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칼을 줄게

사랑, 신뢰, 민주주의

by 이제월



얼마 전 민주주의의 정수가 사랑이라는 메리 해스켈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뜻은 정확하지만, 표현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말이 결함이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말을 듣는 우리들의 한계, 시대적 한계로 인해

불충분해진 것이지요.


쉽게 생각해 봅시다.

애민(愛民)은 민주주의로 연결되나요?

애민, 백성을 사랑한다. 이건 민주체제가 아니라 민본(民本) 사상의 발로입니다.

중요하다는 걸 아는 걸로 사랑할 수 있지만

이 아끼고 돌보는 마음이 민주주의로 연결되진 않습니다.

민본 사상은 엘리트주의나 군주제와도 어울렸고, 신분제와도 합치합니다.

안 될 게 뭐랍니까.


민주주의는 사랑에 더해 하나를 더 필요로 합니다.

정확하게는 사랑이 거기까지 뻗어가야 하는 거죠.

신뢰.

이 신뢰는 사랑과 다른 대가를 요구합니다.

사랑도 신뢰도 불완전, 불성립, 불의, 오류를 감내한다는 건 똑같습니다.

때로 악의조차 견디고, 부조리와 부당한 처우도 견딥니다.

숱한 난관을 이겨냅니다.

그런데 사랑은 ‘내가’ 고통을 견디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신뢰는 ‘상대가’, 신뢰하는 상대가 오류를, 방황을, 상처를, 착각을, 과오를 견디기를 요구합니다.

여기까지 하는 사랑이 더 큰 사랑입니다.

신뢰를 뺀 사랑은 하다 만 사랑입니다.

틀려도 좋다, 겪어라, 견뎌라, 부디 이겨내라, 이게 신뢰하는 사랑, 사랑 중 더 큰 사랑이고,

이게 민주체제를 가능케 하는 사랑,

민주체제를 꿈꾸어도 좋은 사상이며 태도인 겁니다.


저는 오늘날까지 인류가 행한 가장 큰 실험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 물론 democracy는 ‘민주정’(民主政)이지 민주-주의(主義)가 아닙니다만, 익숙한 대로

그 조어(造語)의 시커먼 속내를 모르지 않지만

우리 현대사가 충분히 본래 의미를 환기하게끔 세례(洗禮)해 주었으니 그대로 쓰겠습니다 —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걸 요구합니다.

인간이 그것까지 한다면, 한 개인은 온전히 한 개인이 되고,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 함께 사는데 함께 존엄한 세상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사랑하는 이, 믿는 이, 경애하는 이를

곤궁에 빠트리는 것. 밀어 떨어트리는 건 아니지만

그걸 지켜보며 그가 이겨낼 거라고 믿는 것

나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요

서로를 가장 강하게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성공할까요?

단순한 정치 실험이 아니라

사회 실험이며, 사상 실험이며

우리 존재를 건 실험입니다.


잘되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인류라는 종의 자기 증명, 가치요 목적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게 끝은 아니고

제대로 된 시작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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