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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an 04. 2020

보물상자

영물

갑자기 불이 나면 무엇을 챙겨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여권, 시민권, 외장하드, USB, 노트북, 보물상자......




미국에서 국내로 들어올 때 작은 상자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티제이맥스 TJ Max에서 산 것인데 귀중품이나 보석함으로 쓰면 좋을 작은 나무상자였다.

짙은 나무색 바탕에 가운데가 옅은 노랑으로 구분되고 왼쪽 모서리에는  영롱한 나비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의 죽음 이야기를 탐독하던 때  나비에 꽂혀서 이 상자를 집었는지 모르지만

그 상자는 내 귀한상자가  되었다.


거실 소파 스탠드 옆에 장식으로 좋고 현금이나 열쇠를 넣어 두어 좋았다.  

집에 들어오면 이 상자를 먼저 만나고 그것은 그 자리에 항상 놓여 있었다.

변함없어서 인지 기억을 담아서 그런지 상자는 내게 늘 소중했다.


한국에 같이 들어온 이 상자는 미국에서 하던 것과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동생이 사랑하던 애견 루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이 상자에  

녀석의 유골을 담아 보관하자고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교통사고였다.

가족들의 슬픔은 아주 오랫동안 루이 담은 상자와 함께 계속되었다.


루이 상자를 동생 집 소파 옆 탁자에 두고 가족들이 귀가하면 " 루이 안녕" 하며

슬픔을 못 본 척하고 기쁨을 덧칠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강아지들이 다른 아이들 냄새 위에 자기 댓글 달듯.


하지만 루이 상자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요술상자가 되어 버렸다.


일 년쯤 지나서  루이 상자는 다시 내 품에 돌아왔다.


이제 루이를 자유롭게 해 주자는 의견이 모여 상자 안에 잠들어 있던 루이를 깨우지 않고 조심스럽게

원래 태어났던 친 어머니 자연에게 보내 드렸다.


아이의 유골을 하늘에 날리면 잠에서 깰까, 우리에게 남겨준 추억이 날아갈까 두려워 하얀색 한지에

곱게 싼 한 줌 아이를 바닷가 공원 옆 따뜻하고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묻어 주었다.

바다에는 처음 세상 나들이 나온 꼬맹이 루이가 을왕리 해변에서 바다 갈매기에 놀라

발밑에 숨던 추억도 함께 있었다.


가족들은 자주 공원에 갔다.

루이와 똑같이 생긴 동생 로이도  " 형아 보러 가자" 하면 형이 묻혀 있는 곳으로 단박에 향한다.  

거기 서서 작은 쉼표, 망각의 여백으로 슬픔은 날리고 추억은 꺼냈다.


세상 살기에 목놓아 울고 싶을 때, 차라리 그리움에 우는 것이 조금은  낫기에

루이를 그리워하며 웃으며 울었다.

그렇게 루이가 잠들어 있던 루이 상자는 텅 비어져 내게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부터 상자가 거룩해 보였다.


더 이상 더러운 현금이나 오염된 물건을 넣어둘 수 없었다.

추억이 담겨서 거룩했다.


다른 것을 찾기 시작했다.

서랍장 위에 장식으로 산 작은 종이 보였다.


한국에 처음 다시 들어왔을 때 외국인처럼 인사동 거리를 걷다가 눈에 꽂힌 그 종이다.

가판대에 청동 합금으로 만든 그 종이 하도 예뻐 냉큼 집어 들고


 "이거 얼마예요?"


"아이고 손님, 눈썰미 좋으시네 이 작품은 전공하는 학생들이 직접 제작해서 몇 개 없어요.  

소리가 너무 좋죠?"


아주머니는 종소리처럼 딸랑딸랑한 목소리로 구수한 고구마 냄새 같은 친절을

종과 함께 내어 놓았고 그녀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나는 지폐를 지불했다.


종은 슬픈 울림이 났다.


글을 쓰다 막히거나 잡념이 뇌를 삼킬 때 종을 한번 흔들어 주었다.

그때마다  종은 나를 치료해주고 생각의 얽힌 타래도 풀어 주었다.


그 종을 루이 상자에 넣기로 했다.


상자에 하나만 더 넣고 싶어


어른이 되며 나와 자주 부딪히던 아들이 선물한  미군 소위 계급장이 있었다.


"아빠, 저 내일 중위로 진급해요. 평택 미군기지로 오실 수 있어요?"


갑작스러운 전화에 놀라고 반가웠다.

혼자만 진급해서 공식행사는 따로 없는데 진급기념으로 식사하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서 보니 그는 자신만의 진급 행사를 스스로 기획해서 만들어 놓았다.


부대원과 지휘관이 강당에 모여 중위 계급장을 달아주고 축하와 인사를 주고받는 간단한 의식이었다.  

행사를 마치자 소속 지휘관 폴Paul 대령이 나와 악수하고 웃으며 말했다.


"참 특이한 아들을 가졌습니다.  누구나 하는 중위 진급식을 장군 진급식처럼 만들었네요.  하하 "


아들은 그날 부대원들에게 런치 스페셜 Lunch special로 거액을 투자했다.


"아빠가 한국에 계셔서 다행이에요."


식사를 마치자 아들은 나를 초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직속상관 스티브Steve 소령이 지금처럼 중위 진급할 때 아무도 초대하지 않고 넘어갔는데,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자 진급식에 아버지를 초청하지 못한 것이

아쉽게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버지를 꼭 초청해서 자리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한다.

  

"아빠, 이거 제가 노력해서 얻은 계급장이에요"

그날 아들은 어깨 위의 소위 견장을 나에게 추억 선물로 주었다.  


아들과 관계가 소원했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지금도 그 계급장은 항상 내 책상 옆에 놓여 있다.

내가 내 아버지와 그랬듯  언젠가 이 아들도 나와 진심으로 화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귀중품 담던 귀한상자는 루이를 담아 루이 상자로 변하고

지금 소위 계급장과 인사동 종을 담아 추억상자가 되었다.


불이 나면 제일 먼저 들고나갈 애장품 1호다.


기회가 되면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물건도 담아 추억 상자에 어머니 마음도  담을 작정이다.   


이 상자는 영물이 되었다.


 

        

   

보물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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