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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같이읽기

by 이제월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독일어 원제: Doktor Faustus, 1947)는 겉으로는 허구의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전기이지만, 실제로는 독일 정신사 전체에 대한 심문에 가까운 소설입니다. 토마스 만 자신의 전기적·사상적 문제의식, 독일의 음악 전통, 예술가의 고립, 천재성과 질병,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이 어떻게 나치즘으로 기울 수 있었는가라는 역사적 질문이 한 작품 안에 겹쳐 있습니다. 브리태니커는 이 작품을 20세기 작곡가의 삶을 통해 파우스트 전설을 다시 쓴 소설로 설명하고, 토마스 만의 대표작들 가운데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소설로 소개합니다.


줄거리를 아주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서술자 제레누스 차이트블롬이 친구 레버퀸의 생애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레버퀸은 초인적 예술 성취를 얻는 대신 인간적 삶과 사랑을 희생하는 존재로 그려지며, 이 구조 자체가 파우스트 설화의 현대적 변주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악마와의 거래”가 단지 초자연적 사건으로 소비되지 않고, 예술적 급진성·정신의 오만·도덕적 냉각이 서로 결합하는 비극으로 제시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한 천재 음악가의 파멸담이면서도 동시에 독일 문화가 자기 고양의 언어를 통해 자기 파괴로 가는 과정의 은유가 됩니다.


토마스 만 작품 세계 전체에서 보면, 이 소설은 거의 후기 토마스 만의 정점에 놓여 있습니다. 초기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Buddenbrooks: Verfall einer Familie)*이 시민계급의 쇠락을, 『토니오 크뢰거』가 시민성과 예술성의 긴장을, 『마의 산』이 유럽 정신의 병리와 사상적 대립을 탐색했다면, 『파우스트 박사』는 그 모든 문제를 한 단계 더 밀어붙여 “독일 문화 자체의 병리”를 묻습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이 평생 붙들고 있던 주제들 — 예술과 삶의 분열, 정신의 유혹, 병과 천재성, 문화와 정치의 관계 — 이 역사적 대재난 이후 최후의 형태로 응결된 작품입니다. 이 점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단순한 대표작이 아니라, 토마스 만의 전 경력을 뒤에서부터 다시 비추는 종합적 결산에 가깝습니다.


『선택된 인간』(Der Erwählte)은 중세 서사 전통, 특히 하르트만 폰 아우에의 그레고리우스 전설을 현대적으로 다시 쓴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리태니커는 토마스 만이 “큰 죄와 깊은 용서”의 전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설명합니다. 『파우스트 박사』와 『선택된 인간』은 둘 다 오래된 유럽 전승을 현대 소설로 재구성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전자는 타락과 파멸의 현대적 비극, 후자는 죄와 속죄, 은총과 구원의 역설에 더 가까운 작품입니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더 선명합니다. 『파우스트 박사』가 “정신의 오만은 어디까지 자기 파괴를 낳는가”를 묻는다면, 『선택된 인간』은 “극단적 죄가 어떻게 은총의 통로가 되는가”를 묻습니다. 전자가 차갑고 분석적이며 음악 이론·문화 비판·역사 인식을 밀도 높게 중첩하는 소설이라면, 후자는 훨씬 더 전설적이고 아이러니하며, 가톨릭적 상상력과 중세적 상징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아주 크게 말하면, 『파우스트 박사』는 토마스 만의 비극적 독일 인식, 『선택된 인간』은 토마스 만의 구원 서사와 화해 가능성을 각각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평적 해석이지만, 두 작품이 각각 파우스트 전설과 그레고리우스 전설을 다른 방향으로 현대화한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뒷받침됩니다.


당대 다른 독일어 문학작품들과 비교하자면, 『파우스트 박사』는 20세기 독일어권 모더니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의 『특성 없는 남자』(Der Mann ohne Eigenschaften)**를 시대의 걸작으로, 헤르만 브로흐(Hermann Broch)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Der Tod des Vergil)을 문명이 위기에 처한 시대에 문학의 자리를 묻는 소설로 설명하면서, 바로 그 문맥 속에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를 미학과 나치즘의 관계를 해부한 획기적 소설로 놓습니다. 즉, 무질이 근대의 가치 붕괴와 관념의 공허를 해부하고, 브로흐가 예술의 자기의심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면, 토마스 만은 거기에 독일의 역사적 죄와 음악적·형이상학적 전통을 결합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질과 비교할 때 『파우스트 박사』는 관념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무질이 제국 말기의 사회 전체를 해부하는 데 더 가깝다면 토마스 만은 한 인물의 전기 형식을 통해 독일 문화의 자기파멸을 집중적으로 형상화합니다. 브로흐와 비교하면 둘 다 예술과 역사 위기의 관계를 묻지만, 브로흐가 훨씬 더 몽환적·시적·의식의 흐름적인 문체로 가는 반면, 토마스 만은 풍자·교양소설·철학소설·허구의 전기를 결합해 보다 구조적으로 조직된 작품을 만듭니다. 카프카와 비교할 수도 있지만, 카프카의 부조리와 비인격적 권력의 체험이 존재론적 압박으로 다가온다면, 토마스 만의 경우는 훨씬 더 역사철학적·문화비평적 자의식이 강합니다. 이 마지막 비교는 제가 작품 성격을 바탕으로 한 해석적 정리입니다.


