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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29. 2019

언어 지우개 " 미안해"

브런치 가족 여러분 새해에도 건필 하시길

두발로 땅에 굳건히 섰다.

왼손엔 돌도끼, 오른손에 불을 들었다.


입에는 언어를 달았다.   

입에 장착한 언어로 이웃을 부르고 모으고 함께 웃었다.


장작불보다 뜨거운 열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기는 이야기를 먹고 자라고 어른은 이야기를 믿고 살았다. 


하지만 

그 말로 사람을 죽이고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젠 그 말들을 지우고 싶다.




그분은 교회 장로였다.

젊어서 건너와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국 대학에 교수가 되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지나면 테니어Tenure( 대학교수의 종신 재직권)도 가능해 보였다.


문제는 언어였다.  

미국 학생들을 지도하며 한국계 미국인 교수의 언어 한계가 지적되었다.

그는 아쉽지만 불편한 대학교수 직업을 던졌다.


그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사업이 번창하자 교수의 꿈을 버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인이 많지 않은 곳이지만, 대학이 있어서  한인 공동체가 생기고 교회가 들어섰다.

그는 집 동네 자기 교회와 비즈니스 동네 한인교회 두 곳을 도왔다.


그는 덕망 있는 장로였고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업가였다.


한국 학생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세 시간 정도 거리의 집을 힘들게 왕래하였다.

집과 멀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가게를 방문했다.  

남은 시간은  한인 알바 학생들이 운영했다.


주말이면 일주일 동안 모아둔 현금수입을 거두어 자기가 사는 동네 은행에 입금했다.

현금뭉치를 들고 다니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위험하지만 한인들은 현금을 선호했다.


그러던 그가 실종되었다.


그의 실종 소식은 금방 소문이 났다.

나와는 친분이 깊어서 그의 실종 사건은 내 일이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몇몇 학생들과 가게 주변을 탐문을 시작했다.

경찰의 수색도 새벽 2시 넘어까지 이어졌지만 어떤 단서나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실종 발생 이틀이 지나자 가족들과 한인사회는 술렁대기 시작했다.

강도에게 당해서 어딘가에 묻혀 있을 거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아마 부부싸움을 해서 가출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걱정은 모래처럼 모여 산을 이루고 이미 겨울의 문턱에 선 그때, 

만약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갇혀 있다면 

밤에는 너무 추워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한인 교회 새벽기도 시간에도 그를 위한 기도는 빠지지 않았다.


그의 소식이 들려온 것은 실종 사흘쯤 지난 저녁이었다.



" 찾았데요"


" 경찰이 찾아서 지금 동네 병원에 입원해 치료 중이랍니다"


빅뉴스 Big news는 달 착륙선이 달에 도착한 것처럼 빠르게 전달되었다.

모여 있던 한인들은 휴스턴 우주센터처럼 환호하며 그 소식을 기뻐했다. 


얼마 뒤,

몇몇 사람들과 함께  한참을 운전해 그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그는 응급실에 있었다.


경찰은 아직도 주변에 있었고 그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고 있었다.

드문드문 말은 하는데 눈은 초점이 없고 몸은 앙상하게 야위어 있었다.

후덕하고 인물이 잘생긴 그가 그렇게 초췌해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의사 말로는 심한 독감으로 바이러스가 뇌로 감염되어 기억상실이나 마비가 올 수 있고 

조금은  안정을 취하며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또한 경찰 설명은 하이웨이에서 지그재그 Zigzag로 운전하던 차량을 보고 검문하다가 

횡설수설하는 이상한 그를 발견했고, 조회 결과 실종 접수된 차량에 운전자 상태가 안 좋아 보여  

병원으로 후송했다고 했다.  환자가 정신을 차리면 좀 더 조사할 사안이라며 자리를 떠났다.


그만하길 다행이었다.


며칠 더 지나 다시 병원을 찾았다.

눈밑에 거무틱한 다크 서클 dark circle을 빼면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 말이 어눌한 그를 대신해 아내가 남편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주일 저녁, 현금수입과 장부를 정리해서 길을 나섰어.   

 좀 춥더라고. 겨울이 빨리 오려나 생각하며 히터를 한단 올리고 집으로 향한 거야.  

