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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Mar 10. 2022

엄마 또 올 거지?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엄마

벚꽃이 만연한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에서 보도되는 미세먼지 예보로 알게 되었다.

추운 겨울 내내 따뜻한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쌀쌀한 바람이 가시자 먼지가 까꿍 하고 나오기 시작한다.

거기다 2년째 돌고 있는 코로나까지 합세해 햇살은 봄인데 내 마음은 아직도 겨울 끄트막에 남겨진 것 같다.


10년 전 이렇게 따뜻했던 봄, 친정엄마는 큰 수술을 했다. 일단 개복을 하는 순간 어느 정도의 합병증이 우려되는 머리, 뇌수막종 제거 수술이었다.

평소 건강하셨고 항상 바지런하게 움직이셔서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땐 참으로 많이 놀랐다.

그 전년도에는 아버지께서 뇌혈관기형이라는 판정을 받아 치료 중이셨기 때문에 엄마의 소식은 더욱더 놀랄 수밖에 없었고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기뻐하기엔 너무나 큰 수술이어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 jk, 출처 Unsplash


수술하기 하루 전에 올라오신 엄마는 여행하는 기분으로 서울로 올라오셨다고 했다.

영동에서 출발한 기차 안에서 창 밖을 구경하며 봄을 만끽하신 듯했다.


바로 다음 날 있을 수술은 생각지 않으시고 그저 기차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친구 분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에도 ‘나 수술하러 서울 간다. 지금 여행하는 기분으로 가는 중이다’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의연한 태도로 일관 중이시던 엄마께 대단하다고 말을 하며 웃고 있는 딸의 속마음은 타들어갔음을 엄마는 아실까?


외삼촌이 계시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수속 후 다음날 수술할 예정이었던 엄마를 두고 아이들을 데리러 일산으로 다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이 났다.

부모가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자기 자식이 행여 엄마를 기다릴까 걱정하는 마음이 먼저 드는 이기심에 화도 나고 걱정도 되어서였다.

다행히 늦지 않게 유치원에 도착하여 ‘엄마’하고 외치며 뛰어나오는 아이들을 보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면서 병실에 홀로 있을 엄마 생각이 또 마음이 아팠다.


수술은 오후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새벽 수술의 예후가 좋다며 지인의 도움으로 일정은 새벽 시간으로 변경이 되었다. 전 날 밤 미리 대구에서 올라와 병원에서 지냈던 남동생만이 수술실로 들어가는 엄마를 보았다.

집에서 함께 출발하려고 했던 아버지와 나는 서둘러 갔으나 수술이 진행 중이라는 안내판만 봤을 뿐이다.

첫 수술은 예후가 좋다는 말만 굳건히 믿으며 차라리 잘되었다며 서로를 안심시켰다.


엄마보다 나중에 수술실로 들어간 환자들이 하나둘씩 회복실로 이동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수술 전에 주의사항을 안내받을 때 언급되었던 사항인데도 걱정이 너무 컸다.

입술이 바짝 타오르고 점심시간이 다되어가는 데도 누구 하나 밥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연신 자리에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안내판에 회복실로 이동되었다는 엄마의 이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아, 하고 소리를 쳤다. 일단 회복실로 갔으니 곧 우리를 부르겠구나 하며 손바닥을 비비며 출입문 앞을 서성였다.


© kylejohnston, 출처 Unsplash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회복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진 엄마의 이름을 확인하고 얼마 후 안에서 보호자를 부르는 소리에 아버지, 나, 남동생은 누구랄 것도 없이 뛰어갔다.

무균실에 들어가는 것처럼 손 소독을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동여 메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무수한 선들과 링거들이 꽂혀있는 엄마의 팔목과 가슴을 보니 숨이 막혔고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났다.

항생제에 대한 반응 탓인지 엄마의 얼굴은 팅팅 부어있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 간호사가 물수건으로 조금씩 닦아주라고 했다.

엄마를 계속 불러보았으니 엄마는 눈을 뜨지 못했다.

왜 눈을 뜨지 않는 것인지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조마조마했다.


그때 아버지가 엄마의 손을 잡고 얼굴에 대고 ‘영란아’ 하고 부르자 거짓말처럼 엄마의 눈이 떠지고 엄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평생을 같이 한 부부여서 그랬던 걸까?

엄마는 아버지의 목소리만 들렸다고 한다.

계속되는 기계음에 머리가 아프고 목도 말라 꼼짝도 못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고 한다.

미우나 고우나 토닥거리며 살아온 인생이 이럴 때 빛을 발한 걸까?

지금도 그때 일을 회상하며 온 가족이 다 모이면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 harlimarten, 출처 Unsplash


수술 후에도 정기검진 때문에 서울로 오게 되면 엄마는 딸이 있는 일산으로 오셨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보다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한 후 맏딸의 집에 처음 방문을 하는 것이어서 엄마는 마트에 가서 세제와 휴지, 이것저것 마구 사주셨다.

며칠에 한 번씩 야근하는 사위를 위해 뼈다귀 해장국이며, 사골곰탕이며 좋아하는 나물 반찬까지 냉장고 한가득해주셨다.


병원에서는 수술은 잘되었어도 수술한 부위가 워낙 좋지 않았던 곳이라 어느 정도 제거는 했지만 완치까지는 15년은 봐야 한다며 매년 MRI 촬영을 하고 변화가 생기면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나저러나 1년에 한 번은 꼭 큰 딸 집에 오셔야 한다며 엄마에게 으름장을 놓자 엄마는 피식 웃으셨다.


다시 기차역으로 가는 동안 엄마의 전화는 계속해서 울렸다.

아버지의 전화였다.

걱정되는 당신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기차에 오른 엄마는 어서 집으로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를 올려 보내고 시계를 보니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편의점에서 우유와 빵을 사서 다시 기차 칸에 올랐다.

기차 칸에 오른 나를 본 엄마는 집에 간 줄 알았던 애가 갑자기 올라타  깜짝 놀라시며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조그만 봉지를 건네자 엄마는 뭘 이런 걸 또 샀냐며 출발한다고 어서 내리라고 했다.


기차는 천천히 그 자리를 떠났다.

기차 문이 닫히고 난 후 이 기차가 어서 출발을 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걸 엄마는 아실까?

엄마와 둘이 차를 타고 온 길을 다시 되돌아 내 아이들에게 가는 동안 또다시 엄마가 보고픈 걸 엄마는 아실까?

같이 살고 있을 때 좀 더 잘해드릴 걸, 속상하게 하지 말 걸, 이렇게 후회하는 것을 엄마는 아실까?


포근한 봄이 되니 따뜻한 품을 가진 엄마가  더 보고 싶다.

다음 달에 있을 엄마의 정기검진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 올라오시면 12첩 반상까진 아니더라도 멋들어진 밥상을 차려드려야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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