독일문학사에서의 위치를 말하자면, 『파우스트 박사』는 흔히 전후 독일어권 문학의 기준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됩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파우스트라는 독일 문화의 핵심 신화를 20세기의 파국 이후 다시 썼다는 점, 둘째, 음악·철학·신학·정치사를 한 작품 안에 묶는 고도의 교양소설이라는 점, 셋째, 독일 고전주의와 교양 전통이 어떻게 20세기 전체주의와 얽혔는지를 소설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지 “토마스 만의 후기 대표작”이 아니라, 독일문학이 자기 전통을 자기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가장 웅대한 사례들 중 하나로 읽힙니다.


이제 괴테의 『파우스트』와의 비교로 가보겠습니다.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파우스트 전설은 독일의 마법사·점성가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고, 악마에게 영혼을 넘기는 대가로 지식과 힘을 얻는 인물 형상이 핵심입니다. 1587년의 『파우스트북』은 이 전설을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이었고, 이후 말로와 괴테를 거쳐 유럽 문학 전체의 거대한 모티프가 됩니다. 괴테에게서 파우스트는 단순한 타락자가 아니라, 무한히 추구하고 방황하는 근대적 인간으로 재탄생합니다. 즉, 파우스트는 단지 “금지된 지식을 탐한 죄인”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불만족과 운동성을 대표하는 존재가 됩니다.


토마스 만은 바로 이 괴테 이후의 파우스트를 다시 비틀어 씁니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통해 인간 정신의 상승 가능성, 추구의 역동성, 심지어 종국의 구원까지 보여주었다면, 토마스 만은 20세기의 역사 경험 이후 그 서사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그래서 레버퀸의 경우, 추구는 더 이상 인간 전체의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극단적 형식주의와 인간적 냉각, 그리고 공동체의 파괴와 연결됩니다. 요컨대 괴테의 파우스트가 “근대의 위대한 열망”이라면, 토마스 만의 레버퀸은 “그 열망이 악마적 추상성으로 변질될 때의 결과”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이것 역시 사실과 해석을 함께 엮은 비교이지만, 『파우스트 박사』가 파우스트 전설의 20세기적 재가공이라는 점 자체는 명확합니다.


설화로서의 파우스트 이야기가 괴테와 만에게서 어떻게 다르게 드러나는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괴테에게서 파우스트는 “끝없이 추구하는 인간”의 드라마, 만에게서 파우스트는 “자기 초월의 욕망이 문명적 파멸과 결탁하는 순간”의 비극이다.

괴테가 전설을 철학적·시적 우주극으로 끌어올렸다면, 만은 그것을 현대 독일의 역사적 죄의식과 예술가의 문제로 다시 바꾸었습니다. 전설의 뼈대는 같지만, 괴테는 그것을 인간 구원의 대서사로, 만은 문화의 자기고발로 전용한 셈입니다.


문학사적 평가를 조금 더 압축하면, 『파우스트 박사』는 독일문학에서 고전 전통과 모더니즘, 교양소설과 전후 역사비판, 신화 재서술과 정치적 성찰이 하나로 만나는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그래서 읽기 어렵고 음악·신학·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요구한다는 점 때문에 대중적 독서의 문턱은 높지만, 바로 그 난해함 때문에 오히려 독일문학의 “대작” 범주에서 꾸준히 중심에 놓여 왔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독일문학의 자기상징이라면,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는 그 자기상징이 20세기 이후 더 이상 순진하게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후기적 반성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끝없는 상승과 몰락을 읽어낸다는 점에서 토마스 만은 인간정신을 훌륭하게 이해하고 대변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은 작가의 데뷔작으로 불과 20대 중반에 써내려간 대작으로 평자에 따라 노벨문학상을 안겨 준 결정적 작품이라고도 평가한다. 작품은 ‘한 가문의 몰락’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특성 없는 남자』는 2013년 안병률에 의해 번역된 판본이 있고, 2023년에 박종대 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다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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