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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Feb 22. 2024

마법의 세계

미하엘 엔데 - 마법의 설탕 두 조각, 마법학교


동화에서 마법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가장 흔한 이야기지만 기상천외할 경우에만 아이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이제야 읽는다고 하면 이제야?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읽고 보니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주인공 렝켄은 요정을 찾기로 하고 경찰관에게 마법 요정의 거처를 알려달라고 한다. 경찰관은 '빗물 거리 13번지 맨 위층'이라는 주소를 알려준다. 경찰관은 실제로 있는 주소처럼 어떤 골목에서 꺾고, 길을 어디서 건너는지 알려준다. 비를 맞으며 찾은 집 안으로 들어간 렝켄은 호숫가에 있는 카누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 섬에 도착한다. 땅에 발을 디딘 순간 땅이 카펫으로 변하고 배경이 바뀐다.


"자정이란다. 여기는 시간이 항상 밤 열두 시야. 다른 시간은 아예 있지도 않단다."


마법이 발휘되는 충분조건, 자정이 되어야만 제대로 효력을 발휘한다. 요정을 만난 렝켄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요정은 렝켄에게 각설탕 두 개를 건네고 그 설탕을 먹으면 원래의 키에서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알려준다. 정말 너무 귀여운 발상 아닌가?

마녀가 건네는 독약 같은 것이 아니다. 달달하고 작은 각설탕으로 악당(여기선 엄마, 아빠)을 작게 변신시킬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딱히 요정에 대한 소개가 없지만 '프란치스카 프라게차익헨'이라는 요정의 이름이 언급된다. 우리나라 동화에서 흔히 보이는 '나는 OOO이에요.'로 소개된 부분이 없다. 합평 때 이 부분이 한 번씩 언급되었는데 고전 동화에서는 별 상관이 없나 보다. 워낙 작품이 좋아 고전이 되는 것이니까.


부모가 갑자기 소인으로 변하는 시점이 불분명하다. 갑자기 '푸시식' 소리를 내며 몸이 줄어든다. 렝켄의 부탁을 듣고 거절하는 상황이나 약간의 언성이 높아질 상황에 놓이면 몸이 줄어든다. 어이없는 상황을 깨달은 엄마와 아빠는 고분고분 아이의 말을 들어준다. 또 불만을 표할 때마다 그 몸의 절반으로 줄어든다.  휴지로 옷을 만들어 몸을 감싼 모습이 참 귀여웠다.



단순히 몸만 변하는 것이라면 큰 갈등이 없어 밋밋할 수 있지만, 위기가 닥친다. 바로 렝켄의 남자친구 막스가 고양이 조로를 데리고 온 것이다. 보통 이야기라면 고양이가 엄마, 아빠를 쫓아다니거나 할 텐데 이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난쟁이들은 조로의 수염을 가위로 잘라버리고 놀란 고양이와 막스는 집으로 돌아간다.


부모의 부재는 아니지만, 부모가 자신을 돌볼 수 없어지자 렝켄은 무서워진다. 그때 다시 요정이 렝켄에게 편지를 보내고 새로운 주소인 '바람거리 7번지'로 가본다.

지난번과 다르게 호수는 꽁꽁 얼었고 렝켄은 그 얼음판을 걸어갔다. 이곳에서는 낮 열두 시에 시작한다. '12'라는 숫자는 동화에서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시간의 의미만 있을까?


"난 네 결정에 어떤 영향도 미치고 싶지 않단다. 혼자 생각해서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결정을 내려야 해. 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네게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고 싶었을 뿐이야."


스스로 선택한 렝켄, 시간은 되돌려지고 아빠가 옷을 갈아입는 때로 돌아왔다.  각설탕을 넣기 이전으로 돌아온 렝켄은 갑자기 착한 어린이로 변하고 엄마, 아빠는 철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한 번쯤 부모보다 더 컸으면 하는 아이들의 바람이 엿보였던 동화.






<마법학교>는 미하엘 엔데의 또 다른 마법시리즈의 책으로 화자가 '소원나라'라는 곳을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그곳에 쌍둥이 남매 머그, 말리를 만나 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간다.

거기서 만난 질버 선생님은 마법을 가르쳐 주기 전에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의사나 교수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어쩌면 정원사가 되고픈 것이 정말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낯선 소원은 낯선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진정한 소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가 완벽하게 하나가 되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특별히 무언가를 할 필요도 없게 되지.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거든.  p.20


이야기 내내 화자는 뒤로 빠져 있고 머그와 말리, 그리고 선생님과 교실 안 아이들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부분이 참으로 옳은 말인데 <마법의 설탕 두 조각>에 비해서는 꼰대스럽다.



질버 선생님이 마법을 부리면서 화분이 아는 선생님의 머리 위로 물이 뿌려지자 머그는 자신이 그렇게 빌지 않았다고 해 교실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때 선생님은 자신이 '설탕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아니니 괜찮다고 한다. 나는 이 문장이 참 예쁘단 생각을 했다. 선생님이 미안해하는 아이에게 전할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이후 아이들은 손으로 신호를 보내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소원의 힘이 너희들 앞에 있던 물건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던 자석 같은 것이었어. 그렇지만 물건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곳에 있는 지금부터는 너희 자신의 힘만으로 그것을 해내야 한단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물건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아주 확실하게 상상할 수 있어야만 했다.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아야 하고, 다른 떤 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p.42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일은 자신 스스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 꽤 많다. 캥거루족처럼 부모의 아늑한 품 안에서 살아가는 다 큰 성인들이 많다. 그와는 반대로 어떻게든 스스로 해보려는 어린이들도 있다. 이 아이러니한 삶 속에 이 사회 테두리 안에서 어쨌든 함께 살아간다.


아이들이 마법을 부리기 위해 교실이 아닌 밖으로 나오게 되면 화자 역시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화자는 소원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접할 수 있어 좋아한다.

사과에서 공으로, 사과에서 포크로, 변신시키는 마법을 부리며 서로 은밀하게 연결된 물건들을 변신시키게 된다.

화자는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독자들이 궁금해한다는 말을 한다. 작가의 위트에 웃음이 났다.

마법훈련에 대해 서술한 내용들이 굉장히 자세하다. 눈앞에 마법을 선보이는 듯하다.

트럼펫을 불 수 있는 버섯을 만들고, 머리가 두 개 달린 난쟁이도 만들어 내며, 꼭두각시 소녀도 만든다.



소원나라를 떠나기로 한 마지막 날 밤 화자는 눈 밭에서 발을 헛디뎌 발목이 부러지고 아이들은 도와주러 나타난다. 둘의 힘으로 괴상한 괴물이 새롭게 등장한다. 하지만 그 괴물은 이리저리 혼자 울부짖더니 자립해 달아난다. ㅋㅋ

아이들은 힘을 합쳐 화자를 데리고 하늘을 날아 집으로 돌아온다. 무사히 도착한 화자는 소원나라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고 아이들은 진급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마법 대학교에 들어가 대학생이 된다.


작가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모모>의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두 작품을 비교해 읽어보니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다.

다음은 <끝없는 이야기>를 읽어볼까 한다. 

비룡소에서 나온 이 책은 702페이지다. 음. 고민을 해봐야겠군.


오늘 소개한 두 작품은 굉장히 얇고 글씨가 큽니다.

마법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주저 없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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