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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Mar 25. 2022

아버지의 손



차가운 바람이 불고 문을 열면 내 마음도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은 겨울이 지나가니 창을 열고 밖을 보면 눈 안에 막이 하나 있는 듯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뿌연 하늘만 보이는 봄 아닌 봄이 왔다.

환기를 시킬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던 찰나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의 입원을 알리는, 반갑지만은 않은 소식이었다.


몇 년 전부터 겨울에는 산불 관리요원, 여름엔 물 관리요원으로 소일거리를 하시던 아버지는 운전 중 갑자기 오른쪽 눈이 잘 보이질 않아 시골 읍내 병원을 찾았다. 좀 더 큰 병원으로 가 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아버지를 모시고 대구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한 아버지는 뇌경색 판정을 받으셨고 마침 주말이라 남편과 서둘러 대구로 향했다.

코로나19로 면회는커녕 병원 출입도 쉽지 않았다. 보안요원들이 입구에 서서 들어오는 한 명 한 명 체온을 재는 것은 기본이고 방문 기록카드를 작성해야 비로소 방문자석에 앉을 수 있었다. 환자가 내려올 수 있는 상태라면 로비에서 만나도 되었지만 아버지는 침상에서 벗어나면 낙상 우려가 있을 상황이라 우리는 한 명씩 아버지가 계신 병실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수척해진 아버지의 얼굴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있으니 더욱 초췌하게 보였다.





“다 됐나? 이제 가 보자!”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 아버지는 우리 형제가 방학만 되면 어디든 데려가셨다. 특히 낚시를 좋아하셔서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오케이였다.


대충 짐을 싼 흔적을 보신 아버지는 그 짐들을 들고 대문을 나섰다. 우리는 그 뒤를 병아리 마냥 졸졸 따랐다.

부모님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했다. 아끼고 또 아껴 가계에 도움을 줄 중고 트럭 한 대 구입했다.

트럭이 우리 집에 오고 맞이한 첫 여름방학, 우리는 그 트럭을 타고 집 근처가 아닌 멀리 바다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는 손바닥으로 박자를 맞추며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셨다.


© bhossfeld, 출처 Pixabay


여름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아버지를 따라 근처 강, 바다 가릴 것 없이 떠났다. TV에서 흔히 보는 낚시터 낚시가 아니라 촘촘한 그물망을 던져 고기떼를 건져 올리는 어부처럼 낚시를 하셨다. 요즘처럼 자연보호에 힘쓰고 각종 법으로 강제하지 않았던 그 시절엔 이러한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바다와 가까운 모래사장에 자그마한 텐트를 치고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독학으로 배운 실력으로 손수 실로 꿰고 추를 달아 만든 그물망을 어깨에 메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어부처럼 그물로 다양한 고기를 낚아 올리는 동안 엄마는 버너에 냄비를 올려놓고 밥을 안친 후 국물이 일품인 찌개를 끓였다.

  삼 남매는 모래에 몸을 묻고 일광욕을 하면서 모래성을 쌓아 올리기도 하고 아버지를 따라 물속에 들어가 땅 짚고 헤엄도 치며 놀았다.


© clicjeroen, 출처 Pixabay


그날 밤, 우리는 외박을 했다. 좋은 호텔이나 콘도, 펜션이 아닌 작디작은 텐트에서 말이다.

그늘을 찾아 옮긴 자리에는 작은 돌멩이가 자글자글했다. 아버진 돌들을 굴려 평평하게 만든 후 텐트를 치고 혹시나 새벽이슬을 맞으면 추울까 가져온 이불을 그 위에 깔았다.

좁은 텐트 안에서 옹기종기 5 식구가 잠을 청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풀벌레 소리가 찌르찌르 귓가에 맴돌았고 깊지 않은 냇가 옆이라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자연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몽글몽글한 밤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묵은 우리는 따뜻한 밥과 냇가에서 잡은 물고기, 그리고 대화 내내 연신 떠나질 않은 웃음을 반찬으로 먹고 놀았다.




앙상한 아버지의 팔을 잡으니 구부러진 손가락이 보였다. 얼마 전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은 내 손가락과 닮아있었다. 울퉁불퉁한 마디와 고생의 흔적이 물씬 드러나는 손톱. 그 손으로 아버진 우리에게 여름의 추억을 선물하셨다.

1인 면회시간이 충분치 않아 동생들에게 바통을 넘겨야 했다.

힘이 없어진 아버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던 나는 간호사에게 영양제 링거를 투여해 달라 부탁했다. 행여나 많이 나올 병원비를 걱정하는 아버지를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 liane, 출처 Unsplash

  

가족의 애환이 담긴 그 손을 한 번 더 잡아드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처음으로 집이 아닌 곳에서 잠들었던 그날 밤의 추억을 가족들에게 선물해준 아버지.

그 아버지를 닮은 딸은 자신의 손을 보며 다시 그날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곰단지야] 2020.08. 삶이 문학이다. - 도서출판 곰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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