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물길

기술 권력의 시대, 민주주의의 황혼과 ‘사랑’이라는 최후의 보루

by 이제월



십대에 칼릴 지브란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저술한 작품이 아니라 그와 메리 해스켈이 나눈 편지를 통해서였습니다. 『사랑은 자유하는 삶입니다』(정은하 엮음, 진선출판사, 1990)라는 편지 모음에는 알 듯 말 듯한 일렁이는 느낌을 주는 작은 흑백 사진이 책장 모서리에 배치되고, 한쪽에는 하단에 칼릴 지브란이 저술한 글을 어딘가에서 발췌해 배치하고, 마주본 면에는 상단에서부터 지브란 또는 해스켈이 쓴 편지를 배치하는 식으로 구성된 책이었습니다. 이 문을 통해서 저는 칼릴 지브란의 문학 세계에 매료됐고, 어디서 처음 보는 한 줄의 문장이 칼릴의 것인지 아닌지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민감한 감응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수께끼처럼 마음에 들러붙은 문장은 막상 메리 해스켈이 쓴 편지였습니다. 20세기 초의 어느 날, 지브란이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하러 유학 간 시절, 둘 사이 편지의 전문은 아니고 발췌분이어서 앞뒤로 무슨 이야기를 하다 그런 건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무튼 위 책자에는 딱 한 문장이 마치 시처럼 줄을 바꾸어 써 있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정수는

다름 아닌

사랑, 그것입니다.


1920년 5월 20일 메리 해스켈



피터 틸의 민주주의 회의론을 접하여 제가 이데올로그가 아니고, 민주주의가 완벽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 그런데 인간도 완벽한 적은 없습니다 — 문득 삼십 년도 더 된 궁금증에 대해 스스로 답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엉뚱한 글이 나왔습니다. 여전히 속이 시원하진 않지만 말하지 않는 것보다 서툴게 말하는 게 나은 때라고 생각하여 쓴 것이니 역시 서툴게 읽어 주세요.



기술 권력의 시대, 민주주의의 황혼과 ‘사랑’이라는 최후의 보루



서론: 금융 권력의 퇴장과 테크 리바이어던의 등판


현대 사회를 지탱해 온 두 축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전례 없는 변곡점에 서 있다. 과거 골드만삭스로 대표되던 금융 권력이 백악관의 회전문 인사를 통해 세계 질서를 주도하던 ‘금융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압도적인 자본력과 기술력을 거머쥔 ‘테크 권력’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한 명의 자산이 한국의 한 해 예산을 상회하고, 빅테크 기업들의 시가총액 증가분이 국가 단위의 경제력을 압도하는 현실은 단순히 부의 편중을 넘어 ‘통치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민주주의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이를 대체할 새로운 ‘기술 관료적 유토피아’ 혹은 ‘사적 주권 국가’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 본 에세이는 피터 틸과 커티스 야빈 등이 주장하는 민주주의 회의론을 검토하고, 이에 대척점에 서 있는 메리 해스켈의 “민주주의의 정수는 사랑”이라는 주장이 갖는 철학적 타당성과 현대적 정당성을 논하고자 한다.



1. 피터 틸과 테크 이데올로그들의 민주주의 회의론


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불협화음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의 거물 투자자인 피터 틸은 2009년 "나는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그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는 대중의 포퓰리즘과 과도한 규제, 그리고 비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기술 혁신과 개인의 자유를 저해하는 장애물이다. 틸은 민주주의가 이미 '고쳐 쓰기 어려운 수준'으로 망가졌다고 진단하며,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적 통제로부터 벗어난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나. 책임 없는 과두제와 '국가 CEO'론

틸에게 깊은 사상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커티스 야빈(암호명 멘시우스 몰드벅)은 현재의 미국 민주주의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라고 비판한다. 권력이 다수에게 분산되면서 집단지성이 작동하기보다는 책임 소재의 실종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야빈은 민주주의라는 환상 대신, 국가를 하나의 효율적인 기업처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공황기를 통치했던 루즈벨트를 '국가의 CEO' 혹은 '황제'에 비유하며,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서는 군주제에 가까운 일인 중심의 권력 집중과 책임 경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 프락시스(Praxis)와 사적 주권 국가의 건설

