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읽기(1)-고향집에서(6)

<마> 단락, 그리고 <다> 단락 반복 해명

by 이제월

<마> 단락 해명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송편 빚는 며느리들


이 고향의 완전성에 초대된 이들, 그들 또한 일한다. 고향의 완전성은 그들을 옹기종기 모여 앉힌다. 이미 각각의 가족을 꾸린 이들은 고향집이 넓다 한들, 그 ‘한’ 곳에 들어앉기에 실은 너무 ‘많다’. 그렇게 ‘큰’(major) 그들은 이렇게 ‘작은’(minor) 집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좁혀 앉는다. 가까이 살을 맞대고 앉는다. 서로의 숨과 온기를 느낀다. 그래서 급격히 가까워지는 것이다. 여기서 하는 일에는 축제성이 숨어 있다. 발견되기 기다리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시간은 흘러가는데


그들은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은 깨달음의 대화는 아니다. 그러나 좋은 나눔이다. 그리고 노래하는 이는 그의 약함과 무능으로 말미암아 썩 좋은 일꾼은 아니고, 설령 시종 같이 일한다 할지라도 이렇게 떨어져 그들 자신을 관찰한다. 원래 그것이 막내가 하는 일이다. 막내는 부분의 역할에서 빠져나와 전체를 바라본다. 그에게 세상은 단순하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그는 일의 와중에 두 가지 사실을 알아차린다, 본다. ‘이런 얘기’와 ‘저런 얘기’. 각자의 삶의 이야기. 다른 이야기들이 고향이라는 곳에서 뒤섞인다. 이웃보다 먼 처지이지만, 그들은 한순간에 뒤섞이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들과 함께, 다시 말해 이야기해짐, 이야기하여짐, ‘치유’와 함께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적적하던 내 고향집 오늘은 북적대지만

영원은 적적하다. 그곳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이 시간과 만나 현재를 이룰 때 그것은 북적댄다. 오늘 북적대지만, 사실 북적대면 늘 오늘이다. 북적댐은 오늘로서만 존재한다. 과거가 되거나 미래가 되면 그것은 이미 간추려져 추상화되고 어떤 기호로 환원된다. 아무리 생생히 기억할래도 이어지는 현재가 그것들을 배경으로 밀어낸다. 그러므로 고향집은 적적하고, 오늘은 북적댄다. ‘북적대-지만’이라고 하는 건 노래하는 이가 ‘시간은 흘러가는데’라며 시간의 흘러감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그는 이 시간이 끝나가는 것을 안다.



우리 모두 다 떠나면 얼마나 외로우실까


엄격히 말하여서 외로운 것은 노래하는 이 자신이다. 그는 이 떨어짐이 외로움이란 것을, 이 분리가 온전함이 결여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알았으므로 그는 이 외로움을 염려한다. 그러나 그것은 투영된다. 그가 아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모르는 사람이듯이 할아버지 할머니,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완전함과 불완전함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염려는 정당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 누렁이를 키우면서 이 두 노인은 대처(大處)에 나가 사는 자식들과 며느리, 손주 가족들보다 훨씬 덜 외로울 것이다. 노인들은 이 북적댐이 끝난 뒤에도 신비롭게 ‘비좁음’이 없어져도 ‘작음’(mionority)과 그에 따른 친밀한 형제성(brotherhood)을 나눈다. 그들이 쇠풀이며 집 뜰의 꽃들, 미류나무, 기와지붕, 누렁이, 사랑방 부엌… 들과 나누는 이 형제성으로 오랜만에 돌아오는 자녀들이 집을 따듯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외로움은 차라리 그들을 볼 때 발견하는 보는 이의 외로움이며 그들은 훨씬 더 충만하다. 그들은 외로움을 느끼더라도 외로움에 묻히지 않는다. 그것은 저녁 노을처럼 환하고 곱고 좋은 것이다.



또 우실지도 몰라…


노래하는 이, 막내, 시인의 염려는 옳고 또 그르다. 그 자체로 옳고 그것에 대한 편견 즉 두려워하는 자의 불안에 기인한 어두운 인상에 빗대자면 그르다. 그들은 울 수 있지만 그것이 그들의 불쌍함을 말하지 않는다. 이 울음은 그들 — 아버지 어머니가 품고 내뿜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이다.




<다> 단락

반복된다. 왜?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낸 탓일까

너무 오랜동안 바라던 탓일까

오늘따라 다르네 여느 때와 다르네

워... 워... 워... 워...


카이로스. 이 특별한 시간에 대한 인식을 반복한다.

고향에 다녀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향을 알아차린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인은 또 다른 가족들은 이미 무수히, 거의 관성이 될 만큼 고향을 오갔을 것이다. 애경사나 명절에 맞추어, 아니면 다른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로. 그러나 노래하는 이는 오늘에야 고향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노래는 마땅히 이 부분을 반복해야 한다. 반복한다는 건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해마에서 대뇌로 기억 저장의 위치를 바꾼다. 무슨 주의나 입장, 신념 때문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인간 종이 그러하다. 되풀이하는 까닭. 되풀이하여진 까닭. 노래하는 이가 알아차리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렇게 노래가 반복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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