이 나면 네 편 내 편 달려들어 소리부터 지르지만 그들은( 내가 살아온 삼십 년의 시간과 공간만 예를 들어볼 때) 열쇠구멍으로 부모님의 싸움을 구경하는 아이처럼 행동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고 독립적이며 타인과 나의 경계가 분명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의 미국은 지금의 미국과 많이 달랐다.


뇌구조 문제인지 고집으로 가득찬 트럼프, 푸틴, 시진핑, 김정은 같은 동류의 "어른아이"들은 해리 훗스퍼가 싸움닭에 박차를 달아 용맹함을 과시하듯 흉내 내지만 지구 조기멸망을 재촉하는 유해균이다.


독일과 일본을 여행하며 괜찮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풀리지 않던 의문이 있었다.

왜 그들은 히틀러와 히로히토의 망상을 막지 못했을까.


또 최근의 한 가지 의문은 왜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이 또 다른 부처 butcher가 될까?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 이 역시 오리무중이다.




벌거벗은 새 집은 가장 먼저 블라인드를 입었다.

그때부터 나도 훔쳐보는 사람이 되었고 공간 속에 숨어 사적자유라는 이름을 얻었다.


요즘 나는 자주 마음의 블라인드를 닫는다.


확증과 혐오, 불안한 사회, 불안한 사람들, 영혼을 파는 정치인, 종교인, 방송인, 의료인, 장사꾼들을 볼 때마다 니어링 부부가 부러워진다.


조용해져 다시 블라인드를 걷으면,

폭설과 폭우 한발과 바람,

신음하는 인류가 보인다.


왁자지껄한 시장소리가 좋은 빨간 날,

구정이 코앞인데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난 블라인드 뒤편 구경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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