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이 들어"
" 싫어, 형이 해"
" 무겁다니까?"
초등학생 동생은 같은 초등학교 상급생인 형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머니는 같은 동네에서 어렵게 만난 황해도출신 어르신에게 명절 떡을 한 보따리 만들어 자식에게 배달을 부탁했다.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걸어가는 삼십 분 정도는 어린이에게 버거워 보인다.
" 그럼 여기 놔둔다. 네가 들어"
형은 무거운 떡 보따리를 땅바닥에 털썩 내던지고 마치 더 이상 내 책임이 아니라는 듯 손을 털고 앞서 걸었다.
동생은 흘끗 쳐다보더니 아무 일 없다는 표정으로 터벅터벅 따라온다.
형에게 그 길은 저승길 같았다. 머릿속에선 온갖 연산이 동시에 돌아갔다.
" 점점 멀어질수록 다시 돌아가긴 힘들 텐데, 저 고집 센 놈 성질도 더러워서... 참나."
형은 멀어지는 떡보따리를 걱정하다가 결국 돌아서서 다시 그것을 들었다.
나는 지금도 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다.
삼촌은 혼자 살았다.
그는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며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채 자유인으로 지냈다. 숙모는 갈 때마다 바뀌었고, 아버지는 그런 삼촌을 몹시 싫어했다. 삼촌은 행색이 초라했고 얼핏 보면 무장공비나 탈영병처럼 보였다. 그런 그는 나를 무척 아꼈고 갈 때마다 먹고 싶은 것을 묻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주었다. 아버지는 내 눈을 보고 한 번도 웃어주지 않던 것과 달리 항상 삼촌은 내 눈을 마주 보며 미소 지었고 가끔 손도 잡아주었다.
그는 헤어질 때마다 자주 나를 안아주곤 언제든 다시 오라고 말했다. 공비의 미소는 늘 달콤했다.
내가 무장공비를 만나고 오면 아버지는 역정부터 냈다. 다시는 월북하지 말라고.
아버지와 삼촌은 평생 남남처럼 지냈다.
우리 아이 둘은 알파벳도 모를 때 미국비행기를 탔다. 긴 여행이 끝나고 시카고공항에 착륙할 때, 항공기 에일러론이 '이잉' 소리를 내며 내려오자 아이가 갑자기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 무쇠팔 무쇠다리 마징가 z"
모든 승객이 저마다 입가에 미소를 한입씩 베어 문 채 노래를 들었다.
이상한 나라 미국에 입국하는 긴장된 순간을 아이가 노래로 풀어준 것이다.
착륙하며 아이는 큰 박수를 받았다.
아이는 내 동생처럼 영리했고 형보다 뛰어났다. 큰애는 형이라는 이유로 매도 더 맞았고 억울한 누명도 감당해야 했다.
아이들은 노란 머리 아이들, 까만 얼굴 아이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며 자랐고, 나름 그 모든 역경을 견뎌냈다.
작은아이가 9학년이 되자 형과 덩치가 비슷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큰애 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문을 노크하기 전에 귀를 대고 들어보니 다투는 소리 같았다.
"너희들 머 하니?"
광경은 살벌했다.
형이 동생에게 암바를 걸어 꼼짝 못 하게 하고, 동생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 그만해 "
큰애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 운동연습한 거예요, 그렇지?"
작은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안에서는 둔중한 구타소리가 이어졌다. 종목을 권투로 바꿨나 보다.
큰애와 작은애는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
형제가 살갑게 지내는 것을 보면 항상 부럽다.
우리는 유전자의 짐을 지고 산다.
때론 유전감옥에 갇혀 정신병도 얻고 일상을 방해하는 정신적 장애도 안고 살아간다.
같은 유전자를 지닌 형제자매는 일반원수보다 특급 원수일 때가 많다.
그래서 외나무다리에서는 자주 가족을 만난다.
부모가 늙어, 자기도 대물림받은 유전자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가족을 힘들게 할 때,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들도 총칼을 들이대고 싸움을 한다.
생각이 달라서, 돈 때문에, 때론 이유 없이.
말꼬리 잡고, 의아한 언행으로 서로를 긁는다.
바꿀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는 서로 억울한 순간이다.
그저 업보다.
나에게도 싫어하던 아버지의 행동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고
내가 좋아하던 어머니의 불같은 숨은 성격 역시 내 안에 숨어 똬리를 틀고 있다.
진짜 내가 되려면 이 유전자를 갈고닦아 나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몸에 힘을 빼면 유전자에 새겨진 방식대로 떠내려가고
몸에 힘을 주면 유전자에 반대되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그것 참 어렵다.
우리 집에서 겨울을 나는 길고양이들이 싸운다.
같은 집에서 태어나 함께 자랐는데도 한 번씩 서로를 노려보며 형제끼리 싸운다.
얼굴을 있는 대로 찌그리고
앞발로 싸대 귀를 갈기며 욕을 해댄다.
"야옹!"
"야옹!"
목숨 걸고 싸우는 것 같지는 않다.
한 대씩 치기를 하나보다.
"그만해, 싸우면 오늘 밥 없다!"
못 이기는 척 눈치를 보며 나비들은 각자 하늘로 튀어 오른다.
형제가 싸운다.
자매가 싸운다.
자식과 싸운다.
부모와 싸운다.
나라가 싸운다.
이러다 죽겠다.
살아보려고,
나는 내 안의 나와 오늘도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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