이러한 회의론은 이론에 그치지 않고 '프락시스'와 같은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이어진다. 억만장자들이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기존 국가의 규제와 세금, 민주적 절차로부터 자유로운 '인터넷 네이티브 국가' 혹은 '디지털 도시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구상했던 '자유 도시(Freedom Cities)' 공약과 맞물려, 연방 정부의 부지를 할당받아 기술 관료들이 통치하는 자치 구역을 만들려는 시도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효율성을 저해하는 낡은 거버넌스일 뿐이며, AI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통치 시스템은 데이터와 기술에 기반한 '기술적 유토피아'여야 한다는 논리다.



2. 메리 해스켈의 반론: “민주주의의 정수는 사랑이다”


테크 권력자들이 효율성과 기술적 우월성을 근거로 민주주의의 종말을 고할 때, 칼릴 지브란의 조력자이자 영혼의 동반자였던 메리 해스켈은 전혀 다른 차원의 통찰을 제시한다. 그녀는 민주주의를 단순히 '투표 시스템'이나 '의사결정 구조'로 보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연결성에서 그 정수를 찾았다.


가. 논거: 타자에 대한 긍정과 연결성

해스켈이 말하는 '사랑'은 낭만적 감정이 아니라, 타자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고 그 권리를 존중하는 윤리적 태도를 의미한다.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나와 다른 타자도 나와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타인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 즉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피터 틸 일파가 효율성을 위해 타자를 배제하거나 등급화하는 '유사과학적 인종주의'에 경도되는 것과 달리, 해스켈의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을 포용하는 사랑을 그 동력으로 삼는다.


나. 지향: 기계적 효율성을 넘어선 인간적 성숙

민주주의의 지향점은 가장 빠른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길을 함께 찾는 데 있다. 테크 권력자들은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세상을 꿈꾸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해스켈의 주장은 민주주의의 목적이 단순한 '통치'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인간적 성숙'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3. 타당성과 정당성 검토: 기술 권력 시대의 민주주의


가. 기술적 효율성의 함정과 민주주의의 정당성

피터 틸과 야빈의 주장은 단기적인 '효율성' 측면에서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규제 없는 가속 지대에서 AI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사적 주권 국가가 권력을 남용할 때 이를 견제할 수단이 전무하다는 점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으로 보일지언정, 권력의 독주를 막고 다양한 가치를 보호하는 '정당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시스템이다. 해스켈이 강조한 사랑에 기반한 연대는 기술 권력이 초래할 '좀비 아포칼립스'적 불평등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나. AI 시대, 노동의 상실과 가치의 재정의

AI가 인간의 노동 가치를 박탈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것인가? 기술 권력자들은 이를 자산과 기술력으로 치환하려 하지만, 이는 대다수 인류를 잉여 인간으로 전락시킨다. 이때 "민주주의의 정수는 사랑"이라는 명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노동의 가치가 사라진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생산성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돌보는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를 사회 시스템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결론: 차가운 기술 위에 피어날 따뜻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터 틸과 마가(MAGA) 세력의 이론가들이 그리는 미래는 차갑고 효율적인 '기계의 제국'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낡은 유물로 치부하며, 선택받은 소수만을 위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이 짓는 성벽이 높아질수록, 인간성 상실에 대한 공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메리 해스켈이 칼릴 지브란에게 보낸 편지 속 문구는 100년이 지난 지금, 기술의 광풍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민주주의는 결코 효율성만으로 정당화되는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사랑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고귀한 약속이다. 테크 권력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민주주의의 기술적 결함을 수선하는 것을 넘어 그 내면에 깃든 '사랑'이라는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기술은 수단일 뿐이며, 그 목적은 항상 인간과 그들 사이의 따뜻한 연결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혼란의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자산은 단순히 계좌의 잔고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 우리의 마음, 즉 민주주의의 정수인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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