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달빛독서

우리도 제인을 찾고 있다, 빛[깔]을 — 영화 <만약에 우리> 같이읽기

by 이제월

우리도 제인을 찾고 있다(Finding Jane), 빛[깔]을 — 영화 <만약에 우리>에 대해



만약에 우리



**김도영 감독, 2025년 작품.

구교환(은호 역), 문가영(정원 역) 주연, 신호근(은호 부) 조연.


소원 같은 건 잊어버렸다.

기억하는 건 그때 꿈을 꾸었다는 것.

함께 소원을 빌었다는 것.

우리가 있었다는 것.


기억하는 대로여서 실제 영화 속 대사와 어긋날는지 모르지만

나 또한 검색하거나 다시 영화 파일을 돌려 대사를 재현하고 싶지 않다.

이런 건 기억하는 거다. 기억나는 대로, 잊히는 대로.

무엇이 남고 무엇이 흘러가 사라져 버리는지

그냥 그대로 익히고 배어들 수밖에 없다. 지워질 수밖에 없다.

그저 그렇게 하여야 우리는 한 걸음씩 나아간다.


과거가 천연색으로 빛나고

현재가 흑백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제인을 잃은, 여전히 제인을 찾고 있는 채인 게 가슴아팠는데

다행히 가영은 아저씨의 편지를, 늦게 도착한 편지를 받고

엔딩을 눌러 확인한다.

햇살이 돌아오고 정원이 야무지게 지은 꿈꾸던 그 집 안에서

미소짓는다.


둘이 다 주고 싶었다고 하고

다 받았다고 하는 말을

믿고 싶은 마음은

어느 만큼 믿는 마음으로 갈무리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 알까.

어떤 슬픔이 있었을지.

어떤 시련이 흉터를 남겼는지.


그래도 여전히 찌질한 은호가

그때, 집이 되어 주었다는 것.

감사한 일이다.

만난 인연도

헤어진 선택도

다 잘한 일이다.


2025년 마지막에 걸린 영화 \<만약에 우리\>는

대만 영화를 원작으로 했다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감히 짐작하건대 원작이 제아무리 뛰어나대도

이 영화는 스스로 원본의 아우라를 발산한다.


<메기> 때부터 꾸준히 주목한 구교환 배우의 연기야 명불허전이지만

문가영 배우가 이렇게나 얼굴을 잘 쓰는 배우인 줄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다하는 배우인 줄은 몰랐다.

2008년에서 2024년까지 16년을 건너는 영화인데

그게 다 어울리고

손바닥만큼의 햇살부터

그의 얼굴에 비치는 햇살을 바라보다

내 얼굴에 받는 햇살을 차단당하기까지

다시 강가에서 뜨는 햇빛을 마주하는 때까지

모든 순간의 표정이 살아있고

‘진짜’다.


이런 진짜 배우와 진짜 연기는 흔하지도 않지만

몇 번을 마주쳐도 귀하다.

이런 연기는 그 순간 바라볼 뿐인 우리의 인생의 순간도

문득 빛을 주기 때문이다.

함께-진짜가-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별(聖別)된다.

성별된 삶, 봉헌된 삶, 함께 다른 무엇이 되는 삶, 함께 진짜가 되는 삶, 비타 콘세크라타(Vita consecrata).

그리스도교의 수도생활을 가리키는 ‘봉헌된 삶’이라는 말은

놀랍게도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적용된다.


배우가 진짜일 때

영화가 진짜일 때

영화를 보는 우리도

삶이 조금 더 진짜가 된다.

색채를 잃고 겨우 명도로만 구별하는 세상이

제 빛깔을 갖게 된다.


우리는 모두 빛깔을 찾고 있다.

마구 밝아야 하거나 어두워야지 하는 게 아니다.

그게 그 빛깔이면 충분하다.


빛을 주고

빛을 받는 경험.

예술체험이다.


수년 간 이렇게 빛나는 영화는 드물었다.

감독과 배우들에게 감사한다.






작가의 이전글예람이에게 | 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