 

한두 시간쯤 지났나?  오한이 나고 정신이 아득해지더라고.

운전은 하는데, 여기가 어딘지, 집 은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고, 


집 근처 같아서 차를 갓길에 세우고 쉬다가 깜박 잠이 들었어.  

그때 정신을 잃은 모양이야"


그는 그렇게 첫날밤을 차에서 자고 다음날 새벽에 또 집을 찾아 길을 나섰다고 했다.

그런데 가도 가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호텔을 찾아 들어갈 생각도 못하고 

이웃 도시 주변을 운전하며 사흘 밤낮을 돌아다닌 것이었다. 


경찰은 실종 접수를 받고 크레딧 카드를 조회하니 주유소와 차량 정비센터 한 곳에서

조회되고 식당이나 호텔은 전혀 가지 않았다고 했다.


"기억이 전혀 안 나세요?" 


" 글쎄 기억이 안 나요.  


  주유소에서 물은 사 먹은 것 같고 배도 안 고프고 그냥 추웠다는 생각만 나요"


" 차량 정비는 왜 하셨어요?"   " 모르겠어요"


말하는 중간에도 그는 자주 멍하고 생각에 멈춰 있었다.

어쩌면 찾아온 방문객들 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느라 싫증이 난지도 모른다.


"이대로 죽나 보다 생각했어요.  

 핸드폰 은 손에 들고 있는데, 집 전화번호가 뭔지, 단축키가  몇 번인지,

 나는 누구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한 마디로 인사불성 상태로 돌아다닌 것 같아요.

 근처 호텔이라도 찾아가서 신분증 주고 내가 아프다 연락 좀 부탁한다 해도 될 텐데 

 도무지 난 내가 이해 되질 않아요." 


그리고 그날, 뒤따라 오던 경찰이 갑자기 경광등을 요란하게 켜며 그를 세우더란다.


(그는 그때 면허증과 차량 등록증도 제시 않고 다짜고짜 Fxxx을 쓰며 화를 냈고 

 경찰은 가족 번호를 핸드폰에서 찾아 연결한 것이었다.)   


그의 아내가 말을 받았다.


"  세상에 말도 마세요, 그 젊잖은 양반이 '여보, 과속도 안 하고 잘 가는데 이 새끼들이 날 잡아' 

   하더니 " 식빵" " 족발' 하면서 그 험한 한국 욕을 섞어가며  말하는 거예요.  

    돌아온 탕자도 아니고 갑자기 살아 돌아온 교회 장로가 세상에, 뭐가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죠 "


정말 다행이었다.


실종 사흘째 교회에서 기도하던 어떤 집사는 환상을 보았는데, 

장로님이 땅에 갇혀서 울고 있다고 했다.


예언은 그를 찾은 날 쏙 들어갔다.  


그녀는 얼마 뒤 "미친 x"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장로님이 한 주 지나 퇴원을 했다.

오랜만에 밥을 마주하고 그를 만났다.


" 좀 어떠세요, 이만하길 감사해야죠"


" 걱정 끼쳐서 미안합니다, 제가 좀 추해 보이지요?

  입원해서 많은 생각 했습니다.   너무 돈 벌기에 빠져서 하나님이 화가 난 모양입니다"


그가 의식 없을 때  상스러운 미국, 한국 욕을 다 했다는 말도 스스로 부끄럽다고 했다.


"사람 사는 게 참 별거 아니더라고요"


감기에 죽을 수 도 있고 기억상실도 겪어보니  이젠 좀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자 그는 지나간 자기의 추한 언어도 지우고 싶어 했다.


" 제가 아파서 그랬으니 욕한 거는 기억에서 지워 주시는 겁니다.  하하하"

 


그 해 겨울은 그렇게 많은 추억을 주고 떠났다.


그리고 우리의 실수를 지워주는 지우개 "미안해"를 선물로 남겼다.


올해가 가기 전에,

지우고 싶은 언어와 행동은 없을까? 


생각하고, 송년회 하면 좋겠다.


가족들과 지우고 갈 것이 더  많을지 모른다.


2019 영원히 안녕, 

미안하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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