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들 때 — 어떻게 할까
회복을 바랄 때, 바로 서려 할 때 방법은 정상적인 두 가지와 비정상적인 두 가지가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방법은 우선 무중력에 놓이는 겁니다. 이 상상적 도피는 이 세계로 돌아올 때, 눈을 뜰 때 아무것도 변하거나 바뀌어 있지 않고 근력과 균형감, 세계와의 연결감만 흐릴 뿐입니다. 다른 방법은 시체놀이입니다. 죽은 듯이 눕거나 정말로 죽습니다. 자기를 죽임으로써 문제를 말소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부정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영구히 남겨 두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을 이야기합시다. 하나는 위로부터, 하나는 아래로부터 이루어집니다. 위로부터 바로서게 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당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옷걸이에 옷을 거는 것과 비슷합니다. 철봉에 매달려 몸을 늘어뜨리는 것과도 닮았습니다. 다른 계산과 조정이 없어도 저절로 바로 서게 됩니다. 물론 어느 부분은 아프고 어느 부분은 힘들 테지만 올바르게 바로 서는 데에는 필요한 모든 것이 마치 햇살처럼 위로부터 쏟아져내립니다.
아래로부터 바로 서게 하는 것은 쌓기요 세우기입니다. 아래로부터 세우는 일은 고려하고 조정할 것이 아주 많습니다. 그것들을 그르치면 마치 깃발 쓰러뜨리기/깃대 쓰러트리지 않기 놀이처럼 선 듯하다가 기울거나 갑작스레 무너집니다. 모든 요소를 다 갖추면 바로 선다는 것이니 심신 안정에 체력 증진, 영양 보충, 그밖에 모든 ‘조건’을 충족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아래로부터 쌓아 세우기>는 과거로부터 옵니다. 처음에 꽂는다면 꽂는대로, 누웠던 걸 토대를 쌓아 일으키면 또 그런대로 ‘서기’에 앞서 행해진 행위와 사건의 결과들로부터 서거나 서지 못하거나가 정해집니다. 그러니까 이 방식은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으나 장차를 위하여 미루지 않고 도모할 일이요 절차입니다.
그러나 <위에 걸어 서기>는 당장 가능합니다. 그것은 완전성에 의거합니다. 전체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단 한 점에 연결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한 점에 걸쳐지면 나머지는 저절로 주르륵 저 알아서 줄세웁니다. 위와 이어지기만 하면 아래와는 닿든 말든 대롱대롱 매달려 바람 자면 늘어지고 바람 불면 나부끼나 언제나 금세 제자리 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이는 지금 서지 못한 내가 존재할 수도 있는 미래의 서 있고, 한 점에 고정된 튼튼한 나에게 기대어 서는 것입니다. 미래로부터 오되 아주 더 먼 미래 즉, 영원이요 완전성으로부터 연원할 때, 우리의 목표와 꿈이 더 크고 분명할수록, 아예 완전한 이상에 대한 열망이요 헌신일 때, 즉시 모든 것을 추슬러 바로 서게 합니다.
자, 아래로부터 세울 수 있도록 바른 습관과 충분한 운동, 영양 섭취, 사고와 감정의 독소 배출 등 갖은 일을 합시다. 할 수 있는 것을 다합시다. 그러나 이는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바로 서기 위한 올바른 활동입니다. 지금 당장은, 꿈꾸세요. 희망하세요. 아무것도 아닌 것 말고 정말로 중요한 것, 진짜로 옳고 위대한 것을 바라세요. 그러면 설 수 있고, 아니면 서는 것 자체가 힘들 겁니다.
이 세상은 중립이 아니고 ‘중력’이 지배하는 가장 완벽한 군주정의 세계이니까요.
나무에게
바람이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