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동생이 올라왔다.
내가 있는 곳까지는 멀어서 오질 못하고 중간보다 좀 더 위에 위치한 지역, 수원에서 만났다.
최근에 생긴 수원 스타필드 내 '별마당 도서관'에서 보기로 했다.
코엑스 내에 있던 별마당 도서관과는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했다.
도서관이기 때문에 모든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다.
그것 말고도 포토스폿이 있어서 사람들이 줄지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진짜 지구본이 녹아내리고 있는 설치물을 보니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냉방이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곳에서 편히 쇼핑을 하는 것도 어쩌면 지구에 큰 잘못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 들른 곳은 '미루꾸커피' 수원 스타필드점.
파란색 주전자 모양의 이미지가 꽤 유명하다.
일산 밤리단길에도 본점이 있고 더현대에도 있다.
나는 이 카페의 꾸덕꾸덕한 커피를 좋아한다.
이곳의 모든 매장에 사람들이 많았다. 줄을 서서 대기를 하고 있는 매장도 꽤 많았다.
운 좋게 저녁을 일찍 먹고 이곳으로 갔을 때 사람들이 없어서 드립백 커피도 샀다. 동생이. ㅋㅋ
마침 1+1 행사를 하고 있어서 사이좋게 하나씩 가져왔다.
둘 다 시그니처 커피로 나는 화이트(크림이 있는), 동생은 그레이(흑임자가 있는) 커피로 주문했다.
꾸덕꾸덕한 느낌.
달고나 맛도 살짝 나고 커피의 쓴 맛이 달짝지근한 크림이 잡아줘서 전체적으로 끝맛이 달달했다.
항상 따뜻한 라테를 마시는 내가 유일하게 아이스로 먹는 커피는 크림이 들어간 커피.
달달한 게 좋아요. :)
이번에 가져간 책은 최영희 작가의 [칡]이라는 소설이다.
워낙 SF작가로 유명한 작가여서 이 책 역시 당연히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얇지만 묵직한 내용이 들어있는 책이다.
책 표지는 가벼운 청소년 소설을 연상시키지만 참 의문이 많이 들었던 소설이다.
왜 칡이어야 했을까?
많고 많은 덩굴식물 중에 왜 칡이어야 했을까?
시골에 놀러 가면 해마다 칡을 캐러 가는 마을 주민들을 본다.
그 사람들은 칡즙을 내서 팔기도 하고 자식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쓰디쓴 칡, 하지만 몸에 좋다고 소문난 먹거리다.
그것과도 연관이 있을까?
한 마을에 칡이 점령한다.
군인들이 마을을 폐쇄시키고 주민들을 군민체육관으로 대피시킨다.
동생의 애착이불을 가지러 간 시훈은 성당 십자가를 집어삼킨 칡 줄기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런데 어디선가 청아이모가 나타나(반달모양 흰 칼을 쥐고) 칡 줄기를 베어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주변의 칡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짖어 대던 방울이는 상체를 낮추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건 또 시훈이가 알던 방울이 모습 그대로였다. 칡의 감각 기관으로 변했지만 방울이의 기억도 일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p61
칡이 살아서 움직이다고 생각을 하면 정말 공포스러울 것 같다.
담요 하나 가지러 갔다가 시훈은 목숨을 잃을 뻔했다.
회관까지만 오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이장 할아버지의 방송을 듣고 뛰어간 시훈은 놀라고 만다.
시훈은 이장할아버지가 칡의 눈이자 뇌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숙주를 없애려고 한다.
하지만 칡의 넝쿨손들이 시훈을 옥죄어 오고 덮친다.
그때 전기톱으로 칡들을 잘라내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청아이모였다.
청아이모는 시훈에게 공터로 가 뭔가를 태우기를 희망한다.
칡으로 인해 사랑하는 반려견 방울이도 잃게 되고 시훈은 칡뿌리를 찾아 헤매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파고 또 파 내려가자 칡뿌리가 드러났다. 놈은 칡뿌리라기보다 아름드리나무의 줄기 같았다.
놈은 다시 줄기를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실뱀 같은 연초록 줄기가 꾸물꾸물 구덩이를 타고 올라왔다. p88
징그럽게 끈질긴 칡이다. 괭이 날로 내려치고 끊어냈다. 정원 가위로 줄기를 잘라냈지만 역부족이다.
풀이 시훈의 손등에 박히자 통증이 번졌다.
청아이모와 시훈이는 넝쿨손을 거의 잘라내고 칡 줄기를 계속해서 잘라낸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과거 사건의 진실.
청아이모와 비슬상회 아주머니와는 어떤 관계일까?
4년 전 작가는 이 책을 내고 작가의 말에 이렇게 실었다.
일이나 인생을 성공했느냐 아니냐로 판가름하는 시선들이 늘 아팠다.
단 한 번의 생을 부여받고, 애쓰다 사라진 이들의 자취를 되새기고 싶다.
100페이지도 안 되는 소설에 굉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태어나서 뭔가를 이루고 가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자취를 되새기고 싶다는 작가의 말을 읽고 울림을 느꼈다.
모든 사물에 대해 허투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