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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Oct 08. 2023

딸과 함께 카페에 왔습니다

오늘의 책, 정헌재 <귀여운 거 그려서 20년 살아남았습니다>

아빠와 아들은 야구 훈련을 받으러 갔다. 아, 아들이 훈련을 받는 것이고 아빠는 데려다주러.

요즘은 아빠와 함께 야구를 훈련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 남자는 딱히 야구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아들이 야구를 하러 나가자고 하면 두 말 없이 나가줘서 무척이나 고마워하는 중이다. 

(아시안게임 야구 한국 우승 축하합니다. )

체력적으로 딸리는 엄마도 상관없으니 공이나 던져 달라는 아들의 요청을 거의 매번 들어주는데 어떤 날은 정말 몸이 말을 안 들어 일어날 수 조차 없을 때는 아빠의 존재보다 남편의 존재의 고마움을 더 크게 느낀다.


두 남자가 집을 떠난 후 나는 노트북과 책 한 권과 메모지를 챙기고 딸은 아이패드(내 거임)와 만화책 한 권을 가방에 넣어서 집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왔다. 

분명 우리가 들어왔을 때는 사람이 없었는데 앉아서 조금씩 작업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 아, 뒤통수가 따가워. 

오늘 가져온 읽을 책

<귀여운 거 그려서 20년 살아남았습니다> - 정헌재(페리테일), ourMedia


알라딘서점에서 적립금을 쓰려고 하다가 발견한 책이다. 포엠툰, 완두콩으로 유명한 저자의 이름도 닉네임도 생소하지만 흰둥이 그림은 알 것 같은, 작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책을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오늘 더 카페에 오고 싶었던 것. 저자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책도 보고 힐링을 한다고 했다. 어머, 저도 그래요 작가님.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운 삶인데 그 일로 돈도 벌 수 있다면 초강력으로 부럽다. 물론 작가의 삶이 순탄치 않아서 옆에 있다면 등을 쓰다듬어 주고 싶고 괜찮다고 말을 건네주고 싶다. 

내게도 위로를 해주고 나로 하여금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다.


대학원 동기들과 요즘 진행 중인 독서토론 모임에서 원우 한 명이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심각한 괴롭힘일지 아닌지는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힘들어하는 마음이 이해가 갔다. 매일 봐야 하는 동료가 그렇게 자신을 힘들게 한다면 배신감도 들 테고.

그래서 위의 그림을 보내줬다. 내게도 위로가 되는 그림이었다. 

귀여운데, 할 말은 다 하는 흰둥이.

따뜻한 라테 한 잔, 요거트 스무디 한 잔

딸과 함께 왔다는 걸 깜빡했다. 크크.

행복이는 그림 그리는 걸 가장 좋아한다. 정말 나랑은 너무나 다른 면모를 보인다. 엄마가 그린 그림은 개발새발 그린 그림이고 행복이가 그린 그림은 하나의 작품이 된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행복이

오늘은 가져온 만화책의 표지를 그려보고 있다. 거금을 주고 산 앱은 사용하지 않고 광고가 덕지덕지 붙은 앱으로 잘만 그리는 딸.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돈은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없더라도 솟아날 구멍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력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한 우물을 파면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오늘 읽은 '귀여운 거~' 책에서도 20년간 그림을 그려온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며 꾸준히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에도 여러 번 스친다.

딸과 커플링


간간이 글을 쓰며, 책을 읽었다. 아이의 물음에 대꾸도 해주며. 

그러다 읽은 작가의 '맘모스빵' (표준어는 매머드빵이라고 하지만 작가의 책에서 나온 표현을 그대로) 에피소드에서 또 울컥하며 눈물이 나려고 해서 잠시 책을 덮고 글을 쓴다. 요즘 나이가 든 것인지 뭔 책만 읽으면 먹먹해짐을 느낀다. 

어맛, 혹시 이거 갱년기인가? (농담처럼 그 단어를 언급해야 아직은 아닐 것 같아서)

나의 어린 시절도 함께 떠오른 그 빵 에피소드는 며칠이 지나도 계속해서 먹먹할 듯하다. 그래도 작가는 꽤 성숙했던 것 같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의 벌이가 어떠했는지 전혀 모른다. 그냥 잘 살진 않구나 하는 생각만 했었는데. 


귀여운 그림 속에 담긴 내면이 조금씩 비출 때 나는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머리로는 괜찮다고 했으나 도저히 마음으로는 떨쳐낼 수 없던 일들이 떠오른다. 젠장, 젠장을 외치며 힘들게 마음을 다독여 놨다가 다시 생각이 나면 또 삐리리#$% 말이 되뇌어 나오게 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나도 나름 찾은 것 같다. 작가도 나도 이제는 그 회복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 원래의 삶으로 녹아들어 갈 수 있게 된다.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이 책을 세상에 내놔줘서 고맙소. 작가 양반.

내 삶도 응원하지만 당신의 삶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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