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알라딘 굿즈가 탐나서 금액을 채우기 위해 장바구니에 담았던 책이다.
그리고 책장에만 꽂혀 있던 이 만화책이 다시 내 손에 들리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킬링타임용으로 골라 들었던 만화책이었는데 이걸 왜 이제야 읽었을까 땅을 치며 후회했던 만화.
아이가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보고 호기심으로 본 후 작가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딸과 유료 북토크를 예약해서 함께 다녀왔다.
둘째도 읽고 난 후 너무 재밌다고 따라가고 싶어 했지만 선착순 마감된 관계로 다음으로 미뤘다.
굉장히 더운 여름날, 오후 6시가 되어도 뜨거운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일산에 밤리단길이라는 동네가 있다.
많은 카페와 작은 책방이 즐비하게 있는 곳.
주차는 꽤 힘들어서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동네.
걸으면서 동네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좋았다.
남편이 책방 앞에 우리 모녀를 내려주고 떠나고 우리를 반겨주는 건 김그래 작가의 입간판.
이 입간판을 국제도서전에서도 본 것 같다.
능청스러운 표정이지만 부끄러움을 담은 표정이 너무 좋았다.
처음 와본 책방이다.
고즈넉하고 아담했다. 6시면 끝난다고 했다. 이른 시간에 들른다면 복작복작한 서점이려나?
분위기를 봐선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조용히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 같다.
책방주인 부부의 관심사가 살짝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이 곳곳에 있고 카페도 겸해서 인지 찻잔도 보인다.
전체적으로 깔끔하다.
있을 것만 있는 것 같은 느낌.
<죠르디 24시>라는 만화를 그려서 이미 유명한 작가였지만 사실 나는 이 [엄마만의 방]이라는 책으로 알게 되었다. 원래 이런 만화 (2등신 캐릭터가 주인공인 만화)를 좋아하는 데 서사(?)마저 엄마의 이야기라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굉장히 궁금했다.
편집자의 질문에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이 여느 젊은이들과는 달랐다고 하면 꼰대려나?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의 이야기도 유머러스하게 얹는, 굉장한 스토리 텔러 같았다.
이 책의 캐릭터처럼 단발머리에 2등신을 상상하며 작가를 만났으나, 굉장한 미모의 소유자였던 사실.
(사람이 2등신인 것을 상상한 나도 참. 반성합니다.)
아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함께 갔는데 사인도 아이 이름으로 받았다.
어찌나 수줍어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작가님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자신의 그림창작 플랫폼을 예를 들어주었고, 나중에 그림을 보고 싶다고도 했다.
(감사합니다. :))
편집자의 자연스러운 진행과 시종일관 친절한 미소에 반했다.
매주 메일링으로 만나는 '유유히' 출판사 대표 '에디터리'였음은 북토크 현장을 나서서야 알게 되었다.
좀 더 친하게(?) 이야기를 건네볼 것을.
이 [엄마만의 방]의 제목을 들으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을 염두하고 쓴 글이기도 했다.
나이 50이 넘어서 처음으로 해외로, 그것도 일하러 베트남을 떠나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다.
'자식'의 입장에서 물가에 내놓은 '엄마'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표지를 보면 침대 위에 누워있는 엄마가 보인다.
작가의 엄마는 비로소 자신만의 방을 가져보게 되었다.
일이 끝난 후 퇴근했을 때 정말 일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안했다는 엄마의 그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회사를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하는 기분이 드는 건 맞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법일 텐데.
아예 바다를 건너 쉽게 방으로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생기니 나만의 시간도 함께 딸려왔을 것 같다.
엄마의 홀로서기는 계속된다.
집에 갔을 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예약을 하는 것도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
3시간씩 걸려서 예약에 성공한 엄마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고 하고 싶은 일들은 나중으로 미뤘을 것이다.
나한테 도움이 되는 것보다는 가족을 위하는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 시간이 점점 쌓여 그림자에 슬픔이 묻어 있던 엄마의 뒷모습이 또 보인다.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날과 키득키득 웃는 날을 보내며 홍주임님은 어느새 '성숙 언니'가 됐고,
이제껏 내가 슬픈 눈으로만 바라봤던 엄마는 누군가에게 동료이자 친구이자 품이 너른 어른이었다. p274
또 자신의 시간을 얻은 것 같다.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사인도 받아서 책방문을 나섰는데 갑자기 딸이 물어본다.
"아까, 작가님이 쓰시던 펜은 뭘까?"
왜, 그 안에선 묻지 않았던 것인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다른 분 책을 사인하고 있어 편집자에게 문의를 했다.
작가가 친절하게 펜을 건네줬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나왔더니 이번엔 다른 출판사 분이 잡는다.
"아이가 중학생이라고 해서요."
중학생은 혼자라고 출판사 관계자분이 건네주신 마그넷.
(아무래도 그분이 출판사 직원인 '위트보이'님 같다.)
진짜 이 출판사분들은 왜 이렇게 수줍어하면서 친절할까?
따뜻하다. 굉장히.
작가님이 알려준 펜을 사서 그린 아이의 그림.
아이가 펜으로 그림을 그리니 더 잘 그려진다고 한다.
그리고 플랫폼에 한 번 올려보고 싶다고도 했다.
계정을 만들어 줘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