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났지만 이제는 만나지 않는다는 것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온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여지며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사실 이 부분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문장은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는 말인데, 이건 다음에 따로 글을 쓰겠다.
사람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무지했던 스무 살, 스물한 살 그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배운다. 가족이나 친구와 다르게 새로 분류할 수 있는 그 관계는 다른 관계들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짜릿하고, 고통스럽다. 그렇게 놀라 감탄하는 사이, 최초의 연애를 하고 그 적응기를 지나면 최초의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드라마나 노래 가사에서 닳도록 언급되는 뻔한 이별인데 이토록 아프다는 것에 놀란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아픈 것일까, 이걸 어떻게 견디는 것인가 되뇐다. 이제 연애를 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연애를 더 하고 안 하고는 그 사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전과는 다른 내가 된 것이다.
그렇게 다시는 안 하겠다는 연애를 수 차례, 아프기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사회에서 말하는 어른스러워야 하는 나이가 된다.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 더 많이 다친다는 것을 깨닫는다.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몇 가지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사랑을 아예 믿지 않거나 덜 믿게 된다. 사랑이 변한다는 것도 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내가 상대방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그러나 책에서 말하듯 또 다른 사랑은 반드시 오고 다시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오히려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기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별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별은 언제나 아프고 배신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내 모든 것을 공유하고 가장 가까이서 함께 한 관계를 단숨에 자르는 것은 그 만한 아픔이 따른다.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든다. 그 사실 하나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똑같이 흘러간다.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던 사람이 이제는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그 극단적인 속성.
사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상대방에게 얼마만큼의 진심을 주고 그중 얼마를 보여줘야 하는지, 얼마나 마음을 열어야 하는지, 상대방의 진심을 얼마나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이별에 늘 대비하고 있다면 그 사람과 이별할 수밖에 없기에 이별에 대한 생각을 모른 체 하거나 이별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끝에 결국 찾아오는 이별은 늘 고통스럽다. 금방 괜찮아질 리가 없다.
끝이 난 후에는 끝없이 나에게 묻는다. 왜 헤어졌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그때 다른 행동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는 나를 정말 사랑했을까,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처럼 너도 힘들까, 나를 언제까지 기억해 줄까.
이별은 항상 아프지만 이제는 어떻게 아파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이별에 이유는 없다.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그냥 헤어진 것이다. 그걸로 끝이다.
2020년 7월 21일 오후 3시 45분 스타벅스 동교점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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