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일곱째날

우리는 그저 방황하며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7

우리는 그저 방황하며

무언가를 몹시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저 바다와 숲을 스치는 바람이

우리에게

말을 주기 수 백만 년 전에는.


그러니 오늘

우리가 어떻게 바로 어제의 소리만으로

우리 안에 살고 있는

그토록 오랜 옛날의 갈망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원문⟫

We were fluttering, wandering, longing creatures a thousand thousand years before the sea and the wind in the forest gave us word.

Now how can we express the ancient of days in us with only the sounds of our yesterdays?


새로 한 번역⟫

우리는 펄럭이고, 헤매며, 갈망하는 피조물이었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바다와 숲 바람이 우리에게

말을 주기 전에


이제 우리가 어떻게

우리 지난 날들의 소리만으로

우리의 태고적 날들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읽기글-하나⟫

처음 이 글을 읽은 중학교 시절과

수년간 다시 접해온 이 글의 느낌은 분명 다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감동.

그 감동은 예삿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여정, 어떤 뭉치에 대해

콕 짚어주는 듯 할 때 가질 수 있는 무엇입니다.


우리는 그저 방황하며...

무언가를 몹시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님은.

님은 무얼 갈망하고 계셨던가요?



빔 밴더스의 시적인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는 아무것도 없던 시간뿐이던 시절을 지나

나무들, 공룡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이 나타난 시대를 짧게 회고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타나자!

그들은 엄청난 소음덩어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천사는 그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와 같아지고자 욕망하기까지 합니다.


바다와 바람.

그 영원무상한 것들이 우리에게 '말을 주기 수 백만 년 전에는'

그저 방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 역시 방황하였습니다.

무언가를 몹시도 갈망하던 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신이 처음 생각한 것보다 신이 처음 발설한 것이 더 매력적인 것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긴긴 세월, 보다 완벽해지고자, 보다 강력하고 보다 결벽한 무엇이 되고자

그렇지만 그럴 수 없음에 방황하며 다른 무언가를 찾아 갈망하다가.


이제 수많은 칼릴들의 여정을 따라, 혹은 단지 벗하여

우리의 '말'들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처음 신의 말씀이 그러했듯이

우리에게 있어서도 '살'이 됩니다.



읽기글-둘⟫

('우리는 그저 방황하며'에 부치는 이어지는 나눔입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기 전에도

그리고 보고 난 뒤에도

이 단상을 접할 적마다 제 마음에 다가온 것은

어떤 의미로는 우리가 절대로 '외로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말(-살)'들로서 우리는

이 말을 내뱉으려는 아주 구체적인 의지(意志)와 사고(事故)들의 연속입니다.


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세대를 거듭하여 이어온 사랑의 결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는, 당장 우리 자신의 부모 세대에서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니거나 사랑이라기엔 너무 많은 왜곡과 굴절이 있을 지 모릅니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세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분명한' 일입니다.

오로지 사랑뿐이었거나

사랑이 더 많았더라면 우리 세상 또한 보다 완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사랑이 부족했다 해도....


"우리 안에 살고 있는

그토록 오랜 옛날의 갈망"은

사랑이며.

사랑으로써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이와, 자신의 다음 세대를 축복하고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낳고 기르는' 일일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저 바다나 숲을 스치는 바람이 되어

당신에게 맡겨진, 당신 앞에 잠시라도 놓여진 그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기를 빕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말'을 주기를 빕니다.

방향없는, 혹은 자신에게만 선명한 '생각'이 아니라

때로 발육이 늦거나 선천적인 불구의 위험을 가질 지라도

'말'을 주고...

그 '말-살'을 따뜻하게 바라봐주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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