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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Mar 04. 2022

도서관에서 만난 미래

응급상황


지금은 두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지만 유치원을 다니던 꼬꼬마 시절, 나는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읽을 책도 풍부했고 지금과는 다르게 강의도 꽤 많이 열렸다.

거의 매일 아침 일찍 서둘러 두 아이를 각각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빠른 걸음으로 동네에 위치한 공공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지내다보니 다른 워킹맘들보다 뒤쳐지기 싫어 원격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송통신대 교육학과에 편입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기말고사가 코 앞으로 다가왔을 즈음이었다.


걸어가는 중에 걸려온 둘째 친구 엄마의 전화로 심심치는 않게 걸어왔으나 통화가 끊기지 않을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휴대폰은 그대로 귀에 대고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열람실 좌석표를 발급받아 조용히 3층으로 올라왔다. 상대방은 여전히 끊을 생각이 없어 열람실과 시청각실 사이에 위치한 옥외 3층 휴게실로 갔다.

바깥 바람도 쐴 수 있고 통화하기에도 적합해 벤치에서 통화를 했다.

이제 슬슬 통화를 마무리 짓고 공부를 하러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열람실 쪽 복도로 걸어갔다.


그 때, 갑자기 웅성웅성하는 소리와 함께 푸르둥둥한 제복을 입은 경찰관 2명과 119대원 두 명이 도서관 관계자와 대화를 하며 2층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아줌마 특유의 오지랖이 발동해 일단 끊자며 통화를 종료 후 열람실로 들어가 내 자리에 가방을 살포시 놔두고 반납할 책만 들고 다시 나왔다.

무전기에 입을 대고 상황을 전하는 듯 한 경찰관은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 지금 채팅 중이라구요?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현장에는 도착했습니다. 그럼 다른 이상한 점 발견되면…”

경찰관은 무전을 마치려는 그 때 119 대원들이 4~5명 정도 더 올라오면서 하는 대화를 통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수 있었다.

“자살한다고 글을 썼다고 하네.”

열람실 맞은 편 디지털 자료실 문이 열리고 경찰관과 119대원들은 그리로 들어갔다. 그 글을 쓴 사람을 수색하는 듯 했다.

그들의 대화를 뒤로 한 채 나는 2층 종합자료실로 내려와 책을 반납하고 있으니 잠시 후 한 경찰관이 무전기에 보고를 하며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상황종료입니다.”

“끝났네. 상황종료래.”

내 책을 반납 처리하던 사서에게 옆에 서서 멀뚱히 바라보고 있던 또 다른 사서가 말을 했다.

이 도서관 전체의 관심이 3층 디지털 자료실에 쏠려 있는 듯 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119대원들과 경찰관들에게 둘러 쌓여 내려가던 한 남자의 뒤통수가 보였다.

여느 대학생처럼 평범한 옷차림을 한 그는 커다란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고개는

푹 숙인 채로 계단 너머로 사라졌다.

2층 자료실 복도에서 그 광경을 구경하며 수근대던 학생들과 직원들은 그 무리가

내려가고 조용해지자 다시 기존 각자가 했던 공간으로 향했다.

공부하던 학생들은 열람실이나 강의실로, 직원들은 사무실로 돌아갔고 화장실 청소를 하다 잠시 상황을 보러 나온 아주머니까지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만 홀로 그 곳에 남아 멍하니 사람들이 내려간 계단을 바라 보았다.

그 학생의 뒤통수가 자꾸 마음에 걸리고 불편해졌다.

이제 스물 남짓 됐을, 나이가 더 들어봤자 군대를 갓 제대를 했을 것 같은 그가 무엇이 힘들어 공공도서관 컴퓨터실까지 와서 자살을 한다고 했을까.

주위의 이목을 끌고 싶었던 것일까, 아님 취업이나 공부가 힘이 들어 정말 나쁜 마음을 먹었던 걸까. 관심을 받고 싶어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면 그런 관심이 왜 필요했을까.

지금 시대는 3포 세대를 넘어 4포, 5포 세대라고 한다.

수능을 쳐서 간신히 대학을 입학하니 취업이 안 되어서 포기를 하고 취업이 안되니 결혼도 포기를 하게 되고 아이를 출산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언감생심이 된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들 중 기억에 남는 사진이 하나 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 ‘우주여행’이라는 주제로 글짓기 숙제를 냈는데 한 초등학생이 써 놓은 종이를 찍은 사진이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저는 우주여행을 갈 수 없습니다. 미술도 가야 하고 영어랑 수학도 가야하고 피아노도 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주선을 살 돈도 없어서 저는 우주여행을 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미술, 영어, 수학, 피아노는 모두 학원이다.)



이 글을 장난으로 쓴 글로 치부하기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너무 암울하다.

겨우 13살도 안된 아이가 우주여행의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전에 돈이 없어서 갈 수 없다는 현실을 논하고, 지금 처해져 있는 학업 스트레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심탄회하게 쓴 푸념 글이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새하얀 도화지에 우주선도 그리고 로켓도 그렸고, 그것을 타고 있는 아이는 달여행도 떠나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도 만나고, 하늘에 흐르고 있는 별도 만져보겠다는 상상만으로도 하루가 즐거웠는데 그러한 상상을 맛보기도 전에 어른들은 지금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삶의 고단함을 먼저 준 것 같다.

지금 사회는 그렇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만큼 해서는 안되고 조금이라도 남들보단 뛰어나야 하니 돈을 들여 더 배우게 하고 투자를 해야만 한다.

아이들을 벼랑 끝까지 내몰아 무엇이 됐든 결론이 나야만 고개를 돌려 관심을 가지고 반성을 하는 이 사회는 좀더 아이들에게 힘찬 미래를 꿈꾸게 해주고 아이의 순수함 만큼은 지켜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때 기억이 난다.

상황이 종료된 다음 나는 다시 3층 열람실로 올라가 자리에 앉으니 멀리서 음악소리가 쿵짝쿵짝 울려 퍼졌다.

그리곤 중학생인 듯한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듯 했다.

잠시 뒤 도서관 직원 목소리가 나지막하지만 강하게 들려왔다. 음악소리는 멈췄고 아이들은 투덜대며 다른 곳으로 가는 듯 했다.

그 아이들은 이제 어디로 가서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르고 웃을 수 있을까?


그 당시 밖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그리고 열람실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던 아이들, 학교는 다니지 않지만 꿈을 향해 나가려고 하는 도서관 밖 또 다른 아이들의 웃음을 찾아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다.

그 때도 어렸지만 지금도 아직은 어린 내 아이들의 미래가 지금 그 아이들이 될 것이니, 그 아이들이 웃음을 잃지 않고 커간다면 우리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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