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렙이 알렙에게 - 최영희
SF라는 장르는 쉽지 않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장르이다. 많은 작가들이 도전을 했고 괜찮은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고 있다.
동화 작품들 중에도 많이 선보이고 있는데 아직 나는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최영희'라는 작가 때문이었다.
워낙 독특한 작품을 많이 보였던 작가라 이 작품은 이미 예전에 2017년에 나온 동화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워낙 SF 쪽은 어린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기가 태어난다는 건 누가 죽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p23
사냥조가 된 알렙, 그의 친구 피트는 복제수정란을 고속 배양하여 다시 태어난다. 내 세포를 배양하여 내가 죽은 후에 다시 수정란을 배양하여 또 다른 내가 태어난다면,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그건 과연 좋을까?
한 번씩 이 장르에 해당하는 동화를 읽다 보면, 세계관을 설정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참 궁금하다.
'호모 바르두스'는 고대 지구의 라틴어로 '어리석은 인간'을 칭한다는 문장이 나온다. 정말 있는 단어일까? 궁금하여 검색해 보니 바르두스 남작이야기는 있으나 딱히 단어에 대한 정의는 나오질 않는다.
어쩌면 이런 작명도 굉장한 센스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진짜 있는지, 없는지 검색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 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읽을 테니까.
이 동화에 나오는 '메가테리오'라는 정체가 행성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이다. 풀을 먹은 메가테리오를 인간이 잡아먹는다. 그 메가테리오를 사냥꾼 알렙이 잡으러 나선다.
첫 사냥에서 알렙은 메가테리오에 대해 여러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지구의 해마와 달팽이를 섞은 듯한 모습에, 시각기관과 호흡기관을 갖춘 동물이라는 것. p62
목덜미를 살펴보라는 당부에 피부의 주름 사이에 반짝이는 것을 발견한 알렙은 그것을 만져 본다. 전원버튼과 위치추적장치가 달린 메가테리오를 확인한 알렙은 목적을 생각하게 된다.
메가테리오 몸에 붙어있는 고대 지구의 글자로 새겨진 기계장치를 발견한 알렙의 의구심은 이 동화를 끝까지 읽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글자는 '알렙'이라는 히브리어였기 때문이다.
알렙, 난 죽어서 비료가 된다는 말이 맘에 들어. 포툰밭이나 이끼밭에 뿌려질 비료도 되고, 인간의 역사를 비옥하게 할 비료도 되고.
난 네가 살아남길 바란다. p79
테라 행성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알렙은 기계장치의 글자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 기계장치는 알렙이 살고 있는 곳의 물건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SF 관련 동화를 읽다 보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거나, 지구가 오염되어 멸망한 후 다른 행성에서 살게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다른 행성에 가지 못하게 잡아뒀지만 알고 보니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새로운 인류의 탄생이고 더 많은 종족들이 다양하게 살아가는 공간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 역시 마마돔을 탈출하려고 하면 붙잡혀 죽는다. 모두 바이러스 감염이나, 사고로 인한 죽음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들의 불안을 이용해 하나의 세력이 생기고 그 세력을 중심으로 리더를 만든다. 그 리더의 발언은 곧 법이기 때문에 그 법을 어기려 하는 자들은 죽음을 당한다. 그 죽음은 절대 사람들에게 보이거나, 알려지지 않는 죽음으로 포장된다.
눈을 가리고, 입을 막는 듯한 이 행위가 현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메가테리오의 생김새가 궁금했다.
앞서 묘사를 한 부분이 있었지만,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기대감.
완전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생김새였다.
해마와 달팽이를 섞은 듯한 모습이긴 하지만, 난 오히려 오리너구리가 떠올랐다.
이 메가테리오가 떼를 지어 달리다가 한 메가테리오가 알렙과 피트를 도와준다.
이 동화가 주는 재미는 작가의 또 다른 B급 감성이 보인다.
"우리 어디로 가?"
피트가 민달팽이 육포를 질겅이며 물었다. p149
산소가 부족해 보충하고 발생기를 충전해야 살아갈 수 있다. 지구인을 만나기 전에 로버를 먼저 만나게 된다며 심드렁하게 말하는 피트의 말투가 난 재밌었다.
달팽이와 해마를 닮은 메가테리오를 곁에 두고 민달팽이 육포가 나오는 것은 우연일까?
나는 왜 이 대목에서 웃음이 터진 건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메가테리오를 먹는 건 인간이었다. 그럼 육포를 질겅이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피트가 의식을 잃었을 때 드디어 알렙과 알렙이 만나게 된다.
룩스 1호의 도움으로 마마돔의 알렙과 빛의 딸 알렙이 만났다.
아,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이 동화 역시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나랑 똑같은 모습을 한 생명체가 살아간다.
새로운 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몰살시키고 섬멸한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미래로 띄우는 편지'라는 제목의 작가의 말을 읽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호모 사피엔스라 부릅니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호모 사피엔스는 어리석은 일들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가슴속에 '물음표'를 담고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굉장한 사상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몇 년 사이 뼈저리게 깨닫고 있어서 그런지 2017년에 나온 이 동화에 담긴 이 작가의 말이 새삼 진정성 있게 읽힌다.
부끄럽지 않은 세대가 되어 다음 세대에 올바름을 전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