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圓)을 만드세요
원을 만드세요. 동그라미를 만드세요.
어떤 동그라미냐면 지(知)와 행(行)이 서로에게 닿고, 서로를 만지고, 서로에 맞추다가
마침내 자신을 버리고 서로가 되는.
한꺼번에 전부인 수도 있겠지만(돈오돈수, 頓悟頓修)
보통은 점진적으로 확장하고, 향상할 것입니다(돈오점수, 頓悟漸修).
어떻게 하느냐.
단순합니다.
복잡하지 않아요.
어려울지언정 쉽습니다.
Simple, not easy.
Hard, not complex.
아무튼 단순한 길을 보일게요.
생각하면 행합니다.
생각이 몸이 되고, 몸짓이 되도록.
처음엔 흉내 같고 가짜 같아도 결국 진짜가 됩니다.
이것이 용기입니다.
행하는 걸 생각합니다.
정직하게 그대로 보고
이해하려 합니다.
겉을 따르다가 속까지 만들어지고,
안에서 너울대던 불길은 겉모습까지 만들어냅니다.
이는 세계를 이해할 때에도 같습니다.
세계를 구성할 때에도 같습니다.
이를테면,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어버이를 사랑하고 그러나 더러운 것을 무척 싫어할 수 있습니다.
그의 어버이가 그이를 그렇게 키우기도 했습니다.
깨끗하게 곱게.
그러나 그의 어버이가 반신불수가 되거나 치매에 걸린다면
마침 그는 자신이 돌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제 부모의 청결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유지하는 일은 더러움을 묻히고 없애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더 커서 그는 그 일을 했습니다.
사이사이 잠깐씩 자신이 불편해하는 게 부모인지 더러움인지 헷갈려
자신을 의심하기도 하고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했지만 곧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휩싸이기엔 그가 행하는 사랑이 더 크고 갈급했습니다.
한눈팔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다가 그는 세계를 이해합니다.
인생을 이해합니다.
마침내 그것이 편안해집니다.
그는 긴 세월 누적된 피로에 지칠 법도 한데
다행히도 더 평화롭고 끈질기고 왕성해졌습니다.
그가 행하는 것이 그의 앎을 트여 준 것이지요.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고집스럽게 아는 대로 하려 하다가 정말로 할 수 있게 되는 경우.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이 끝과 저 끝이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툭툭 부딪치고 불화하는 것 같던 둘은
마침내 통합니다.
통하여 하나가 됩니다.
이걸 반복하면 점점 더 둥글어집니다.
둥근 길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원은 부서지지 않습니다.
(달걀을 쥐어 부술 수 없는 것처럼)
원에 가해지는 힘은 원을 타고 돌고 돌아 제자리로 가거든요.
그때 비로소 나의 ‘개성’이 태어납니다.
그 전에는 단지 가능성들입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들 중 진짜 내가 만들어집니다.
완전히 자유롭고, 질서 있고, 누구와도 다른.
똑같은 쌍둥이가 있대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오직 하나의 내가.
그리고 그 내가 얼마나 보편적인지
그러면서 얼마나 특별한지.
그대가 꼭 자신의 생에서 맛보기를
기뻐 뛰기를 희망합니다.
나무에게
바람이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